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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정복했다. 미국 빌보드는 5월 마지막주 빌보드 200 차트에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이 1위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한국 가수가 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빌보드 78년 역사상 처음이다. 그동안 많은 케이팝 그룹들이 미국 시장을 노렸지만 번번히 실패해왔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달랐다. 이들의 영문 약칭인 BTS는 이미 빌보드에서 하나의 장르 취급을 받으며 글로벌 대세임을 인정받고 있었다. 소셜미디어 영향력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저스틴 비버, 셀레나 고메즈, 아리아나 그란데, 션 멘데스 등 내로라하는 영미권 톱스타들을 제쳤다.
총알을 막는 보이스카웃이라는 뜻을 가진 방탄소년단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독특한 이름 덕분에 기억에는 남았지만 다른 케이팝 아이돌과 달리 비트가 강한 힙합과 랩을 하는 보이그룹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방탄소년단은 빅뱅, 엑소 등 선배 아이돌을 뛰어넘는 케이팝 대표주자로 급성장했다. 대형기획사의 도움 없이 오직 소년들 스스로 일군 성공이었다. ‘흙수저 아이돌’의 세계 정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4가지 비결로 분석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방탄소년단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1.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음악
“딱 들으면 케이팝이란 걸 느낄 수 있는 여타 아이돌 음악에 비해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 글로벌 시장 트렌드에 근접한 음악을 구현해냈다.” - ‘아이돌로지’ 편집장 미묘
방탄소년단 이전 케이팝 아이돌의 음악 장르는 댄스곡 일색이었다. 영미권 음악의 트렌드는 라틴팝과 EDM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데 케이팝은 댄스 음악 하나로 국내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은 이 틀을 깨고 영미권 트렌드에 맞춘 음악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케이팝을 제3세계 음악 취급하던 영미권 팬들은 흑인 리듬의 힙합과 EDM을 결합한 익숙한 비트에 케이팝 특유의 칼군무를 조화시킨 방탄소년단의 퍼포먼스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이 택한 무기는 힙합이었다. 이번에 방탄소년단과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놓고 경쟁한 뮤지션도 포스트 말론이라는 힙합 스타일 만큼 힙합은 영미권에서 경쟁력이 있는 장르다. ‘쇼미더머니’의 성공 이후 국내에서도 힙합은 더 이상 낯선 장르는 아니지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힙합 뮤지션과 외모로 승부하는 아이돌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방탄소년단은 힙합을 아이돌 퍼포먼스에 접목하며 이 경계를 무너뜨리려 했다.
하지만 현실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데뷔 초 힙합하는 아이돌에 대한 기존 힙합 신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대중 역시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낯설어했다. '불타오르네' '피 땀 눈물' ‘DNA' 등은 방탄소년단의 대표곡이지만 국내 음원 차트에서 하루 이상 1위를 기록한 적이 없다. 단 몇 시간 동안만 실시간 1위에 올랐을 뿐이다.
방탄소년단은 해외에서 먼저 반응을 얻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국내로 역수입되는 방식으로 활동을 해나갔다. 해외에 방탄소년단이 알려진 계기는 2015년 발표한 ‘쩔어’와 ‘Not Today’였다. 두 곡 모두 힙합 비트가 강한 곡이다. 방탄소년단은 케이팝 그룹 중 유일하게 유튜브 조회수 3억회를 넘은 뮤직비디오를 4편이나 보유 중인데('DNA' '불타오르네' '쩔어' '피 땀 눈물') 이는 글로벌한 성공이 없이는 불가능한 숫자다.
방탄소년단이 애초 힙합을 택한 것은 단지 댄스 위주의 아이돌 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찾겠다는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힙합을 좋아했다. 방탄소년단의 리더인 RM과 슈가는 연습생 이전부터 힙합에 빠진 소년이었다. 직접 믹스테이프를 만들고 길거리에서 랩 배틀을 즐겼다. 이후 참여한 멤버들 모두 힙합에 애정이 있었기에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방시혁 대표는 멤버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유명 작곡가에게 곡을 돈으로 사와서 군무를 훈련하는 기존 아이돌 방식과는 분명한 거리를 둔 제작방식은 기존 아이돌과 다른 그들만의 자생력을 갖게 했다.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轉 Tear' 콘셉트 사진. /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힙합으로 시작한 방탄소년단의 음악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일곱 명의 멤버들 전원이 랩, 보컬을 할 뿐만 아니라 작곡과 작사에도 참여한다. 학습능력이 좋아서 음반이 거듭될수록 이들의 실력이 늘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방탄소년단은 뭄바톤 트랩, 이모 힙합 등 다양한 서브장르의 힙합 뿐만 아니라 라틴 팝, 신스 펑크, R&B 발라드, 하우스, 랩-록 등도 시도한다. 멤버들이 만든 곡을 뼈대로 해당 장르 전문가들이 참여해 최신 트렌드에 맞춰 가는 식이다.
