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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영화 장르 역사에서 분기점으로 꼽히는 영화.
스티븐 킹 원작 영화 중 최고작으로 꼽히는 영화.
공포영화로는 드물게 아카데미 2개 부문 노미네이트.
2008년 엠파이어지 선정 '역사상 위대한 영화 500편' 중 86위.
미국영화협회(AFI)의 '역대 스릴러 100편' 중 46위.
1976년 11월 세상에 나온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캐리’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졸업파티 장면, 돼지 피를 뒤집어 쓴 시시 스파이섹의 모습과 이어지는 몽타주는 영화 사상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대중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호러영화 장르 역사에서 '캐리'는 여성이 주체인 호러, 하이틴 호러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재개봉하며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는데요. 지금부터 영화 ‘캐리’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자세한 줄거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캐리'의 시시 스파이섹
첫 생리 이후 염력을 갖게 된 왕따 소녀
‘캐리’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캐리 화이트라는 16세 소녀가 자신을 왕따시킨 친구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뭔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라기보다는 피해자인 캐리와 가해자인 주변 인물들의 심리묘사,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놀랄만한 반전을 기발하게 풀어낸 장면 등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든 비결입니다.
타이틀롤인 캐리 화이트는 고등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소녀입니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의 시시 스파이섹이 연기했습니다. 맹목적인 기독교도 엄마와 함께 자란 캐리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체육시간에 배구를 하는 소녀들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캐리 때문에 경기가 한쪽의 승리로 끝나자 소녀들은 캐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운동장을 빠져나갑니다.
영화 '캐리'
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샤워실에서 다 함께 샤워하며 장난치는 소녀들을 보여줍니다. 선정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자유분방해 보이기도 합니다. 고속촬영으로 진행되는 이 장면은 꽤 아름답습니다. 잠시 후 다른 학생들은 모두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고 있는데 캐리는 여전히 샤워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카메라는 다시 한 번 슬로모션으로 캐리의 몸을 클로즈업합니다. 캐리가 몸에 비누칠을 할 때 가슴을 보여주고 허벅지를 보여주고 다리를 보여줍니다. 선정성과 상징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됩니다. 샤워기 꼭지는 마치 남자 성기처럼 보입니다. 거기서 물이 쏟아지면 캐리는 물로 몸을 닦습니다. 비눗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러다가 다리 사이에서 쏟아지던 비눗물이 핏물로 변합니다. 캐리에게 첫 생리가 시작되는 장면인데 마치 첫 섹스 후 처녀막이 터지는 것을 표현한 듯합니다.
첫 생리가 시작됐습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캐리는 첫 생리를 한 뒤 그전에는 없던 능력을 갖게 됩니다. 생각만으로 물체를 조종할 수 있는 염력입니다. 캐리는 그전까지 남자라고는 예수님밖에 모르던 소녀였습니다. 그런 가정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의 의도는 캐리가 염력을 얻게 되는 과정에 종교적인 느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샤워기의 물이라는 성수를 온몸으로 흡수한 캐리는 염력을 잉태했습니다.
수(에이미 어빙)라는 소녀가 있고 수의 남자친구 토미(윌리엄 카트)가 있습니다. 수는 토미에게 왕따인 캐리를 졸업파티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명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수는 캐리에게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콜린스 선생님(베티 버클리)에게 말하지만 그보다는 캐리를 놀려주고 싶다는 의도가 더 커 보입니다.
캐리를 싫어하는 크리스(낸시 앨런)는 남자친구 빌리(존 트라볼타)를 시켜 돼지 피가 든 양동이를 졸업파티 무대 위에 설치합니다. 크리스의 계획은 캐리가 졸업파티 무대에 서면 돼지 피를 쏟아부어 망신을 주는 것입니다.
영화 '캐리'의 시시 스파이섹
자, 이제부터 영화는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의 시간입니다. 히치콕은 폭탄이 터질 것을 관객만 알고 주인공이 모를 때 서스펜스가 시작된다고 했죠. 히치콕의 숭배자인 드 팔마 감독은 ‘캐리’의 후반부를 교과서적인 히치콕식 서스펜스로 만들었습니다.
