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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신경지다." "멀미날 것처럼 어지럽다."
영화 'PMC: 더 벙커'에 대한 관객들의 상반된 반응이다. 이 영화에 대한 별점평가는 0점 아니면 10점으로 극단적이다.
'PMC: 더 벙커'는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과 하정우가 다시 뭉치고 발성 좋은 이선균이 가세한 프로젝트다. '더 테러 라이브' 촬영 도중 제작진은 지하에서 거대한 벙커를 발견했고,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강철비' '공작' 등 한국영화가 대작 액션을 만들 때 북한은 단골 소재다. 그런데 'PMC: 더 벙커'가 취한 전략은 여느 북한 소재 한국영화들과 다르다. 폐쇄된 공간에서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는 듯한 액션 등 스타일뿐만 아니라 영화를 소개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지금부터 영화 'PMC: 더 벙커'가 취한 영리한 전략을 하나씩 살펴보자.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시점이 혼재돼 있다
1인칭 게임 영화의 서막을 연 ‘하드코어 헨리’는 시종일관 1인칭으로만 진행돼 어느 순간부터 어지럽고 답답한 상태에서 영화를 봐야 했다. 아무리 신기술이라도 처음에만 신기하지 반복되면 지루해진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어서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배우가 나온다고 해도 그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 것과 같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PMC: 더 벙커’의 김병우 감독은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는 듯 1인칭 시점을 고집하지 않는다. 영화는 시점을 넘나든다. 헬멧에 부착한 소형 카메라, 바닥을 굴러다니는 이동식 카메라, 휴대폰 카메라, 벙커 내 CCTV 등 다양한 카메라를 활용하는 것과 더불어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할 땐 일반적인 전지적 작가 시점의 카메라도 사용한다.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전환한다. 인물의 폐쇄된 심리를 강조하고 싶을 땐 CCTV를 더 많이 보여주고, 현장감을 강조하고 싶을 땐 시점 쇼트를 더 많이 노출하는 식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은 도구일 뿐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전략이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다
한반도 전쟁, 미국 대선, 중국의 개입 등 영화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영화가 주인공을 갈등에 빠뜨리는 요인은 따로 있다. 그것은 위기상황에서 동료를 구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를 묻는 윤리적인 문제의식이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다가 동료가 의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동료를 버리고 자신만 살 것인가. 적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총에 맞은 동료를 데려갈 것인가 혹은 두고 갈 것인가 등 영화는 계속해서 비슷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남-북-미-중의 정치공학적 스토리는 배경지식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지만, 영화가 중간중간 던지는 윤리적 질문들은 꽤 보편적이어서 누구나 갈등의 원인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즉,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이다.
전사를 생략하고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준다
하정우가 연기한 에이햅은 겉보기에는 뛰어난 능력과 동료애까지 지닌 용병 대장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의족을 하고 있고, 마음 한구석엔 동료를 살리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약한 인물이다. 감독은 에이햅의 전사를 생략한 대신 이렇게 몸과 마음에 핸디캡을 주었는데 이는 드라마에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스펙터클에 집중하면서도 캐릭터를 단기간 내에 구축하기 위한 감독의 아주 영리한 전략이다.
강하고 멋지고 완벽한 인물이 영화에 등장하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사실 관객의 마음을 얻기는 힘들다. 악당을 주인공 이상으로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물리치는 데서 오는 쾌감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감독들에게 가장 영화화하기 힘든 슈퍼히어로가 누구인지 물어본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슈퍼맨이 단연 1위로 꼽혔는데 그 이유는 슈퍼맨에겐 약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하정우는 영화 속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다국적 용병들을 지휘하는 캡틴 역할을 맡았다. 관객은 한국인이 어떻게 지하 용병의 캡틴이 됐을까 라는 의문을 품고 영화를 볼 것이다. 이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영화에는 에이햅의 전사가 필요했지만 사실 이는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도 관객을 납득시키기 쉽지 않은 설정이었다. 따라서 감독은 이를 위해 시간을 쏟느니 차라리 이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주인공에게 매우 현실적이고 결정적인 핸디캡을 주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웅성을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구성했다. 이는 영화의 약점을 단기간에 만회한 훌륭한 전략이다. 벙커 탈출이 메인 서사이니만큼 주인공에게 장애물이 많을수록 관객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 대사에 한글자막이 등장한다
이토록 영어 대사와 한글자막이 많이 나오는 한국영화는 아마도 ‘설국열차’ 이래 두 번째일 것이다(두 영화 모두 CJ가 제작했다). ‘PMC: 더 벙커’의 대사는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는데 이는 해외 배급에서 유리한 전략이다. 배경은 남한이지만 어차피 국적에 큰 의미가 없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고, B급 미국영화 정도의 퀄리티는 갖췄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영어 대사는 영미권 영화시장 진출에 유리하다. 영화에서 중국을 유일한 적으로 설정했는데(그럼에도 중국인은 등장하지 않지만) 이 역시 미국시장을 노린 셈법이다. 한국 관객은 외국영화를 볼 때도 한국어 더빙보다는 영화 보면서 자막 읽는 것을 선호하기에 영어 대사에 한글자막을 넣은 선택이 한국 관객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오히려 하정우의 영어 발음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올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영화는 주인공이 벙커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듯 보였으나 마지막에 지금까지와 결이 다른 액션 시퀀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쯤되면 끝났겠지 싶을 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One More Climax’ 전략이다. 롤러코스터가 도착지를 앞두고 전혀 생각지 못한 급강하를 하는 듯한 이 장면은 그때까지 지하의 갑갑한 화면만 봐오던 관객에게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감독의 전작 ‘더 테러 라이브’에선 카메라가 건물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엔 조금 더 업그레이드했다고 볼 수 있다.
PMC: 더 벙커 ★★★☆
폐쇄된 공간에서 1인칭 액션. 영리해서 매력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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