예를 들어 작년 방탄소년단을 미국 시장에 각인시킨 다크한 분위기의 힙합 ‘MIC Drop’은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오바마가 연설 말미에 마이크를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며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구상한 곡이다. DJ 스티브 아오키가 피처링했고, 프로듀서 피독, 방시혁 뿐만 아니라 슈프림 보이, 디자이너, 테일러 파크스, 플로우식, 샤이 제이콥스 등 다양한 국적의 뮤지션이 참가해 파워풀한 노래로 탄생했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헤드라인 뉴스로 보도한 빌보드 홈페이지 첫 화면. / 빌보드 홈페이지 캡처
이번에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한 ‘Love Yourself 轉 Tear’ 앨범은 글로벌 트렌드 음악을 총망라하고 있다. 글루미한 분위기의 릴 핍 스타일 이모힙합 ‘Fake Love’를 비롯해 앨런 워커 스타일의 EDM 신스를 활용한 ‘Magic Shop’, 데스파시토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라틴팝 계열의 'Airplane Pt. 2', 저스틴 비버를 연상시키는 타이틀 ‘Love Yourself’ 등 글로벌 음악 흐름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흔적이 엿보인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이 음반에 대한 해외 평가는 칭찬 일색이다. 미국 음악잡지 ‘롤링 스톤’은 “방탄소년단은 유행에서 한 번도 관심을 놓지 않은 것 같다”며 “미국의 현 메인스트림 팝 시장이 갖고 있는 권태감과 우울감에 대한 집착과 비교하면 이 앨범이 주는 전반적인 느낌은 충격적일 정도”라고 평했다.
또 일본 음악 프로듀서 카메다 세이지는 “섹시한 R&B 보컬에 하드하고 문학적인 랩까지 BTS는 더 위켄드, 저스틴 비버, 드레이크, 포스트 말론이 한 그룹 안에 있는 것 같다”고 극찬했다.
2. 저스틴 비버를 밀어낸 강력한 팬덤
미국의 한 평범한 가정집. 엄마가 딸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한다. 봉투를 열어보니 BTS 콘서트 티켓이 들어 있다. 딸은 너무 기쁜 나머지 펄쩍 뛰다가 눈물까지 흘린다. 유튜브에 올라온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홍보 영상의 한 장면이다.
방탄소년단은 케이팝을 넘어 보이그룹의 고유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보이그룹은 케이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미권에도 전설적인 보이그룹의 계보가 있다. 1970년대 비치 보이스, 1980년대 뉴 키즈 온 더 블록, 1990년대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시대를 대표하는 그룹이다. 테이크 댓, 보이스 투맨, 웨스트라이프, 엔싱크, 원 디렉션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보이밴드다.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클 잭슨의 잭슨 파이브와 비틀즈도 이 계보 안에 들어온다. 그래서 미국 토크쇼 사회자 엘렌 드제네러스는 BTS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는 미국 소녀팬들을 보며 “비틀즈가 온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싸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중
방탄소년단 이전 케이팝엔 글로벌 가수 싸이가 있었다. 싸이는 한국인의 외모와 한국어 가사로도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톱스타가 될 수 있음을 선구자처럼 증명했다. 하지만 지금 방탄소년단 열풍은 싸이 때와 다르다. 싸이는 음악적으로 평가받았다기보다는 그들에게 없던 댄스를 선보인 문화충격 효과가 컸다.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오면 다들 말춤을 췄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싸이는 팬덤을 확보하지 못했다. 강남스타일의 싸이가 아니라 강남스타일 그 자체가 더 유명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다. 그들은 어느 자리에서나 ‘아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데 방탄소년단의 팬들을 총칭하는 ‘A.R.M.Y’는 공식적인 집계가 없지만 전세계적으로 대략 1000만명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11월 19일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도 아미의 함성은 브루노 마스, 션 멘데스, 비욘세, 체인스모커스 등 그날 참석한 다른 뮤지션들을 압도했다.