체육관에서 졸업파티가 시작되고 손수 만든 예쁜 드레스를 입은 캐리는 토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대에 돼지 피가 설치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은 이것이 언제 어떻게 쏟아질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흥겹고 로맨틱한 파티의 와중에 수시로 돼지 피의 존재감을 부각시킵니다. 캐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때 관객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크리스의 투표조작으로 캐리가 프롬 퀸에 당선돼 무대에 오르면 서스펜스는 최고조에 이릅니다. 세상 행복한 캐리의 표정을 짓고 있는 캐리, 왕과 왕비가 된 토미와 캐리에게 환호하는 파티 참석자들, 무대 밑에서 양동이에서 이어진 동아줄을 잡아당길 시점을 재고 있는 크리스와 빌리,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을 눈치 챈 콜린스 선생님을 영화는 교차하면서 보여줍니다.
마침내 돼지 피가 쏟아지고 캐리의 예쁜 드레스와 온몸이 붉은 피로 물듭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창피한 순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캐리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캐리는 염력으로 체육관 문을 닫아버리고 사람들을 향해 소방호스로 물을 뿜어댑니다. 물이 전기에 닿자 일부는 감전됩니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도망치려고 발버둥칩니다. 전기 누전으로 순식간에 건물에 불이 붙습니다. 체육관이 불타 오르고 캐리는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오지만 다른 사람들은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캐리' 집 세트 촬영 현장의 파이퍼 로리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집으로 돌아온 캐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듯합니다. 그녀는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고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악마를 키웠다며 칼을 들고 딸을 죽이려 합니다. 히치콕의 ‘싸이코’와 유사한 칼부림 장면이 이어진 뒤 결국 캐리는 염력으로 엄마마저 죽입니다. 이윽고 염력에 의해 집이 무너져 불타 버리고 캐리는 그 집에 갇혀 숨을 거둡니다.
학교의 수많은 아이들과 교사들이 죽어버린 이 사건으로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파티에 가지 않아 유일한 생존자가 된 수는 죽어서도 미움받는 캐리의 무덤을 찾아가는데 거기서 캐리의 손이 무덤에서 튀어나오는 환각을 보면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캐리'
스티븐 킹의 첫 번째 출간 소설이 원작
영화의 원작은 스티븐 킹이 1974년 출간한 동명 소설입니다. 킹이 집필한 네 번째 소설이지만 출간 순서로는 첫 번째입니다. 킹은 이후 수많은 작품을 써내려갔고, 영화, TV, 연극 등 다른 매체로도 100편 이상의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영화 ‘캐리’는 그 시초입니다. 킹의 원작을 각색해 만든 첫 번째 영화입니다.
소설은 서간문 형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신문기사, 편지, 책 인용문 등 자유로운 형식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한동안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미성년자의 섹스, 폭력, 종교의 부정적인 면 등을 다루었다는 이유였습니다.
영화 '캐리'의 시시 스파이섹
킹이 ‘캐리’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입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였습니다. 킹은 매거진에 단편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마초적인 소설만 쓰고 여자에 대해서는 못 쓴다”는 여성 독자의 말을 듣고 자극을 받아 “나도 마음만 먹으면 여자에 대해 쓸 수 있다”고 답하며 ‘캐리’를 구상했습니다.
킹은 가상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고등학교 샤워실에서 생리하는 여고생을 떠올렸습니다. 다른 소녀들이 생리대를 집어던지며 조롱하는 가운데 이 소녀가 첫 생리를 통해 호르몬 이상으로 염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킹은 샤워 장면을 썼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원고를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립니다.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캐리’를 쓰레기통에서 꺼낸 사람은 그의 아내 태비사였습니다. 킹은 24세이던 1971년, 2살 연하의 태비사와 결혼했습니다. 태비사는 버려진 원고를 읽어보고는 끝까지 써보라고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킹은 아내로부터 여성의 관점에 대한 조언을 얻은 뒤 소설을 완성합니다. 나중에 킹은 이 소설을 아내 태비사 킹에게 바쳤습니다.
캐리 화이트는 킹이 학창 시절 관찰한 두 여학생을 조합해 만든 캐릭터입니다. 킹은 나중에 캐리의 모델이 된 여성 중 한 명이 실제 어떤 사람이었는지 밝혔는데요. 그 여학생은 항상 검정색 치마에 흰색 블라우스 차림으로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옷만 입는 그녀를 아이들이 매번 놀려댔다고요. 딱 한 번 그녀가 옷을 바꿔 입고 온 날을 킹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요. 퍼프소매의 체크무늬 블라우스였고 치마는 당시 유행하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소녀가 직접 사서 갈아입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이들은 그녀를 더 놀렸다고 하네요. 이 경험담이 소설 속 캐리와 주변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그녀의 엄마는 캐리 엄마 마가릿처럼 광신도인 것이 아니라 게임 중독, 경마 중독자였다고 합니다.
