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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모티프로 한 ‘암수살인’은 윤리적인 영화다. 이렇게 말하면 2007년 부산 묻지마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가족이 최근 이 영화가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취하한 사실이 떠올라 모순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이라는 단어는 이 영화의 만듦새를 이야기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최근 적나라한 묘사로 논란이 된 ‘상류사회’, 작년 극단적 전개로 비판 받은 '브이아이피'와 비교해보면 ‘암수살인’의 장점은 도드라진다.



‘암수살인’에는 다른 범죄영화에 없는 두 가지 윤리적 요소가 있다. 첫째, 범죄 상황에 대한 묘사를 최대한 자제하는 미덕이다. 영화에는 토막살해라는 단어가 난무하지만 단 한 번도 이를 영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정황으로 추측하게 할 뿐이다. 범인 강태오(주지훈)가 토막난 시신이 들어있을 법한 비닐을 옮기거나 혹은 종이에 시신을 절단했다고 선 몇 개로 그리는 식이다. ‘황해’ ‘악마를 보았다’ ‘범죄도시’ 등 그동안 한국 범죄영화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휘말려왔던 표현 수위에 대한 논란이 ‘암수살인’에는 없다. 센 영상 없이도 영화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강태오 캐릭터의 신선함과 주지훈의 집중력 좋은 연기, 밀도 높은 연출력 덕분이다.



둘째, 영화는 여느 범죄영화처럼 형사와 범인의 대결을 그리면서도 수사의 목적이 피해자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인 형사 김형민(김윤석)은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자신이 이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드러내기까지 한다. 요즘 스릴러 영화치고는 보기 드문 정직한 캐릭터 설정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싸이코 스릴러 장르의 규범을 세운 이래 많은 범죄 스릴러 영화들은 서스펜스를 강조해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심리묘사를 마치 게임처럼 그리는데 집중해왔다. 형사가 사건에 집착한 나머지 범인에 동화되거나 혹은 사건 해결 과정에서 개인적 트라우마가 드러나거나 혹은 형사가 아예 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식의 플롯 전환은 분명 흥미롭지만 피해자의 아픔과는 그다지 상관 없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암수살인’의 김형민은 변하지 않는 캐릭터다. 그는 관객과 게임을 벌이는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강태오가 김형민에게 “너는 나를 못 이겨”라고 꼬드겨도 김형민은 말려들지 않는다.



유혹에 휘둘리지 않는 캐릭터의 단조로움을 영화는 정공법으로 돌파한다. 김형민 캐릭터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결은 단단히 응집되어 있다가 마지막 법정 진술에서 결실을 맺는다. 김윤석이 헛기침 한 번 하고 담담하게 진술하는 이 장면은 거창한 대사로 구성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의 공기를 장악할 만큼 설득력이 있다.


시끌벅적한 논란 끝에 개봉한 영화는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와 달리 윤리적인 부분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실제 사건 피해자의 유가족을 사전에 배려하지 못한 제작진의 불찰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키운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영화는 몰입감이 상당한데 이는 연출력과 두 배우의 힘이다. 영화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흥행 실패한 걸작 '조디악'처럼 형사가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에 집중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범인을 쫓는 '조디악'과 달리 범인 캐릭터를 돌발적으로 만드는데 공을 들였다. 대사를 던지는 주지훈과 이를 받아주는 김윤석의 연기 호흡이 좋고, 7가지 암수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과정이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암수살인 ★★★☆

잔인한 장면 없이 몰임감이 좋다. 형사와 범인 캐릭터가 신선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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