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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비저블맨'이 지난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축하보다는 연민이 더 간다. 일주일간 모은 관객 수가 20만 명을 겨우 넘기 때문이다. 하루 관객 수가 1만5000명에 불과하다. 1위가 이 정도니 그 아래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더 처참하다.
영화는 제목따라 간다는 격언(?)을 적용해보면 '인비저블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관객을 맞이하는 중이다. 관객마저 투명인간으로 만들었지만 '인비저블맨'은 묻히기에 아쉬운 수작이다. 기존 '투명인간' 서사를 영리하게 각색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비저블맨'의 어떤 점이 특별한지 살펴보자.
영화 '인비저블맨'
유니버설의 투명인간 시리즈 리부트
1897년 H G 웰스가 과학소설 '인비저블맨'을 출간하고 1933년 제임스 훼일 감독이 처음 영화로 만든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투명인간 영화가 있었다. 1940년 '인비저블맨 리턴즈' '인비저블 우먼' 1942년 '인비저블 에이전트' 1944년 '인비저블맨의 복수' 1951년 '애보트와 코스텔로 인비저블맨을 만나다' 1958년 TV시리즈 '인비저블맨' 1975년 '인비저블맨' 1976년 TV시리즈 '제미니맨' 1984년 TV시리즈 '인비저블맨' 1992년 '인비저블맨의 추억' 2000년 '할로우맨' 등등 대충 나열해본 작품만 이 정도다.
1930~1950년대 인비저블맨 시리즈로 재미를 본 유니버설은 2016년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인비저블맨 시리즈를 부활시키는 계획을 포함한 '다크 유니버스'를 구상했다. 조니 뎁을 투명인간 슈퍼 다크히어로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2017년 다크 유니버스의 첫 영화였던 '미이라'가 흥행에서 부진하면서 무산됐다.
대신 유니버설은 인비저블맨을 개별 영화로 만들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예산도 대폭 깎이고 스타 캐스팅도 약해졌다. 그 결과물이 이번에 개봉한 리 워넬 감독의 영화다. 제작비 700만 달러로 저예산 공포영화 명가 블룸하우스에서 제작을 맡았다. 비록 규모는 작아졌지만 영화는 훨씬 참신해졌다.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드러낸 투명인간
웰스의 소설 '인비저블맨'은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투명인간이 된 남자의 이야기였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된 그는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지만 주민들은 합심해 괴물을 몰아낸다. 보이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만큼 보이지 않는 존재도 보이는 존재를 두려워해 소설은 투명인간이 주민들에 쫓겨 도망오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웰스의 책 이전에도 투명인간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기게스라는 목동은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를 발견한 뒤 온갖 사악한 짓을 저지르다가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다. J R R 톨킨은 1954년 '반지의 제왕'을 쓰면서 기게스를 절대반지를 욕망하는 골룸 캐릭터로 변형시켰다.
1933년 제임스 훼일 감독의 '인비저블맨'
이처럼 투명인간 서사는 신체를 감출 때 오히려 밖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이는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투명인간이 된 주인공의 일탈,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잠재된 욕망을 자극하는 과정, 정체성을 잃고 타인과 소통이 불가능해진 고통과 외로움, 결국 신비의 묘약인 줄 알았던 자신만의 능력이 그를 파멸로 이끄는 과정 등이 투명인간 영화의 대체적인 줄거리였다.
그런데 이번 영화 '인비저블맨'은 이를 다른 관점에서 각색했다. 주인공을 인비저블맨이 아닌 그에게 스토킹 당하는 여자로 바꾼 것이다. 그동안 시도한 적 없던 영리한 각색이다. 그 결과 120년 전 탄생한 고전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보이게 됐다.
투명인간에게 스토킹당하는 여자
영화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모스다. 요즘 톰 크루즈와의 열애설로 화제에 오른 82년생 배우다. 열애설은 둘 다 부인했다.
영화는 모스가 연기한 세실리아가 바다가 보이는 멋진 저택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누구나 꿈에 그릴 법한 집에서 남자친구 에이드리언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녀는 불행하다. 집착 심한 에이드리언을 견딜 수가 없어서다.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한밤중에 집을 빠져나온다. 언니가 차를 몰고 나타나 그녀의 탈출을 돕는다.