킹은 ‘캐리’를 완성한 뒤에도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엑소시스트’ ‘로즈마리의 아기’처럼 사탄과 악마 등 종교적인 공포를 배경으로 신성한 능력을 가진 아이를 그린 이야기가 유행하고 있었는데요. 킹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불쌍하고 작은 소녀 이야기를 누가 읽으려 하겠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1974년 27세의 스티븐 킹
1973년 집필을 마치고 출판을 의뢰했을 때 킹은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집안의 전화도 해지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다는 전화도 받지 못했습니다. 연락이 안되자 출판사 더블데이의 편집자 윌리엄 톰슨은 킹의 집으로 전보를 쳤는데요. 이때가 1973년 3월말이었습니다. 전보 내용은 이랬습니다.
"캐리 더블데이에서 공식 출간. 2500달러 선인세. 축하하네. 미래가 창창해. 빌."
이후 윌리엄과 킹은 절친이 됐습니다. 킹은 선인세로 차를 샀습니다. 그해 5월엔 페이퍼백 판권이 뉴 아메리칸 라이브러리에 4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킹은 이 돈을 받고 교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캐리’의 더블데이 하드커버 버전은 1만 3천부, 뉴 아메리칸 라이브러리 페이퍼백은 1백만부 이상 팔렸습니다. 1973년 첫 해만의 기록입니다.
시시 스파이섹과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와 스티븐 킹 소설의 차이점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스티븐 킹의 친구로부터 ‘캐리’를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소설을 읽자마자 빠져들었고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스튜디오에 영화화를 적극 제안했습니다. 영화 판권이 아직 팔리지 않은 것을 확인한 드 팔마는 스튜디오를 설득해 킹에게 영화 판권을 구입하는데 성공합니다. 킹은 영화 판권을 2500달러에 팔았습니다. 지금 봐도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당시에도 대단한 헐값이었습니다. 그만큼 킹은 ‘캐리’의 흥행 가능성을 낮게 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 ‘캐리’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영화는 미국에서 1976년 11월 개봉해 비평과 상업 모두에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예산 180만 달러를 들여 북미에서 338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전세계에서는 2200만 달러를 추가로 벌어들였습니다.
존 트라볼타, 브라이언 드 팔마, 낸시 앨런
킹은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에 대해 호불호를 명백하게 밝히는 소설가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1980)에 대해 혹평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죠. 킹은 영화 ‘캐리’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 비해 가볍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킹이 1981년 출간한 논픽션 ‘단스 마카브레(Danse Macabre)’에서 드 팔마의 ‘캐리’와 자신의 ‘캐리’를 비교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킹은 자신이 책을 쓴 밑바탕에 페미니즘이 있었다고 썼습니다.
"드 팔마의 접근은 내 책보다 가볍다. '스텝포드 와이프'(아이라 레빈의 1972년 소설)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다룬다면, '캐리'는 여성이 어떻게 힘을 얻는지,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1973년 나는 소설을 집필하면서 여성해방운동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은 여성평등의 미래에서 움츠러드는 남성성을 함의하고 있다. 캐리 화이트는 슬프도록 학대받는 10대이며,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가 파놓은 함정에서 상처받는 영혼의 전형이다.”
킹은 ‘캐리’가 동화 ‘신데렐라’의 기괴한 페미니즘 버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상한 엄마 아래서 자란 이상한 소녀 캐리는 그녀만큼 이상한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나중엔 자살한다는 구상까지 해놓았습니다.
영화 '캐리'의 시시 스파이섹
하지만 드 팔마 감독의 영화는 페미니즘보다는 캐리라는 소녀의 지독한 외로움과 곪아버린 상처에 더 집중하고 있는 편입니다. 수줍음과 계속되는 자기학대와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쌓이고 쌓여 졸업파티에서 폭발합니다. 여성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캐리’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기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캐리는 여자들 사이에서 왕따당하는 소녀일 뿐입니다.
영화 초반부 여학생들의 집단 샤워 장면과 중반부에 여학생들이 반바지만 입고 체조하는 수업 장면에서 카메라는 여학생들의 골반과 성기, 다리 등을 수평 트레킹으로 나열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시대에는 확실히 관음증적 시선으로 비판받을 장면들입니다.
영화 '캐리'의 불타는 집
사라진 오프닝, 바뀐 엔딩
영화의 당초 오프닝과 엔딩은 캐리 화이트의 집 위로 하늘에서 돌들이 떨어져 집이 붕괴되는 것이었습니다. 드 팔마 감독은 실제로 이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셀룰로이드 필름에 물방울 같은 기포가 생기는 바람에 전량 폐기해야 했습니다.
