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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션’의 롤랑 조페 감독을 보면 신은 공평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은 그에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리얼리티가 강한 픽션을 잘 만드는 재능을 주었지만, 그 재능을 단 두 작품에만 허락했습니다. 1984년작 ‘킬링 필드'와 1986년작 ‘미션'은 롤랑 조페의 커리어에서 정점을 찍은 두 편의 영화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조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영화입니다. 나이 마흔 즈음에 데뷔작과 두 번째 영화로 잇다라 홈런을 친 조페는 그러나 이후 계속해서 내리막을 걷습니다. 1995년작 '주홍글씨'는 데미 무어와 게리 올드만을 캐스팅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골든 라즈베리상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최악의 영화 타이틀을 갖게 됩니다.
롤랑 조페 감독
반면 엔니오 모리코네를 보면 신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신은 그에게 영화음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부여했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탈리아를 넘어 영화음악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음악이 영화의 방향을 잡아주고, 영화의 분위기를 전환시켜주고, 영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거장입니다. 그는 무려 400편이 넘는 영화와 TV시리즈에서 음악을 맡았습니다. 그의 음악 덕분에 걸작으로 남은 영화도 많고, 영화 자체보다 음악이 더 돋보이는 영화도 많습니다.
오스카를 도둑맞은 엔니오 모리코네
1966년작 ‘석양의 무법자'는 모리코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첫 영화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이 영화 역사에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황야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등 서부극 음악을 계속 만들던 그는 당대 이탈리아의 또다른 재능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호러영화 음악을 맡아 바로크적 음악을 선보이면서 실험을 계속하다가 이후 할리우드로 옮겨 커리어를 확장해 나아갑니다.
할리우드 초기작인 존 부어맨 감독의 '엑소시스트2' 영화음악은 실망스러웠지만, 그는 1978년 테렌스 말릭의 '천국의 문'으로 첫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릅니다. 이해 수상은 같은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로 받았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
'미션'은 모리코네를 두 번째 오스카 후보에 오르게 한 작품입니다. 모리코네 커리어를 보면 꾸준하게 걸작을 내놓고 있기에 절정기가 따로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미션'은 모리코네에게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전세계에서 영화음악으로는 이례적으로 3백만장의 음반이 팔려나갔고, 영화팬들이 꼽은 가장 위대한 영화음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AFI의 위대한 영화음악 25선에선 23위에 랭크됐습니다.
‘미션'은 198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는 나중에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됩니다. ‘미션' 대신 수상한 작품이 재즈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상자는 재즈 뮤지션 허비 행콕이었습니다.
‘라운드 미드나잇'의 음악이 별로여서 논란거리가 된 게 아닙니다. 허비 행콕이 직접 음악을 맡은 음악영화이니만큼 음악 자체는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다만 영화에 사용된 음악이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음악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음악을 활용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모리코네는 2001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미션'으로 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해 수상작 '라운드 미드나잇'은 오리지널 스코어가 아니었으니까요. 허비 행콕은 선곡을 잘 했습니다만, 기존의 음악을 사용했어요. 저는 상을 도둑맞은 겁니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다혈질적인 면모가 모리코네에게도 엿보입니다. 한참이 흐른 후인데도 이렇게까지 격분하는 것을 보면요. 하긴 이탈리아인들은 아직까지도 한국인을 만나면 2002년 월드컵 한국전이 오심이라고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비록 오스카에서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미션'의 음악은 아름답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수많은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손꼽힐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그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들으면 평온해지고 영화 속 풍경이 바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이 기악곡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모리코네에게 수 차례 편지를 보내 가사를 만들어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1998년 'Nella Fantasia'라는 또 하나의 명곡이 탄생했습니다.
Nella Fantasia (In My Fantasy 나의 환상 속에서)
나의 환상 속에서 난 올바른 세상이 보입니다
그 곳에선 누구나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난 영혼이 늘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요
영혼 깊이 인간애 가득한 그 곳
나의 환상 속에서 난 밝은 세상이 보입니다
그 곳은 밤에도 어둡지 않습니다
난 영혼이 늘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요
나의 환상 속에서 따뜻한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은 친구처럼 도시로 불어옵니다
난 영혼이 늘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요
영혼 깊이 인간애 가득한 그 곳
2016년 '헤이트풀8'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엔니오 모리코네.
