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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달 탐사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숱한 도전 끝에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마침내 달에 착륙했다. 선장 닐 암스트롱은 달 뒷편 고요한 바다에 첫발을 내딛으며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잘 알려진 아폴로 11호와 암스트롱에 관한 이야기다. 달 착륙이 조작됐다는 음모론도 있었지만 진작에 과학적으로 반박당했다. 아직도 음모론을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조금만 시간을 들여 검색을 해보기 바란다. 쉽게 음모론에 빠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한쪽 눈만 뜬 채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어느새 믿음의 문제가 되어버려 안타깝다.
'퍼스트맨'은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 개인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가 우리가 모두 아는 이야기로부터 차별화하는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달에 가기까지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이 겪어야 했던 압박감 등 심리 묘사, 또 하나는 1960년대에 달에 가기 위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고증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초등학생용 위인전에 등장할 만큼 업적을 남긴 암스트롱이 실제로는 어떤 심적 고통을 감당해 왔는지, 또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도 않았고, 가정에서는 형편없는 아빠이자 남편이었고, 사교성도 갖추지 못한 중년의 남자가 어떻게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아니 돌파하고,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전진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1960년대 컴퓨터도 제대로 없던 시절, 달을 향해 로켓을 쏘아올리는 과정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진행됐다. 투박한 계기판, 손으로 일일이 조작하는 스위치, 불에 타버리는 가연성 재료, 폐쇄공포증에 걸릴 것 같은 조종석, 수동으로 운전하는 착륙선, 효율성이 떨어지는 연비, 로켓의 무게가 연료에 좌우되는 기술적 한계 등 모든 것이 지금과 달랐다.
이뿐만 아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는 달 탐사에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히피들은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반대 시위를 벌였다. 영화에는 NASA(미국항공우주국) 건물 앞에서 "백인을 태워 달에 보낼 천문학적 돈으로 차라리 빈민을 지원하라"고 외치는 흑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NASA는 조직의 명운을 걸고 정치력을 발휘했고, 냉전시대 국가적 자존심 때문에 두 대통령(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은 달 탐사를 밀어붙였다. 이 모든 과정을 암스트롱은 묵묵히 지켜보면서 자신의 길을 준비해나간다.
암스트롱에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순간은 동료들이 하나둘 죽어 떠날 때다. 친했던 동료들의 장례식에서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면 사고 원인을 따지는 것조차 미안하게 느껴진다. 애초 다섯 번째 후보였던 그는 전임자들의 잇단 죽음으로 인해 어느새 아폴로 11호의 선장이 되지만, 성공 확률을 알 수 없기에 기쁨보다는 압박감이 더 크다. 언제든 실수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내 차례에는 실수가 없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보여준다. 관객은 우주비행사들과 마찬가지로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서 2시간 이상을 견뎌야 한다.
암스트롱이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가족의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다. 아내(클레어 포이)와 두 아들은 남편이자 아빠인 그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괴로워 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아빠와의 관계가 서먹한 큰 아들, 지체장애를 안고 있는 작은 아들, 여기에 죽은 딸까지... 암스트롱에게 가족은 꼭 달에 가야 할 이유이자 빚이었다. 그러니까 이 불안한 영웅의 도전에 가족은 막연히 힘이 된 것이 아니라 때론 짐이었고 도피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처였다.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그를 도피하듯 달로 떠나도록 부추긴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암스트롱의 아내는 떠나려는 그를 돌려세우고는 가족을 회피하지 말고 똑똑히 바라보라고 소리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한 장면보다 오히려 이 장면이다. 영화에서 가장 울림이 크고 여운도 깊게 남는다. 그동안 서먹했던 아들과 아빠가 살짝 맞잡은 손은 가볍지만 참으로 뭉클하게 다가온다.
'퍼스트맨'은 '위플래쉬' '라라랜드'를 만든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작품이다. 셔젤의 영화세계는 한결같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꿈을 좇는 사람을 그린다. '위플래쉬'에서 앤드류는 손에 피가 나도록 드럼을 치고, '라라랜드'의 미아는 수십번 연기 오디션을 보고, 세바스찬은 재즈가 인생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주변을 돌보지 않다가 결국 혼자 남아 있는 외로운 자신과 마주한다. '퍼스트맨'도 달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리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전작과 닮았다.
140분의 러닝타임 중 아이맥스로 촬영한 장면은 10분 가량에 불과하다. 달에 도착한 순간, 화면 위와 아래가 열리면서 광활한 세계가 펼쳐진다. 달의 세계는 아이맥스, 달이 아닌 세계는 일반 비율의 화면으로 촬영되어 있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은 관객에겐 아이맥스 상영관을 추천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래비티' '인터스텔라'처럼 실감나는 우주 영상보다는 암스트롱이라는 남자의 심리에 주력한 영화이므로 굳이 아이맥스 상영관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하겠다.
퍼스트맨 ★★★☆
열정 혹은 집착으로 기어이 달에 간 남자, 그 장황한 내면 묘사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3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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