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자타공인 혹은 노스트라다무스와 마야인이 동시에 예언해 유명해진 '지구 멸망의 해' 2012년을 맞아 임필성 감독과 김지운 감독이 함께 만든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멋진 신세계> <천상의 피조물> <해피 버스데이>의 세 편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각각 좀비, 로봇, 그리고 혜성을 소재로 상상의 세계를 그린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작년도는 무려 6년 전이다. <멋진 신세계>의 여주인공 고준희가 21세 신인 시절에 찍은 영화가 그녀가 스물여덟이 되는 해에 개봉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6년 전에 만들어두었다가 개봉을 못한 채 묵혀놓은 영화이다보니 영화의 만듦새가 요즘 영화들과 다르다. 뭔가 짜임새가 없고 스토리는 진부하고 특수효과도 어색해 보인다. 또 인류멸망을 제시하는 상상력도 그다지 새로워보이지는 않는다. 그나마 해탈한 로봇이랄지 당구공을 외계에서 주문했다든지 하는 몇몇 독특한 아이디어 정도만 사줄 만하다. 다분히 2012년을 의식해 개봉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다지 주목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첫번째와 세번째 영화가 임필성 감독의 영화이고 두번째 영화는 김지운 감독 영화다. 그런데 김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은 임 감독의 영화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임 감독 영화들이 인류가 멸망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는데 반해 김 감독의 영화는 해탈한 로봇이 스스로 멈추는 데서 끝난다. 새로운 부처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인류멸망이라고 보고 한 제목 아래 묶은 듯한데 그다지 잘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세 편이 하나의 영화로 묶이다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된다. 아이디어와 만듦새의 측면에서 보자면 개인적으로 <해피 버스데이>가 가장 좋았고 <멋진 신세계>가 가장 별로였다. <해피 버스데이>는 혜성충돌 카운트다운과 이에 대피하는 가족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재치있게 그리고 있는데 혜성이 사실 당구공이라는 아이디어는 지금 생각해도 기막히다.



<멋진 신세계>는 한창 떠들썩했던 광우병에서 비롯된 인류멸망을 그리고 있는데 미친 소고기를 먹은 주인공이 숙주가 되면서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간다.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상상력이라고 느껴지지만 이 영화가 2008년 촛불시위가 있기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나리오였을 것으로 느껴지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참 산만해서 사회 모순을 말하고 싶은건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헛갈린다. 차라리 강풀의 웹툰 [당신의 모든 순간]처럼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았을 뻔했다.


<천상의 피조물>은 로봇이 스스로 열반에 든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뼈대로 해서 등장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늘려나간 듯한 작품이다. 탁 트인 세트 덕분에 인물 클로즈업마저 시원스럽게 보이는 반면 대사가 너무 많다. 물론 대사가 많아도 하고 싶은 말을 우회적으로 하는 방식을 택하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그런 미덕을 모른다. 그저 로봇에게 "왜 아무 말도 못하냐"고 채근대는 식이다. 그리고 로봇은 마치 불경에나 나올 법한 말을 직접 한다. 그리고 뒤에 서 있던 불자들은 너무 티나게 감탄한다. 재미있는 소재이지만 좀더 함축적인 전개 방식을 찾았다면 더 큰 여운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대체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운 <인류멸망보고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화려한 캐스팅은 아주 놀랍다. 류승범, 고준희, 박해일, 김강우, 조윤희, 김규리, 송새벽, 류승수, 이영은, 배두나, 진지희, 그리고 봉준호까지.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임필성 감독이 까메오 출연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자신의 영화에 봉 감독을 직접 출연시킨 마성의 인맥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이 많은 바쁜 배우들의 연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몇 안되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나저나 올해 2012년 지구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