모리코네는 2016년 ‘헤이트풀8’로 오스카 음악상을 받았습니다. 최초이자 유일한 오스카 음악상입니다. 앞서 언급한 두 편을 비롯해 1987년 ‘언터처블', 1991년 ‘벅시', 2000년 ‘말레나'로 다섯 차례나 후보에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번번이 수상이 불발된 게 미안했던지 2007년 아카데미는 모리코네에게 공로상을 주며 위로했습니다.
2016년 ‘헤이트풀8’은 사실 음악이 잘 기억에 남지 않을만큼 모리코네의 명성에 비하면 범작이었던 것 같은데 대진운이 좋았습니다. 경쟁작들인 ‘캐롤' ‘스파이 브릿지' ‘시카리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등도 특별히 음악이 강조된 작품이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그의 생전에 오스카 음악상 트로피가 주어진 것은 뒤늦지만 다행입니다. 어쩌면 ‘미션'에 상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30년 만의 보상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밖의 모리코네 대표작으로는 ‘알제리 전투' ‘괴물' '시네마 천국' '1900'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언터처블' '벅시' '사선에서' ‘미션 투 마스' ‘바스터즈: 나쁜 녀석들'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의 음악을 작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워낙 많은 작품을 해서인지 모리코네의 단짝이라고 할 만한 감독도 꽤 됩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다리오 아르젠토, 롤랑 조페, 주세페 토르나토레,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에서 모리코네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리암 니슨의 열연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은 1754년 과라니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영화 후반부에 포르투갈-스페인 군대와 과라니족의 싸움이 역사 속에서 과라니 전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이 전투를 비극적 클라이막스로 만들기 위해 과라니족이 사는 거대한 폭포 위 정글로 들어간 예수회 선교사들과 과라니족의 우정을 보여줍니다. 스페인 출신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와 동생을 죽이고 참회하기 위해 가브리엘을 따라온 전직 용병이자 노예무역상 로드리고 멘도사(로버트 드 니로)는 과라니족을 개종시키고 생사고락을 함께 합니다.
가브리엘 신부 역의 제레미 아이언스
제레미 아이언스와 로버트 드 니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대배우입니다. ‘미션'에서 두 배우 모두 열연을 펼치는데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1948년생, 로버트 드 니로는 1943년생으로 비슷한 연배입니다만 두 배우의 영화 경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인인 제레미 아이언스는 TV시리즈에서 주로 활약하다가 영화는 1980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미션'만 해도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데드 링거'(1988)부터였고 '행운의 반전'(1990)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카프카' '데미지' 'M 버터플라이' '다이하드3' '아이언 마스크' 등 수많은 작품에서 명연기를 보여줬죠.
로드리고 멘도사 역의 로버트 드 니로
반면 로버트 드 니로는 1960년대말 로저 코먼의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는 것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대부2’(1974), ‘택시 드라이버'(1976), ‘디어 헌터'(1978), ‘성난 황소'(1980),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등 메소드 연기로 최고의 배우 명성을 얻은 그는 1986년 ‘미션'에 출연할 땐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그의 전성기는 대략 1973년 ‘대야망’부터 1995년 ‘히트' 정도까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그 이후로는 전매특허인 메소드 연기를 고집하는 대신 가벼운 코미디도 가리지 않고 출연했기 때문입니다.
1986년작 ‘미션'은 1985년 '브라질'과 1987년 '엔젤 하트' 사이에 출연한 영화입니다. 두 편에 비해 ‘미션'의 로드리고는 훨씬 더 몸을 혹사시키는 장면이 많은 영화입니다. 또 영화에서 가장 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인물이라서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로드리고가 쇳덩이를 끌고갈 때 긴 머리가 진흙에 뭉친 모습은 마치 예수를 연상시키는데 마틴 스코세이지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을 했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영화에서 윌렘 데포도 훌륭했습니다. 참고로 드 니로는 '대부2'로 남우조연상, '성난 황소'로 남우주연상 등 아카데미 연기상을 두 차례 수상했습니다.
존 필딩 신부 역의 리암 니슨
가브리엘과 함께 다니는 존 필딩 신부 역으로는 리암 니슨이 출연합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때 니슨이 34세였네요. 그는 드 니로나 아이언스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로버트 드 니로의 동생 펠리페 멘도사 역할로는 에이단 퀸이 출연합니다. '베니 앤 준'(1993) '가을의 전설'(1994) '프랑켄슈타인'(1994) '마이클 콜린스'(1996) 등 1990년대 전성기를 보낸 배우입니다.