감독은 오프닝을 배구 신과 샤워 신으로 바꿨고, 집은 돌에 맞아 무너지는 대신 마지막 장면에서 불타 주저앉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제작진은 돌이 나오는 장면을 모두 버렸기 때문에 오리지널 오프닝 장면은 어디서도 볼 수 없습니다.
엔딩은 수가 캐리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으로 대체됐습니다. 감독은 이 장면을 몽환적으로 찍으려 했는데 존 부어맨 감독의 ‘서바이벌 게임’(Deliverance, 1972)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손이 불쑥 튀어나오는 '캐리'의 엔딩은 워낙 강렬해 졸업파티 장면과 함께 곧잘 회자됩니다. 훗날 샘 레이미 감독은 저예산 데뷔작 ‘이블 데드’(1981)를 찍으면서 이 장면에 오마주를 바쳤습니다.
영화 '캐리'의 마지막 장면
'캐리'의 엔딩에 등장하는 손은 진짜 스파이섹의 손입니다. 스파이섹은 스턴트맨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돌무덤 속에 들어가서 연기했습니다. 감독은 주인공 여배우를 땅속에 파묻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스파이섹의 남편이 그녀를 땅속에 묻는 것을 도왔다고 합니다. 이런 연기 투혼 덕분에 스파이섹은 캐리 역할로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릅니다.
그전까지 존재감이 미미한 배우였던 스파이섹은 이후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고, 마침내 1980년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광부의 딸’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영화 '캐리'의 시시 스파이섹
캐리 하면 떠오르는 시시 스파이섹의 창백한 얼굴
‘캐리’는 시시 스파이섹의 창백한 얼굴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소심해 보이고 자신감 없고 주근깨 투성이인 캐리는 곧 스파이섹이고, 스파이섹이 곧 캐리입니다.
16세 고등학생을 연기한 스파이섹은 이 영화 촬영 당시 26세였습니다. 그녀는 미술감독인 남편 잭 피스크의 추천으로 ‘캐리’ 오디션에 응했습니다. 피스크는 ‘캐리’의 미술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이 워낙 인기 있었기에 많은 젊은 여배우들이 캐리 역할의 오디션을 봤습니다. 그중에는 훗날 유명 배우가 되는 멜라니 그리피스도 있었고, 드 팔마의 아내가 되는 낸시 앨런도 있었습니다. 낸시 앨런은 캐리를 너무 싫어해 돼지 피를 쏟아붓는 크리스 역할로 출연합니다.
오디션에서 드 팔마 감독의 첫 번째 선택은 스파이섹이 아니었습니다. 드 팔마는 당초 ‘아워 타임’(1974)의 벳시 슬레이드를 캐리 역할에 낙점했습니다. 하지만 스파이섹은 영화 촬영을 위해 스케줄을 조정하고, 캐리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푸석하게 하고 나타날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결국 드 팔마는 스파이섹을 캐리 역할로 최종 낙점합니다.
영화 '캐리' 포스터
캐리를 둘러싼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역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 순위'에서 ‘캐리’를 15위에 랭크시켰습니다. 그만큼 '캐리'는 하이틴 영화의 금자탑입니다. 출연한 배우들 역시 이 영화를 기점으로 훗날 스타가 됐습니다.
우선 캐리를 연기한 시시 스파이섹과 캐리 엄마 마가릿을 연기한 파이퍼 로리는 제49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공포영화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데 더군다나 특수효과나 분장, 촬영 등 기술상이 아닌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은 더 특별합니다.
엄마 마가릿 역할의 파이퍼 로리
마가릿 역할의 파이퍼 로리는 연기 잘 하는 할리우드 미녀배우로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캐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 15년 전 이미 그녀는 ‘허슬러’(1961)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적 있습니다. 또 '캐리'로부터 10년 후엔 ‘작은 신의 아이들’(1986)에서 사라의 엄마 역할로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릅니다. 이렇게 3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수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데이비드 린치의 TV시리즈 '트윈픽스'(1990)에 출연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수 역할의 에이미 어빙
수 역할의 에이미 어빙은 '캐리'가 첫 영화입니다. 하지만 연기 경력은 이미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녀는 13살때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해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다가 23세에 '캐리'로 영화에 진출했습니다. '캐리' 이후 드 팔마 감독의 스릴러 '전율의 텔레파시(The Fury)'(1978)에선 첫 주연을 맡았습니다. 1983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감독의 영화 '옌틀'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후 우디 앨런의 '해리 파괴하기'(1997), 스티븐 소더버그의 '트래픽'(2000) 등에 출연했습니다. 1999년엔 '캐리 2'에 출연했는데 '캐리' 원년 멤버 중 유일한 출연자입니다.