팬덤은 호감과 열정, 연대감이 결합될 때 탄생한다. 과거의 팬덤은 호감과 열정의 산물이었지만 소셜미디어 시대엔 연대감이 더 중요해졌다. 팬들은 스타와 연대하고 또 팬들끼리 연대한다. 방탄소년단은 끊임없이 자신이 저 멀리 우주에 있는 별이 아니라 팬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키면서 팬들과 거리를 좁히려 한다. 팬들을 위해 일상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고, 노랫말에 또래의 고민을 담는다.
방탄소년단의 신곡 ‘Anpanman’은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지만 노랫말을 살펴보면 “알통도 갑빠도 슈퍼카도 없이 넘어지고 실수하지만 온 힘을 다해 팬들을 위해 노래하는 영웅이 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슈퍼스타가 된 지금도 자신을 낮추고 팬들과 눈높이에서 소통하려는 태도가 팬들과의 연대감을 강화한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호텔에서 해외 팬들이 '2018 빌보드 뮤직 어워즈'의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는 방탄소년단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팬들은 쉴새없이 쏟아지는 ‘떡밥’을 모으고 재가공해 자체적으로 2차 콘텐츠를 만들며 스타를 응원한다. 콘텐츠 소비자가 곧 크리에이터가 되면서 연대감이 더 강화된다. 콘텐츠를 만드는 팬은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또다른 팬과 연대한다. 그렇게 팬들끼리 연대감이 강화되면서 팬덤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팬덤에도 부작용은 있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좋아하면 관용을 잃기 쉽다. 스타와의 연대감이 강해진 나머지 일부 팬들은 스타의 잘못된 행동도 옹호하거나 다른 그룹에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일도 종종 목격된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표절을 놓고 한때 샤이니, 빅뱅, 엑소 팬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 적 있다. 잘못된 팬덤에 대한 비난은 곧바로 스타에게로 향한다. 팬덤을 만들어낸 것이 스타이니만큼 팬덤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강력한 팬덤을 가진 스타의 숙명이다.
3. 스탠더드가 된 소셜미디어 전략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상 2년 연속 수상
-빌보드 소셜 50 차트 64주 1위
-트위터 최다 활동 남성그룹 부문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
-트위터 최다 리트윗 아티스트 1위
방탄소년단에 관해 쏟아지고 있는 기사들의 상당 수는 소셜미디어에 관한 것이다. 소셜미디어 활용에 관한 한 방탄소년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트위터로 정치하는 트럼프 대통령조차 방탄소년단 리트윗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트위터 리트윗 수로 따지면 2017년 말 기준 트럼프가 2억 1300만회인 반면, 방탄소년단은 5억 200만회로 세계 1위다. 적어도 트위터에선 방탄소년단이 트럼프의 영향력을 능가한다.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상은 방탄소년단이 받기 전에는 저스틴 비버가 6년 연속 독식하던 상이었다. 저스틴 비버가 전세계 10대에 미친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지금 방탄소년단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트위터 게시글은 5월 27일 현재 1만 850개에 달한다. 트윗마다 팬들이 40만∼50만회씩 리트윗 해준다. 지난 2월 27일 올라온 정국이 혼자 노래부르는 영상은 550만회 리트윗되며 트위터의 역대 최다 리트윗 톱30 중 29위에 올라 있다.
과거의 스타들이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이미지를 아껴가며 희소성으로 승부했다면 소셜미디어 시대의 스타는 정반대다. 이미지를 과도할 정도로 뿌려 친근함으로 승부한다.
유튜브 레드 다큐멘터리 '방탄소년단: 번 더 스테이지'의 한 장면.