영화 '인비저블맨'
세실리아는 어릴적 소꿉친구인 제임스의 집에 머무른다. 제임스는 10대 딸을 키우며 사는 경찰관이다. 그녀는 더 이상 에이드리언을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날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녀에게 유산 상속을 알리는 우편물이 날아온다. 에이드리언은 자살했고 그녀에게 유산을 남겼다는 것이다.
유산 신탁 서류에 서명한 이후 세실리아는 집에서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위 사람들은 에이드리언은 이미 죽었다며 안심시키지만 그녀는 불안하기만 하다. 광학 전문가였던 에이드리언이 마침내 투명인간이 되는데 성공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자 그녀는 에이드리언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바닷가의 저택을 찾아간다.
영화 '인비저블맨'
새로운 인비저블맨이 호평받는 이유
영화는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91%를 받을 정도로 호평받고 있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공포스릴러로써 서스펜스를 잘 살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남자는 세실리아에게 공포 그 자체다. 아무도 없는 부엌에 가스불이 켜지고 카페트에 살며시 발자국 모양이 만들어지고 불안감에 시달리던 그녀가 작정하고 쏟아버린 페인트에 남자의 형체가 살짝 드러날 때 등골이 오싹해진다. 후반부엔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 심리극으로써 묘미도 있다.
영화 '인비저블맨'
또다른 이유는 기존 투명인간 서사를 뒤집은 시도다. 이전까지 투명인간 영화는 인비저블맨의 관점에서 진행돼 그에게 연민을 느끼도록 감정선을 만들어갔다. 투명인간이 된 미친 과학자는 여성을 위협해 폴 버호벤의 '할로우맨'에는 강간하는 장면의 세부 묘사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위협받는 여성의 시점으로 전개하면서 투명인간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이 서사의 큰 줄기를 차지한다. 인비저블맨은 공포의 대상일 뿐 연민이 갈 여지를 차단한다. 영화는 주인공 여성의 노출을 자제해 관음증의 시선이 되는 것을 피한다. 대신 초반에 무기력하고 나약하던 세실리아를 점점 강인한 여성으로 만들어간다. 후반부 반전도 이런 캐릭터 변화의 틀 속에서 이뤄지기에 더 개연성이 있다. 영화는 스토킹, 가스라이팅 등 여성을 대상화한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엄격해진 시대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인비저블맨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스토리의 신선함과 더불어 영화가 투명인간을 만든 방식도 기존 영화와 다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투명인간을 구현했다.
투명인간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처음부터 아예 허무맹랑한 가정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소설가였던 웰스는 소설 속에 과학적 원리를 꽤 자세히 적어놓았는데 요약하자면 인간의 신체가 공기와 똑같은 굴절지수를 갖게 되면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과학자들이 직접 투명인간을 연구한 적도 있는데 인간의 시각 한계를 이용해 안 보이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과 특수한 물질을 만들어 가시광선을 차단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전자는 빛을 휘어 돌아가게 하면 눈앞에 있는 물체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고, 후자는 빛을 산란시키지 않는 음주광선 성질을 가진 메타물질을 개발하면 빛이 모두 한 방향으로 나가게 돼 보는 각도에 상관없이 투명하게 보일 거라는 가설이었다. 특히 후자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에서 투명 망토가 인기를 끌면서 활발하게 연구돼 미국 오스틴 텍사스주립대 연구진은 플라스몬 메타 인공물질로 아주 작은 원통 물체를 안보이게 만든 적도 있다.
영화 '인비저블맨'
이번 영화에 등장한 투명인간은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에 나온 광학미채 기술을 현실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수많은 카메라를 이용해 뒤의 배경이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방식으로 증강현실 원리를 적용했다. 카메라로 뒤를 촬영하고 이를 컴퓨터로 증강시켜 반사장치와 프로젝터를 이용해 전면에 투사하면 보는 사람은 뒤를 촬영한 이미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은 카메라가 붙어 있는 옷을 입고 있지만 인간의 착시 효과를 이용해 보이지 않게 해 투명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여전히 의문이 많이 남지만 해리포터의 망토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에서 제이크 질렌할이 이런 방식으로 악당이 된 적 있다.
유니버설은 '인비저블맨'을 프랜차이즈로 만드는 대신 앞으로도 이번 영화처럼 독자적인 프로젝트로 리부트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영화는 1940년작 '인비저블 우먼'의 리부트로 엘리자베스 뱅크스가 감독 겸 주연을 맡을 예정이다.
인비저블맨 ★★★☆
시의적절하고 영리한 리부트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20/03/27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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