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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상류층 백인 필립과 하류층 흑인 드리스의 우정을 다루고 있는 <언터처블>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참 신기하다. 사실 새로운 장면은 거의 없다. 대부분 어디에서 본 듯한 장면이다. 어쩌면 진부한 스토리로 그저그런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조금씩 새롭게 느껴지고 전체적으로 탄탄한 짜임새가 있다. 그래서 훈훈한 감동까지 살아 있다.


시종일관 직설적이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격식이 필요한 곳에서도 거리낌 없으며, 카리스마까지 갖춘 드리스는 실업수당을 노리고 면접 확인서에 서명을 받으러 갔다가 필립에게 채용당한다. 우아한 프랑스 상류층의 저택에 들어온 젊은 흑인 남자 간호사. 지금까지 한 번도 고풍스런 유럽 저택에 흑인이 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강렬하게 대비되는 피부색부터 뭔가 부조화를 이루는데 영화는 시종일관 둘 사이의 다름을 보여주고 또 다름이 어떻게 화학작용을 일으켜 화합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한다.


사지마비로 대저택 안에서 갇혀 살았던 필립, 이복동생들이 가득한 아파트에서 새엄마에게 쫓겨난 드리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은 영화의 제목인 '언터처블'처럼 아마도 평생 만날 기회조차 없었겠지만, 힘든 삶에 지쳐있던 필립은 드리스를 '발견'한다. 필립은 자신을 장애인이 아닌 친구처럼 대해주는 드리스에게 점점 의지하게 되고, 드리스는 자신을 믿어주는 필립에게 점점 마음을 열어간다.


배경, 재력, 취향, 지적수준 등등 뭐하나 비슷한 점이 없는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은 필립의 생일파티에서 클래식과 팝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장면일 것이다. 감독이 무척 공을 들였다는 이 씬은 일상속의 친숙한 클래식을 드리스가 받아들이고, 이어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Boogie Wonderland'에 맞추어 춤을 추는 장면으로 흐뭇하게 마무리된다. 사실 낯선 두 사람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은 다른 영화에도 많았기 때문에 그다지 새로운 장면은 아니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연출로 그려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악인이 없다. 또 큰 갈등도 없다.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잔잔한 에피소드로 전개돼 주인공이 장애인이라는 것조차 잊게 만든다. 그래서 비슷한 스토리의 프랑스 영화인 <잠수종과 나비>의 묵직한 분위기와 대비된다. "사지마비는 권총자살도 할 수 없다"는 말조차 유머로 받아넘기는 두 주인공은 필립이 6개월 동안 사모했던 여자를 드리스가 연결해주는 것에서 관계의 클라이막스를 찾는다. 서로를 누구보다 필요로하지만 서로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두 남자는 각자의 바다를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갈림길에 선다.


<언터처블>은 영화 첫 머리에서 밝혔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실제 주인공은 샴페인 회사 사장 필립과 아랍계 압델이라고 한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더 강렬하게 보이기 위해 아랍계 압델을 흑인 드리스로 바꾸었다. 그래서 사실 한편으로는 인종차별적인 면이 느껴지기도 한다. 비발디의 '사계'도 모르는 흑인 주인공이 70년대 댄스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엉클 톰]식의 인종차별 텍스트로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한 영화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기세로 헐리우드의 와인스타인 컴퍼니에 리메이크 판권이 판매되었다고 하는데 미국판에서는 어떤 변화를 줄지 궁금하다.


데뷔 때부터 코미디 영화를 함께 만들어온 에릭 톨레다노와 올리비에 나카셰 감독의 4번째 영화인 <언터처블>은 이들의 첫 메가히트작이다. 기존의 프랑스 영화와 달리 보편적인 감수성과 헐리우드적인 문법을 따르고 있는 이 영화는 잔잔함 속에 긴장감을 유지하는 내공을 보여준다. 필립 역의 프랑수아 클뤼제는 클로드 샤브롤의 <지옥>, 자비에 지아놀리의 <비기닝> 등의 영화를 통해 친숙한 프랑스 베테랑 배우로 <언터처블>에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가운데 표정 연기만으로 온화함을 풍기는 품위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드리스 역의 오마르 사이는 낯선 얼굴인데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동안 두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한 바 있다. <언터처블>에서 그는 강하면서도 감수성 풍부한, 사지마비의 필립에 대비되는 날것 그대로의 살아있는 모습을 잘 연기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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