영화는 추기경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됩니다. 알타미라노 추기경 역을 맡은 배우는 레이 맥아넬리로 그는 이 역할로 영국아카데미(BAFTA)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1989년작 ‘나의 왼발'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버지 역할로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이기도 합니다.
알타미라노 추기경 역의 레이 맥아넬리
영화에는 대사가 많지 않습니다. 리얼리티에 중점을 둔 영화이기 때문에 파라과이의 자연 풍경과 과라니족 원주민들을 보여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다만 추기경이 교황에게 쓴 편지를 읽어주는 마지막 내레이션은 많은 분들이 명대사로 꼽습니다.
“신부들은 죽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자는 저이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원작이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오리지널 스크립트입니다. 로버트 볼트가 각본을 썼습니다. 볼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를 각색하고, '사계절의 사나이' '라이언의 딸'을 쓴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입니다. '닥터 지바고'와 '사계절의 사나이'로 아카데미상을 2회 수상했습니다. '미션'으로는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받았습니다.
과라니족을 선교하기 위해 찾아간 예수회 신부
영화는 가파른 바위산을 맨손과 맨발로 올라가는 가브리엘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하늘을 향해 계속해서 올라가는 이 장면은 신에게 닿으려는 시도처럼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고난을 암시합니다. 마침내 정상에 오른 가브리엘은 오보에를 꺼내 그 유명한 가브리엘의 테마를 연주하고 이에 과라니족이 나타나 그를 에워쌉니다.
과라니족과 어울려 살아가던 가브리엘은 로드리고와 적으로 처음 맞딱뜨립니다. 과라니족을 붙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로드리고에게 가브리엘은 과라니족을 선교할 수 있다고 설득하려 하지만 로드리고는 믿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계기는 로드리고가 동생을 죽이면서 찾아옵니다. 로드리고는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보다 동생을 사랑한다는 말에 격분해 있다가 형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 찾아온 동생과 결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입니다.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로드리고는 가브리엘을 찾아가 참회하려 합니다. 가브리엘은 로드리고를 과라니족의 교회로 데려가기로 합니다. 로드리고는 스스로 무거운 쇳덩이를 짊어지고 가파른 바위산을 오릅니다. 끊임없이 미끄러지면서도 바위산을 쉬지않고 오르는 시지프스처럼 빗속에 미끄러지고 무너지면서도 로드리고는 쇳덩이를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갑니다. 필딩 신부가 쇳덩이를 잘라버려도 그는 다시 내려가서 찾아와 아예 안고 갑니다.
마침내 로드리고 일행은 과라니족이 사는 곳에 당도합니다. 과라니족은 자신들을 공격하던 노예무역상이 나타나자 경계합니다. 하지만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엉엉 우는 그를 보며 이내 마음을 풉니다. 과라니족은 로드리고를 받아주고 로드리고는 과라니족의 일원이 됩니다. 그렇게 가브리엘과 로드리고는 과라니족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지상 낙원을 만들어 살아갑니다.
1750년 마드리드 조약과 과라니 전투
이제 갈등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1750년 마드리드 조약이 갈등의 발단이 됩니다. 스페인이 포르투갈에게 파라과이 예수회를 양도하기로 한 조약입니다. 스페인의 페르디난드 6세와 포르투갈의 존 5세가 마드리드에서 합의했습니다. 우루과이 강 인근에서 국경 분쟁이 잦아지자 두 제국이 싸우지 않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현재 이 지역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드리드 조약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제국의 국경이 확정되었습니다. 이 국경은 지금의 브라질 국경으로 굳어집니다. 따라서 마드리드 조약은 브라질의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38선을 국경선으로 확정한 얄타 회담만큼 중요한 조약입니다.
영화의 배경인 1750년대에 예수회는 힘이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회는 청빈, 순명한 삶을 살며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교인들이 설립한 단체로 암암리에 공격적으로 활동해오다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 비로소 승인됐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에 적극적으로 선교사를 보낸 것도 예수회입니다. 하지만 당시 제국주의 열강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예수회를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예수회가 노예제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과라니족을 노예로 부리는 것에 대한 예수회와 포르투갈-스페인의 갈등은 영화에도 주요 갈등으로 등장합니다. 결국 제국주의의 압력에 못 이긴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1773년 예수회를 폐지합니다(예수회는 40년 후 복권됩니다).
