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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전여빈)는 단짝친구 경민이 실종되기 전날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경민 엄마(서영화)와 형사(유재명)를 비롯한 사람들의 의심을 받는다. 누구도 대놓고 말을 하지 않지만 “네가 죽였지?”라는 눈빛을 견딜 수 없어 영희의 마음은 피폐해져만 간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죄 많은 소녀’는 친구의 죽음 이후 죄책감과 상실감, 그리고 뜻하지 않은 억울함에 괴로워하는 소녀와 그 소녀를 둘러싼 주위 인간군상의 이야기다. 감당하기 버거운 감정들을 세 가지나 짊어진 영희는 시종일관 위태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가슴졸이게 한다.



영화는 영희가 느끼는 고통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연출됐다. 전여빈과 서영화가 한 화면에 등장할 때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불편한 기운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배경으로 깔리는 가슴을 긁어내는 듯한 사운드가 청각적으로 영희의 고통을 스크린 밖으로 전이시킨다.


‘죄 많은 소녀’는 ‘파수꾼’, ‘잉투기’, ‘짐승의 끝’ 등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이 배출한 수작의 계보를 잇는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지난 5일 언론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화에서 영화의 모티프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소중한 친구를 잃고 상실감이 큰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한 친구를 옹호해주지 못하고 제 자신을 변호하고만 있더라고요. 그 감정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입니다. 죄책감을 떠안고 또 타인에게 떠넘기는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영화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고 또 누군가의 말에 쉽게 휘둘린다.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민 엄마는 영희에게 집착하고, 같은 반 친구 한솔(고원희)은 영희를 챙기면서도 영희를 의심하게 할 만한 증언을 내놓는다. 담임선생(서현우)은 사건을 매듭지으려고만 하고, 형사는 종결된 사건을 키우지 않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반 학생들은 계속해서 분위기에 휩쓸리며 영희를 괴롭힌다.



영화는 영희의 고통에 주목하다가 군데군데 영희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삽입한다. 다들 각자의 사연이 있고 누구도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다. 영화 속에서 영희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욕하기도 힘들다. 다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학교이자 우리 사회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패기 만만하게 이런 모순된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이 영화와 곧잘 비교 대상이 되는 두 편의 영화는 ‘파수꾼’과 덴마크 영화 ‘더 헌트’다. ‘파수꾼’은 폭력과 상처로 얼룩진 관계를 극단으로 몰고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닮았고, ‘더 헌트’는 공동체의 불신이 개인을 파멸시키는 과정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죄 많은 소녀’는 ‘파수꾼’보다 더 다층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고, ‘더 헌트’보다 투박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전여빈은 단연 충무로 올해의 발견이다. 어렵고 복잡한 감정들에 시달리면서도 그 감정들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극을 끌고 나가야 하는 과제를 전여빈은 연기 속에 진심을 담아 해낸다. 점점 과격해지는 그녀의 행동은 자칫 억지스럽게 보일 수 있었지만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감정들을 차곡히 쌓아왔기에 무리없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한공주’의 천우희를 잇는, 독보적 마스크에 연기력을 갖춘 신인이 탄생했다.


죄 많은 소녀 ★★★☆

끈질기고 패기 넘치고 강렬하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3381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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