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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든 지하로 가든 미래엔 공유서비스가 자동차 소유 대신할 것”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은 우버보다 이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한다. 녹색을 상징색으로 하는 차량공유 서비스 택시파이(Taxify)다. 아프리카 시장엔 우버보다 2년 늦게 진출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우버를 눌렀다. 우간다, 남아공,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케냐, 가나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택시파이 이용자는 240만명에 달한다. 이는 우버(130만명)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택시파이는 어떻게 현지화에 성공했을까?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네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 신용카드만 고집한 우버와 달리 현금과 모바일 결제를 적극 도입한 것. 아프리카에선 신용카드가 널리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우버 이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둘째, 오토바이 택시(보다보다)도 과감하게 운송수단으로 편입한 것. 아프리카 같은 신흥국 혹은 저개발국에선 자동차보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더 많고 그래서 이들을 드라이버로 끌어들인 전략이 유효했다. 셋째, 수수료를 대폭 낮춘 것. 우버의 수수료는 25%인 반면 택시파이의 수수료는 15%에 불과하다. 넷째, 택시를 플랫폼에 포함시킨 것. 그래서 기존 택시업계와의 충돌 없이 시장에 연착륙할 수 있었다.
택시파이는 2013년 당시 19세의 마르쿠스 빌리그와 그의 형 마틴 빌리그가 공동 창업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택시파이는 유럽과 아프리카 50개 이상의 도시에서 1500만명 이상 이용 중이다. 등록된 드라이버는 50만명 이상에 달한다. 올해 기업가치 10억달러(약1조800억원)를 넘어서며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에 등극했다. 중국 디디추싱이 5000만 유로(약 650억원)의 전략적 투자를 했고, 최근엔 독일 다임러가 1억7500만 달러(약 1천890억원)를 투자했다.
택시파이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마틴 빌리그를 지난 12일 서울 신라호텔 샐비어룸에서 만났다. 그는 제19회 세계지식포럼 오픈세션에서 창업 성공비결을 강연하고 나온 참이었다.
Q 5년 전 동생과 함께 택시파이를 창업했다. 원래 자동차와 ICT에 관심이 많았나?
A 우리는 처음엔 교육사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교육 쪽은 느렸다. 교육기관이 정부 펀딩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것이 택시 사업이다. 탈린은 작은 도시지만 35개의 택시 회사가 있다. 35개의 앱이 경쟁하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좋다 여기서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교통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어쨌든 제품을 만들었고, 처음부터 꽤 잘 됐다. 미디어에 소개되고 이웃나라에서 투자도 받았다. 5년이 지난 지금 유럽과 아프리카 25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Q 동생과 공통점이 많나? 의견 충돌은 없었나?
A 물론 우리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토론을 자주 한다. 내가 주로 보수적인 의견을 내는 편이다. 동생은 젊고 비전이 있어서인지 빠르게 하려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빠르게 자원을 배치할지를 놓고 토론한다. 찬반양론을 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해결책을 찾게 된다. 비전에 대해서는 큰 충돌이 없었다. 회사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고 비용 대비 효율적으로 운영할지에 관한 것들이 토론의 대부분이다. 우리는 역할을 나눠서 재무, 법률은 내가 맡고, 동생은 투자, 제품개발 등을 맡는다. 책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크게 논쟁할 일은 없다.
Q 20대에 큰 성공을 이루었다. 어떤 기분인가?
A 나와 동생은 어릴 때부터 기업가가 되고 싶었다. 우리 DNA에 있는 것 같다. 7살 때 스웨덴에 있는 이모집에 간 적 있는데 그때 레고를 너무 사고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빈 깡통과 병을 주워서 재활용센터에 갖다주고 돈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처음 해본 비즈니스 경험이었다. 그 이후에 웹사이트, 포털 등 여러 사업을 해봤다. 만약 기업가가 되고 싶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 나는 한 회사에 10년 이상 다니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기업가로서의 측면 아닐까.
Q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나?
A 탈린에서 사업을 하는 중에 러시아어가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마르쿠스는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른다. 그때 부모님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운전사를 고용해줬다. 그전의 운전사는 에스토니아어만 할 줄 알았다. 또 처음 9개월 동안 기자들과 접촉해 택시파이가 미디어에 소개되는 데에도 도움을 주셨다. 지금도 택시파이의 열정적인 팬이시다. 지금 600명 이상의 직원이 있지만 처음엔 가족 사업으로 시작했다.
Q 택시파이를 창업하기 전에 어떤 사업을 해봤나?
A 처음 세운 스타트업은 1999년 대학 다닐 때 세운 웹디자인 포털이었는데 2년 만에 팔았다. 이후엔 탈린 증권시장과 스카이프에서 일했다. 스카이프가 너무 커지면서 나는 내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지난 10년 동안 3~4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몇몇은 파산했고 몇몇은 아직 운영 중이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택시파이가 가장 성공한 사업이다.
Q 실패한 사업은 어떤 거였나? 실패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A 실패한 사업 중 하나는 스카이프를 TV 셋톱박스에 넣는 것이었다. 또 실패한 사업은 전자상거래였다. 창업자는 아니고 엔지니어였는데 여러 갈등이 있었다.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2년을 낭비한 뒤 결국 파산했다. 실패로부터 배운 점이 있다면 사업을 할 땐 창업자와 갈등을 빚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Q 사업은 항상 동생과 함께 했나?
A 아니다. 동업한 것은 택시파이가 처음이다. 그 전에도 여러 아이디어를 교환하긴 했지만 실제로 창업하지는 않았다. 마르쿠스도 16세부터 해커톤에 참가할 정도로 창업을 하고 싶어했다.
Q 택시파이의 성공 비결은 뭔가?
A 우선 낮은 비용을 들 수 있다. 플랫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서 적은 수수료만 받고도 돈을 벌고 있다. 또 서비스 품질과 결제방식에 집중했다. 철저한 현지화를 실행해서 여러 언어와 결제방식을 지원했고, 이 모든 것들을 결합한 것이 비결 아닐까.
Q 택시파이로 성공을 거둔 지금 당신은 억만장자가 됐다. 기분이 어떤가?
A 회사 가치는 수십억이지만 당연히 개인 자산은 그보다 작다. 어쨌든 그 돈은 서류 상에 숫자로만 존재한다. 내 인생은 (돈을 벌기 전과 후) 그리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평범하게 산다. 몇 천 달러 혹은 많더라도 100만 달러(10억원) 이내에서 쓰는 게 전부다. 나는 내 재산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있다. 나는 공동체주의자다. 스타트업을 지원하거나 에스토니아 교육에 투자해서 사람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나는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를 위해 사용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Q 택시파이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면?
A 현재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10년 후 우리는 10배, 100배 성장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더 효율적인 교통수단을 제공하고 있을 것이다. 자동차든 오토바이든 아니면 대중교통과 혼합하든 뭐가 될진 알 수 없다. 나는 미래의 사람들은 자동차를 소유하는 대신 이런 교통 서비스를 이용하리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차를 유지하고 세차하고 서비스받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우리 플랫폼은 저렴하고 유용하게 진화할 것이다. 당신은 어디로 갈지 목적지만 신경 쓰면 된다. 나머지는 택시파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하늘을 날든 지하로 가든 땅으로 가든 모든 교통수단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지금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Q 언젠가 택시파이가 우버를 넘어설 날이 올까?
A 유럽과 아프리카에선 이기고 있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유럽에서 가장 큰 테크 기업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테크 기업이 미국, 중국 출신이다. 테크놀로지는 기업을 빠르게 만든다. 모든 산업은 기술과 관련이 있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5~10년 안에 큰 변화의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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