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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을 집어삼키는 공룡이 3년 만에 돌아왔다.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이 6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했다. 북미 지역에선 2주 뒤에나 공룡을 만날 수 있다. 이에 화답하듯 한국에선 개봉 10시간 30분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최단 기록을 경신하는 등 흥행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전편에서 맹활약했던 크리스 프랫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그대로 주연을 맡았다. 전편의 감독 콜린 트레보로우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기획자로 물러나고 새 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가 메가폰을 잡았다. 바요나는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2007) ‘더 임파서블’(2012) ‘몬스터 콜’(2016)로 실력을 인정받은 감독이기에 개봉 전부터 기대가 컸다. 특히 ‘몬스터 콜’에서 괴물과 소년의 교감을 감동적으로 담아내 인간이 공룡을 구출해내는 이번 시리즈에 적임자라고 여겨졌다.
(이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섬을 나와 인간 세계로 온 공룡
호기심이 강한 인간은 공룡을 복원하는데 성공하지만 공룡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탐욕이다. '쥬라기 공원'에서 '월드'로 이어져온 시리즈의 반복되는 주제다. 이번 영화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묵직한 질문을 추가로 던지는데 그것은 과연 공룡이 섬을 나와서도 인간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다.
전편에서 인도미누스렉스 탈출 사건으로 폐쇄된 쥬라기 월드가 위치한 이슬라누블라 섬은 어느새 공룡들만 사는 섬이 되어 있다. 섬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공룡이 멸종 위기에 처하자 공룡을 구할 것인지 멸종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전편에서 쥬라기 월드의 안내를 맡았던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공룡 보호론자가 되어 오웬(크리스 프랫)과 함께 다시 섬으로 향한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의 창시자 벤자민 록우드(제임스 크롬웰)의 후계자인 켄(테드 레빈)은 섬에서 빼낸 공룡을 돈벌이로 이용할 음모를 꾸민다.
그동안 쥬라기 시리즈가 인기를 끌어온 흥행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다양한 공룡들이 보여주는 스펙터클, 또 하나는 공룡 사이에서 인간들이 도망다니는 서스펜스다. 무시무시한 공룡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그중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공룡이 꼭 한두 마리씩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악당은 대부분 공룡을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인간이 도맡는다.
이번 영화 역시 이런 시리즈의 공식에 충실하다. 영화의 전반부는 화산 폭발을 피해 도망가는 재난영화, 후반부는 록우드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공룡과 인간의 추격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눈여겨 볼 공룡은 벨로시랩터 ‘블루’와 '인도랩터'다. 전작에서 오웬이 조련을 맡았던 블루는 용맹함과 더불어 남다른 배려심을 가진 공룡으로 나온다. 오웬은 블루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한다. 공룡들 사이의 리더 역할을 할 블루의 진짜 능력은 3편에서 볼 수 있을 예정이다. 혼합교배종 인도랩터는 치명적인 힘에 뛰어난 지능까지 가진 막강 전투 공룡으로 등장한다. 총탄을 맞아도 끄덕없고, 움직임은 날렵한데다 섬세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인간을 속이는 지능게임도 할 줄도 안다.
이밖에도 영화는 다양한 종의 공룡들을 등장시켜 스펙터클과 서스펜스를 선보인다. 다만 서스펜스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기존 쥬라기 시리즈에서 이미 보여주었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리즈에 익숙한 관객은 놀랄 일이 상대적으로 적겠다.
세상에 나쁜 공룡은 없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은 공룡을 과연 멸종 위기로부터 보호해야 하는가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이안 말콤(제프 골드블럼)이 깜짝 출연해 유전공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그러면서도 영화는 세상에 다시 나온 공룡이 죽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영화는 클레어의 시선으로 진행되기에 관객은 수시로 불편한 상황에 놓인다. 주인공이 공룡에게 쫓겨다닐 때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공룡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는 것이다. 용암에 휩싸인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실루엣을 클레어가 멀리서 눈물 흘리며 바라보는 장면은 오히려 편하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공룡도 생명이니 살려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하지만 방금 전 공룡에게서 주인공이 죽다 살아나는 과정을 목격한 관객이 클레어의 주장을 100% 받아들이려면 해탈한 승려의 마음이 되거나 혹은 자기부정를 반복해야 하기에 영화를 그저 즐기기만 하기엔 불편함이 남는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클레어, 오웬, 메이지(이사벨라 서먼)는 유사 가족 형태를 이루고 있어 가족 파괴범에 대한 용서를 강요하는 듯한 찝찝함도 있다.
이런 우려 때문인지 영화는 세상에 나쁜 공룡은 없다고 말한다. 자연에선 선악의 구분이 의미 없다. 공룡도 결국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따라서 공룡이 메이지를 공격하는 것 역시 본성의 발현이다. 오히려 나쁜 의도를 갖고 문제를 만들어 키우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인간은 문제의 부작용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만은 그 부작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집과 집착이 결국 사건을 최악으로 몰고간다.
인간은 지난 수만년 동안 문명을 일궈오면서 자신보다 몸집이 더 크고 힘이 센 동물들을 멸종시키거나 혹은 가축화했다. 특히 18~19세기 무기가 발달하고 신대륙 탐험 광풍이 불면서 엄청난 양의 대형동물 종들이 멸종했다.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대형동물들은 코끼리, 기린 같은 초식 동물들 뿐이다.
그로부터 한두 세기가 지나 뒤늦게 수많은 동물들을 멸종시킨 역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인간은 대형동물들과 공존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당장 멧돼지 한 마리가 도시에 나타나도 제어가 안 되는 상황이 불안하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처럼 배려심을 갖춘 공룡 한 마리가 언덕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저 마을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인간은 공룡과 공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끝내 한쪽이 멸종하는 전쟁을 치루어야 할까? 그동안 섬에 갇혀 인간의 구경거리 역할만 하던 공룡들이 마침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로 진입했다. 그들 중엔 인간 못지 않은 지능을 갖춘 리더가 있다. 이렇게 보면 쥬라기 시리즈는 점점 ‘혹성탈출’을 닮아가고 있다.
바요나 감독은 '몬스터 콜'에서 보여준 장기를 십분 발휘해 시리즈를 공룡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테마로 확장시켰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정작 어드벤처 영화의 장르적 쾌감이나 캐릭터 설정, 스토리 자체는 평이한 편이다.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
공룡판 혹성탈출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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