어빙은 감독들의 뮤즈로도 유명한데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1985년 결혼해 1989년 이혼했고, 브라질 출신 브루노 바레토 감독과 1996년 결혼해 2005년 헤어졌습니다.
크리스 역할의 낸시 앨런
크리스 역할의 낸시 앨런은 ‘캐리’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할리우드 대표 배우입니다. 드 팔마 감독과 1979년 결혼하면서 그의 영화에 계속해서 출연했는데 ‘홈무비’ ‘드레스드 투 킬’ ‘블로우 아웃’에서 앨런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1984년 이혼했습니다.
앨런은 1970~1980년대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감독들과 잇따라 작업했습니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당신 손을 잡고 싶어'(1978), 스티븐 스필버그의 '1941'(1979), 스튜어트 라필의 '필라델피아 실험'(1984), 아벨 페라라의 TV영화 '글라디에이터'(1986), 폴 버호벤의 '로보캅'(1987), 에릭 로샹의 '패트리어트'(1994) 등입니다. 앨런은 2008년 연기자에서 은퇴하고, 유방암 방지 캠페인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콜린스 선생님 역할의 베티 버클리와 시시 스파이섹
콜린스 선생님 역할의 베티 버클리는 영화보다는 뮤지컬에서 더 유명한 배우이자 가수입니다. 1983년 뮤지컬 '캣츠'의 그리자벨라 역할로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94~1996년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선셋대로'를 공연했습니다. 이후 '사랑의 승리'로 1997년 토니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에미상, 그래미상에도 각각 두 번 노미네이트됐고, 2012년엔 아메리칸 시어터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습니다. 1988년엔 '캐리'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버전에 출연했는데, 이땐 콜린스 선생님이 아닌 캐리의 엄마 마가릿 역할을 맡았습니다.
영화 출연작으로는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의 '텐더 머시'(1983),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실종자'(1988), 우디 앨런 감독의 '또다른 여인'(1988),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해프닝'(2008) 등이 있습니다.
토미 역할의 윌리엄 카트와 시시 스파이섹
토미 역할의 꽃미남 윌리엄 카트는 ‘캐리’가 영화 데뷔작입니다. 캐리에게 졸업파티 데이트를 신청하는 로맨틱한 모습이 부각돼 그는 '첫 사랑'(1977), '빅 웬즈데이'(1978) 등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다가 1981~1983년 방송된 ABC의 TV시리즈 'The Greatest American Hero'로 유명해졌습니다. 한국에선 당시 '날으는 슈퍼맨'으로 방영됐습니다. 이후 그는 호러컬트 영화와 ‘페리 메이슨’ 시리즈에 출연했지만 큰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빌리 역할의 존 트라볼타
빌리 역할의 존 트라볼타는 너무 유명한 배우라 굳이 언급이 필요할까 싶습니다만 간략하게 대표작만 짚겠습니다. 그는 원래 뮤지컬 가수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리스'가 그의 첫 뮤지컬입니다. 스크린 데뷔는 1972년이었고, 1976년 '캐리'의 성공 이후 1977년 '토요일 밤의 열기'와 1978년 영화 '그리스'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가수로서는 1976년 싱글 'Let Her In'을 발매해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0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 트라볼타는 슬럼프를 겪습니다. '환상의 듀엣'(1983)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과 다시 호흡을 맞춰보지만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칸 지골로'(1980), '사관과 신사'(1982)를 잇따라 거절하며 작품 보는 눈이 없는 배우로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제2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그를 부활시킨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입니다. '펄프픽션'(1994)에서 그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디스코 춤을 스스로 패러디하는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됩니다. 이후 '겟쇼티'(1995), '브로큰 애로'(1996), '페이스오프'(1997) 등을 연달아 흥행시켰고, 2000년대에 들어 중후한 매력을 발산하며 액션 스릴러 영화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속편 '캐리 2'(1999) 포스터
‘캐리’ 프랜차이즈
영화 ‘캐리’의 대성공은 후속작으로 이어졌습니다.
198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됐고, 이 뮤지컬은 2012년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재공연됐습니다.