영화에서 스페인 대표와 포르투갈 대표는 과라니족을 몰아내라고 추기경을 압박합니다. 추기경은 가브리엘이 세운 교회를 찾아가 그곳이 지상 낙원인 것을 알게 되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과라니족을 교회에서 몰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과라니족의 왕은 추기경의 제안을 거절하고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합니다. 가브리엘과 로드리고는 과라니족과 함께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은 비폭력으로 저항하고, 로드리고는 제국주의자들을 향해 칼과 총을 듭니다.
역사 속에서 과라니 전투는 과라니족이 제국 열강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결국 패배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문명이 충돌할 때 생명체의 본성은 결코 조화로운 삶을 지속하도록 내버려두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더 우월한 문명이 열등한 문명을 몰아냅니다. 신의 뜻이든, 소명이든, 정의든, 적폐청산이든 뭐든 명분을 만들어서 한쪽을 박멸시킵니다. 인간은 뒤늦게 이를 자각해 200년이 지난 1986년이 되어 과라니족을 추억하는 ‘미션' 같은 영화를 만들어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잠깐 반성하고 말뿐이죠.
‘미션'의 성과와 한계
‘미션’은 1986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세상에 소개됐습니다. 남미의 오지로 선교를 간 신부의 순교가 극적으로 그려져 카톨릭에서 특히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처치 타임스(Church Times)가 꼽은 역대 종교영화 50선에서 1위를 차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바티칸에서도 이 영화를 선호합니다.
무신론자인 저는 이 영화에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무작정 교리를 설파하는 영화라면 아무리 좋은 영화라고 해도 굳이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다행인 것은 영화가 철저하게 리얼리즘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뜨거운 가슴을 가진 두 남자들을 그린 영화입니다만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들떠 있지 않습니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쌓아갑니다. 다만 과라니족 어린이들의 리액션 쇼트가 과도하게 감정을 대리표현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가 있는데, 그 부분은 못내 아쉽습니다.
폭포에 떠내려가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촬영은 이 영화의 성취입니다.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모습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기술 부문 그랑프리를 받기도 했는데 그만큼 폭포 장면은 압권입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를 지휘하는 음악, 폭포를 비롯한 자연 풍광의 장엄함, 예수를 연상시키는 로드리고와 가브리엘의 고행과 순교 등은 영화를 정서적으로 성스러운 경지로 끌어올립니다.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목숨 바치는 굳건한 의지는 관객의 마음을 정화시켜줍니다.
다만 로드리고를 제외하고는 캐릭터들의 입체감이 약하다는 것은 영화를 종교적인 신성함의 영역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습니다. 평범한 관객이 가브리엘을 이해하기에 그는 너무 높은 곳에 있는 인물입니다. 로드리고를 통해 가브리엘을 이해하고 싶지만 로드리고 역시 지나치게 빨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평범한 캐릭터가 없다는 것은 ‘미션'이 대중영화로서 지닌 최대 약점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션'은 명성에 비해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2000만 달러 정도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수입은 170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킬링 필드'도 그랬지만 ‘미션'을 비롯해 ‘컬러 퍼플'(1985) ‘마지막 황제'(1987) ‘늑대와 춤을'(1990) 같은 영화의 한계는 서양 백인들에게 이방인이자 낯선 ‘그들'을 이해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무의식 중에 영미권 백인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션’은 나중에 이러한 측면에서 철저하게 비판받은 영화 중 가장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백인이 원주민을 이끌면서 교회를 짓고 개종시키는 과정이 너무 이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 또한 원주민 입장에선 또하나의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입니다. 그전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약했습니다. 199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 열풍이 불면서 문화의 다극화 현상이 확산됨에 따라 더 우월한 문화가 있다는 기존의 관념에 균열이 생겨나게 됐고, 그로 인해 ‘미션' ‘늑대와 춤을' 같은 영화에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션'은 한국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미친 영화입니다. 1980~1990년대는 한국 기독교가 크게 확장한 시기였는데 1988년부터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해외 선교를 떠나게 됩니다. 이때 ‘미션'을 ‘인생영화’로 꼽고 있던 교인들은 아프리카 오지로 떠나면서 가브리엘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물론 일부는 현지에서 가브리엘처럼 원주민들과 잘 어울린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현지 범죄단체에게 납치돼 국가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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