방탄소년단은 소셜미디어에 일상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1인 크리에이터가 되어 개인방송도 적극적으로 만드는데 그 영향력이 웬만한 방송국을 능가한다. 방탄소년단의 개인방송이 올라오는 유튜브 ‘방탄TV’ 채널은 5월 27일 현재 구독자 840만명, 조회수 13억회에 달한다. 잠자고 게임하고 밥 먹는 사소한 일상과 해외 투어, 연말 무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방탄밤’, 슈가의 음악 취향을 담은 ‘방탄 테이스트’, 진의 먹방 ‘Eat Jin’, 지민과 뷔의 사투리 방송 ‘만다꼬’, 제이홉의 안무 연습을 다루는 ‘Hope on the street’, 슈가와 제이홉의 만담 ‘화개장터’, RM과 정국의 ‘1분 영어’ 등 마치 TV 예능처럼 25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있다.
방탄TV의 시청자를 국가별로 분류해보면 한국 22%, 미국 9.6%, 일본 6%, 브라질 5.6%, 인도네시아 5.2% 순으로 나타난다(2017년 2월 기준 유튜브 집계). 기존 케이팝 팬층이 두터운 아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과 브라질 등에서도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탄소년단이 여느 케이팝 그룹보다 소셜미디어 활용을 잘 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소셜미디어 외에 홍보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대형 기획사를 능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지만(2017년 영업이익에서 빅히트는 SM, YG, JYP를 앞질렀다. 증권가에선 시가총액을 SM의 9300억원을 뛰어넘는 1조원으로 추정한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과정에서 중소 기획사 소속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대형 기획사가 신인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물량공세를 퍼붓는 것과 달리 방탄소년단은 데뷔 초 방송활동 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다. 정규 1집 타이틀곡 ‘Danger’는 공개한지 1시간 만에 차트아웃되는 굴욕을 격기도 했다. 지금 방탄소년단이 앨범 전곡을 차트 줄세우기하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인 시절이었다.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방시혁 대표는 한때 그룹 해체를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오기로 멤버들이 똘똘 뭉쳤고 이후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루어냈다. 그 돌파구는 소셜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에 있었다.
멤버들이 올린 콘텐츠는 일단 양적으로 엄청났고, 또 팬들의 댓글에 일일이 반응하면서 친근하게 다가갔다. 방송 출연 영상은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멤버들이 소셜미디어에 직접 올린 콘텐츠는 저작권 걱정이 없다는 것도 이들의 콘텐츠가 확대 재생산되는 데 한 몫 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방탄소년단이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아이돌 평론가 미묘는 “과거에는 기획사가 가진 기획력이 중요해 빅뱅 때만 해도 팬들은 아이돌이 어떤 식으로 데뷔했는지를 소개받으면 만족했지만 이제 팬들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기를 원한다”며 “소셜미디어가 아이돌의 성공 공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수억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뮤직비디오와 함성 가득한 콘서트장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앞모습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부지런히 찍어 올리는 정돈되지 않은 뒷모습을 콘텐츠로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만든 힘이다.
방탄소년단의 소셜미디어 성공 사례는 워낙 독보적이어서 이제 데뷔하는 모든 아이돌 그룹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거의 모든 그룹이 인스타그램에 일상 사진을 올리고, 팬들에게 댓글을 달아주고, 유튜브에 다양한 떡밥을 뿌리면서 제2의 방탄소년단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활용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워낙 활발하게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다보니 방탄소년단은 종종 논란에 시달리기도 한다. 선배 가수를 추모하는 기간에 춤 추는 영상을 올려 욕을 먹고, 소속사와 갈등이 그대로 드러나고, 다른 사람의 소셜미디어에서 퍼온 글을 가사로 써서 표절 논란에 시달리고, 여성혐오 가사와 발언으로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 것 등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런 논란들을 하나씩 넘어가며 성장해왔다. 잘못한 점에 대해 재빨리 사과하고, 작사가 크레딧을 수정하고,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대안을 마련해 제시했다. 제2의 방탄소년단을 꿈꾼다면 이러한 위기 대처 방식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4. 성장하는 소년들의 메시지
“대부분의 케이팝 그룹들은 그들의 음악을 정치화하거나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주저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여러 차례 정신건강, 왕따, 자살 등 정치와 문화적 문제를 다뤘다. 이런 비전형적인 접근 방식이 미국에서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높였다.” - 빌보드닷컴
방탄소년단은 연습생 시절부터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내는 훈련을 했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노래에는 또래의 고민이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미국 CNBC는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을 분석하면서 이들이 다른 케이팝 팀들과 가장 큰 차이점으로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꼽았다.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을 넘어 아티스트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에는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겠다’는 메시지가 있다. 데뷔 초 학교 3부작에선 청소년이 바라보는 현실과 꿈을 노래했고, 화양연화 2부작은 위태로운 청춘을 담았다. 학교와 집, PC방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답답한 현실을 묘사한 ‘N.O’, 부모 등골 빼는 자식을 향한 ‘등골브레이커’, N포세대 이야기를 다룬 ‘쩔어’, 열정페이와 수저론을 다룬 ‘뱁새’, 탕진잼에 빠진 흙수저 청년세대를 응원하는 ‘고민보다 Go’ 등이 이러한 곡들이다. 데뷔 5년차를 맞은 지금은 ‘Love Yourself’ 4부작으로 사랑과 자아 찾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불안한 청춘의 성장담은 동서양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다.