1999년에는 23년만에 영화 속편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캐리 2’(The Rage: Carrie 2)로 캐리에게 이복 자매가 있는데 그녀에게도 염력이 있다는 설정입니다.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인 수(에이미 어빙)가 ‘캐리 2’에서 고등학교의 상담 교사로 특별출연 했습니다.
2002년 TV영화 '캐리'의 안젤라 베티스
2002년엔 동명의 TV영화가 제작됐습니다. 안젤라 베티스가 캐리 역할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배경을 현대 시대로 바꿨고, 캐리가 엄마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원래 엔딩도 다르게 바꿨습니다. 이 영화에서 엄마를 죽인 캐리는 수의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뒤 플로리다에서 숨어 지냅니다. 이는 시리즈화를 염두에 둔 설정이었습니다. 베티스의 열연은 호평받았지만 영화는 원작보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2013년 '캐리' 리메이크작의 클로이 ㅣ모레츠와 줄리안 무어
2013년에는 MGM 스튜디오가 동명의 리메이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의 킴벌리 피어스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고, 클로이 모레츠가 캐리, 줄리안 무어가 엄마 마가릿 화이트, 주디 그리어가 데자르댕 선생님 역할을 맡았습니다.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충실하게 재현했습니다만 드 팔마 감독의 영화에 못 미친다는 평이 다수였습니다.
2018년엔 TV시리즈 '리버데일'이 31번째 에피소드 ‘A Night to Remember’를 만들면서 ‘캐리’를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피노 도나지오
피노 도나지오의 음악
‘캐리’의 영화음악은 피노 도나지오가 맡았습니다. 지금 들어보면 음악이 매우 과장됐다고 느껴지지만, 당시엔 이렇게 영화 분위기를 압도하는 음악이 대세였습니다. 마가릿이 칼을 들고 캐리와 대치하는 장면에선 일부분 버나드 허먼의 ‘싸이코’(1960) 음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도나지오는 졸업파티 장면에서 나오는 팝송 두 곡도 직접 작곡했습니다.
도나지오는 ‘캐리’의 성공 이후 드 팔마의 작품에 계속 참여해 '홈 무비'(1980), '드레스드 투 킬'(1980), '블로우 아웃'(1981), '보디 더블'(1984), '레이징 케인'(1992), '도미노'(2019)의 음악도 맡았습니다.
영화 '캐리'의 졸업파티 장면
졸업파티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
‘캐리’의 졸업파티 장면은 영화 역사상 명장면으로 손꼽힙니다. 특히 캐리가 무대에 오른 뒤 조마조마한 순간이 지난 후 캐리가 돼지 피를 뒤집어 쓴 다음부터의 장면들은 창의적인 편집의 교과서입니다. 몽타주가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지 보여준 최고의 장면입니다.
분노한 캐리, 닫히는 문, 소리 지르며 혼비백산한 사람들 등을 보여주고 있는데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고, 생략할 부분은 생략합니다. 과감한 수직 분할과 슬로모션은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염력으로 솟아오른 소방 호스가 물을 뿌릴 때 붉은색으로 전환된 화면으로 인해 물은 피처럼 보이는데 그로 인해 공포감이 배가됩니다.
‘캐리’에 이 시퀀스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영화는 평범한 하이틴 공포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드 팔마 감독은 10분 남짓 계속되는 이 창의적인 장면을 통해 자신이 왜 재능있는 감독인지를 증명했고, ‘캐리’를 영화 역사상 기억에 남을 수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캐리의 염력 공격으로 최후를 맞는 마가릿(파이퍼 로리)
‘캐리’의 로튼토마토 신선도는 92%, 평점은 8.3으로 매우 높습니다. 특히 리뷰를 보면 졸업파티 장면에 대한 극찬이 많습니다. "역사상 가장 기억할만한 혼란스런 졸업파티 장면"이라는 평이 다수입니다.
작고한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절대적으로 매혹적인 호러영화"라고 평하며 ‘캐리’에 별 4개 만점에 3.5개를 줬습니다. 뉴요커의 평론가 폴린 카엘은 "캐리는 '죠스' 이후 가장 무섭고 재미있는 영화"라고 평했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순위에서 '캐리'를 8위에 랭크시켰습니다.
하지만 좋은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평가도 있습니다. 빌리지 보이스의 평론가 앤드류 새리스는 "슬로모션으로 늘어진 시퀀스에 사건이 너무 적다"라고 썼고, 시카고 트리뷴의 평론가 진 시스켈은 별 4개 만점에 2.5개를 주며 "스타일이 없고 선정적"이라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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