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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서 온 당신의 마음을 흔들어줄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 헝가리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제치고 수상했기에 궁금해 영화가 수입되기를 기다렸는데 영화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판타스틱 우먼’이라는 제목은 반어법입니다. 영화 주인공은 판타스틱하지도 않고, 우먼도 아닙니다. 우먼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냐고요?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아직 남자인 다니엘, 외모 상으로는 마리나라는 여자인 트랜스젠더입니다.



마리나(다니엘라 베가)는 가수입니다. 오페라 창법으로 클럽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녀에게는 파트너가 있습니다. 아버지뻘인 백발의 남자 오를란도(프란시스코 레예스)입니다.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침대에서 남자가 갑자기 심장 통증을 호소하더니 죽어버립니다.


남자의 전 부인, 아들, 형사는 마리나를 의심합니다. 재산을 노리고 늙은 남자를 죽인 것은 아닌지 추궁합니다. 트랜스젠더인 마리나를 괴물 취급합니다. 마리나는 억울합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것은 자신입니다. 모두들 그 남자가 필요로 할 때는 없다가 뒤늦게 나타나서 가족인 양 행세하고 있으니까요.



처음에 마리나는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도망가려 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녀를 더 의심받게 한다는 걸 알게 되자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피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래서 남자의 개 디아블라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전 부인을 만나 남자의 차를 돌려주고 경찰서에 가서 치욕스런 알몸 사진도 찍습니다.


또 오지 말라는 장례식에 기어이 찾아가 한바탕 소동을 벌입니다. 그녀는 매순간 싸워야 합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매번 증명해야 합니다.


영화 속에 인상적인 네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마리나가 거리를 걷다가 지나가는 큰 거울과 마주치는 장면입니다. 거울 속 마리나의 모습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겉으론 당당해 보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불안감이 가득하겠죠.



두 번째 장면은 거리를 걷던 마리나가 강풍과 마주하는 장면입니다.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센 바람을 마리나는 정면으로 맞습니다. 고속촬영으로 촬영한 이 장면에서 마리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바람에 맞섭니다. 마리나의 결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입니다.



세 번째는 사우나 신입니다. 남자가 죽기 전 남긴 열쇠가 사우나 사물함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된 마리나는 사우나에 들어갑니다. 여탕으로 들어갔다가 남탕으로 이동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통과하는 순간 누구도 그녀의 성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완벽히 경계의 인간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오손 웰즈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 속 거울 장면처럼 이 사우나 신은 영화 역사에 기록되어야 할 명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 번째 장면은 마리나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거울을 보는 장면입니다. 성기가 있을 자리에 거울 속 그녀의 얼굴이 보입니다. 어쩌면 그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든 마리나든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성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걸 방해하는 것은 거울 속에 반사된 모습으로 보이는 세상일 것입니다.



영화는 미스터리의 여인, 사물함 맥거핀 등 히치콕 스타일의 서스펜스를 완벽하게 활용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리나의 심리를 묘사합니다. 매장면 등장하는 마리나는 처음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그녀의 감춰진 외로움과 불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삶의 의지가 고스란히 전달돼 전율이 밀려옵니다.



마리나 역을 맡은 다니엘라 베가는 칠레 최초의 트랜스젠더 배우라고 합니다. 그녀는 마리나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금세 회복해 일어서는 캐릭터로 창조해냈습니다. 다니엘라는 비발디의 오페라 '바자제'의 메인 아리아인 '나는 멸시받는 아내라오(Sposa son disprezzata)'와 헨델의 오페라 '세르게' 중 '옴브라 마이 푸(Ombra mai fu)'를 직접 부르기도 합니다. 또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명곡 ‘Time’이 메인 테마곡으로 쓰였는데 이 곡의 분위기도 영화와 잘 어울립니다.


중년 여성의 사랑과 절망과 고독을 그린 ‘글로리아’(2013)의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은 이번에도 세상의 경계에 있는 여성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우리에게 낯선 칠레 영화지만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의 재능 만큼은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재키’, ‘네루다’의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영화 ‘판타스틱 우먼’이 개봉하는 4월 19일을 꼭 메모해두시기 바랍니다.


판타스틱 여인 ★★★★★

미스터리 서스펜스 구조를 차용한 섬세한 심리묘사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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