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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육교 위에서 아사코는 바쿠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바쿠는 다가와 이름을 묻더니 대뜸 키스한다. 아사코는 낯선 남자의 키스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아사코는 바쿠와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어느 날 바쿠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나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2년 후 아사코는 오카사를 떠나 도쿄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를 우연히 만난다. 제멋대로인 바쿠와 달리 료헤이는 자상한 남자다. 아사코는 혼란스럽지만 자신에게 고백하는 료헤이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또 흐른다.
료헤이는 아사코에게 청혼하며 오사카로 가서 살자고 한다. 망설이던 아사코는 마음 속에 있던 고민을 털어놓는다. 사실 처음 료헤이에게 끌린 것은 바쿠와 닮았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료헤이는 그녀를 받아들이고 이제 두 사람은 행복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때 사라졌던 바쿠가 나타나면서 아사코의 마음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아사코'는 자존감이 약한 여성이 사랑에 빠진 이야기다. 아사코가 운명이라고 믿은 사랑은 끌려가는 사랑이다. 마음을 흔들어 놓는 감정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는 그녀는 7년 만에 나타난 바쿠를 보자마자 갈피를 잡지 못한다. 5년 간 사귄 료헤이를 좋아하게 됐다고 믿고 있지만 그 믿음은 바쿠의 존재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영화는 과거의 연인과 단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났을 때 과거가 어떻게 발목을 잡는지 보여준다. 가장 가까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결정을 내렸으면서도 그 결정이 충동적이었던 탓에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아사코는 지켜보는 입장에선 '민폐' 캐릭터지만 우리에겐 누구나 아사코 같은 면이 있기에 마냥 비난만 하기는 쉽지 않다.
"난 죽을 때까지 널 신뢰할 수 없을 거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료헤이는 아사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워야 할 커플의 미래는 아마도 험란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아사코에게는 참 다행스런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7년 동안 떠나간 남자를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담아놓고 있었지만 마침내 끌려가는 사랑을 잘라내고 제자리를 찾을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료헤이에게 돌아가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앞으로 그녀에게 펼쳐질 미래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 아사코에겐 일말의 가능성이 보인다.
단지 청춘영화로 한정하기엔 '아사코'의 만듦새는 아주 훌륭하다.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세련된 영상미에 절제하는 연출력은 가끔 모더니즘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감정이 끌어오르는 순간 여백의 미를 활용해 관객으로 하여금 한 발 떨어져 사랑의 의미를 자문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장면 도망가는 료헤이와 쫓아가는 아사코를 원경에서 롱 쇼트로 촬영한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하마구치 감독의 탁월한 성취다.
아쉬운 것은 아사코 역할을 맡은 카라타 에리카의 연기력이다. 인형처럼 예쁜 그녀는 그러나 아사코의 감정 폭을 넓게 소화해내지 못한다. 흔들리고 갈등하고 결심해야 하는 순간에도 예쁜 얼굴에 표정이 갇혀 있는 느낌이어서 안타깝다.
아사코 ★★★★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력. 아쉬운 연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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