메시지를 담는 것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화양연화’에는 왕가위 감독의 동명 영화, ‘Wings’에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Serendipity’에는 김춘수 시인의 ‘꽃’, ‘Pied Piper’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4시’에는 영화 ‘문라이트’, ‘피 땀 눈물’에는 니체, ‘봄날’에는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영향받은 흔적이 담겨 있다.
‘아이돌을 인문하다’ 저자 박지원 작가는 “방탄소년단은 단지 문학작품에서 문장을 차용하는 수준을 넘어 주제의식을 가져오기까지 한다”며 ‘봄날’의 뮤직비디오를 예로 들었다. “멤버들은 '오멜라스'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파티를 즐긴 후 허무감을 느끼는데 이는 자신들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시계가 9시 35분에 멈춰 있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팬들은 방탄소년단이 음악에 담아놓은 메시지와 스토리를 해석하느라 즐거운 상상을 한다. 새 음반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될 때마다 유튜브에는 팬들의 자발적인 해석이 담긴 콘텐츠가 올라온다. 방탄소년단이 참조했다고 알려진 문학 작품은 갑자기 판매량이 급증한다. 르 귄의 작품의 수록된 ‘바람의 열두 방향’은 2014년 나온 개정판이 2쇄에 머물러 있다가 순식간에 6쇄를 찍기도 했다.
사랑 이야기가 주류인 음악 시장에 메시지와 스토리를 담은 콘텐츠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는 것은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과 사회에 대해 평소 생각이 많고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Love Yourself’ 컨셉트에 대해 RM은 한 인터뷰에서 “제 꿈은 빌보드 1등도 아니고 저를 제대로 사랑해주는 것이다. 제 추함과 초라함을 몇억 번 마주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이 주제로는 어둠, 고독 등 할 수 있는 말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지 메시지를 담았다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메시지는 발화하는 주체, 전달되는 형식, 수용자의 감수성 등이 맞아 떨어져야 비로소 소통이 이루어진다. 똑같은 메시지도 누가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꼰대’가 될 수도 있다. 방탄소년단도 처음부터 매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데뷔 초에는 여성혐오 가사로 비판받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LOVE YOURSELF 轉 Tear'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RM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2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는데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멤버들 모두 펜과 종이를 준비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 적고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아티스트와 대중을 중개(media)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자신이 준비한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진정성은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남들의 고민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고민을 이야기하는 메시지는 울림이 크다. 더 고민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생각해야 하고 더 많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방탄소년단의 가장 오래된 멤버 중 한 명인 슈가는 방탄소년단이 담아내는 불안한 청춘이라는 메시지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털어놓았는데 이 말 속에 그들의 진정성이 묻어난다. “불안함과 외로움은 평생 함께하는 것 같다.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 내느냐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 상황과 순간마다 감정이 너무 달라서 매 순간 고민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음악, 놀라운 팬덤에 더해 청춘의 고민을 담은 메시지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탄소년단에게 어쩌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찾아온 행운일 것이다. 때마침 전세계를 모바일로 연결하는 소셜미디어 시대가 열렸고, 케이팝의 계속된 글로벌 도전에 낯선 외국어에 대한 관용이 생겨 문턱이 낮아졌다. 20대 초중반 청년으로 구성된 방탄소년단은 시대의 흐름 위에 올라타 절박한 그들의 심정을 뛰어난 노래와 춤으로 전파했다. 글로벌 음악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방탄소년단이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매일경제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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