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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는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 못지 않게 은메달, 동메달, 그리고 메달은 못 땄지만 자신의 개인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응원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평가받았고, 묵묵히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 개척자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는 대회지만 인생은 하루하루가 치열한 올림픽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주어진 순간 모든 것을 쏟아 붓지 못하면 곧바로 잊히는 조연배우들에게 촬영 현장은 살얼음판이다. 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최근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세 명의 조연배우를 소개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매일 나만의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자극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배우 허성태, 안미나, 정상훈(왼쪽부터)


#1 허성태 "도전하기 전 열정 확인하세요"


배우가 되기 전 허성태(41)는 대기업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러시아에서 LG전자의 TV를 팔아 '판매왕'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매일경제에 '청년무역인 해외 리포트'를 연재해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으로 옮겨 기획조정실에서 일했다.


직장생활 10년 차, 회식을 마치고 적당히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서른다섯의 그는 TV에서 흘러가는 자막을 보게 된다. 일반인 대상 연기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 모집 공고였다. 그는 문득 어릴 적 꿈이 배우였다는 게 떠올랐다.


처음엔 장난 삼아 시작했지만 오디션이 다가오자 그는 진지해졌다. '올드보이' 최민식 연기를 보고 또 보며 연습했다. 숨겨져 있던 끼가 뒤늦게 튀어나온 걸까. 그는 오디션 당일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한다. 심사위원들은 "눈빛이 대단하다"며 극찬을 쏟아냈다.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갑자기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대부분 반짝 떴다가 잊힐 뿐이다. 허성태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표를 던져 돌아갈 배를 불사르고는 연기 선생님과 합숙훈련을 하면서 단편영화부터 시작했다.


©Youchang


"퇴직금으로 원룸 하나 구해 살았어요. 아내가 외벌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아내는 '돈은 내가 벌면 되니까 최선을 다하라'며 끝까지 격려해주더군요. 지금도 아내를 생각하면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50여 편의 단편영화를 찍으며 기본기를 갈고 닦은 끝에 그는 마침내 '광해'의 단역으로 충무로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후 '밀정' '남한산성' '범죄도시' 등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치며 '신 스틸러'로 급부상 했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 두고 꿈에 도전하려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없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도 민폐죠. 준비와 열정, 두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제가 첫 오디션을 볼 때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해주신 말이 있었어요. 열정이 보인다고요. 열정 하나로 버텼다고 생각합니다."



#2 안미나 "내려놓으니 운이 돌아왔죠"


안미나(34)의 시작은 화려했다. 21살에 데뷔하자마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영화 '라디오스타'로 인기를 얻었고, '스타 오디션'에서도 2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언제부터인가 이 모든 게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어요. 항상 일이 있고, 저를 좋아해주는 분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거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고부터 '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지금까지도 내 노력만으로 된 게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됐어요."


출연한 작품이 외면받고, 차기작이 무산되고, 주인공이 바뀌고, 중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기획사가 갑자기 사라지는 등 안미나에게는 불운이 겹쳤다.


"4년 간 백수생활을 했어요. 돈도 없고, 나이도 먹어 가고, 밝았던 성격도 어두워지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갔어요."


©Youchang


그의 눈시울이 살짝 불거졌다. 남들은 롤러 코스터 같은 인생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세상에 쉬운 인생은 없다. 추락하는 고통과 불안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스물아홉 살에 가족을 떠난다.


"부모님에게 더 이상 민폐 끼치기 싫어서 나갔어요. 강남구청 인근 상가건물에 단칸방을 얻어 2년 넘게 살았어요. 명절 때면 보일러를 다 끊어서 겨울에 너무 추웠어요. 이불이란 이불은 바닥에 다 깔고 패딩을 두 겹 세 겹 입고 벌벌 떨었어요.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도 끊기고..."


그가 자신을 단칸방으로 내몰면서까지 버틴 이유는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배우의 길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생활고에 지친 그는 결국 꼭 쥐고 있던 꿈을 내려놓는다.


"배우를 포기한 뒤 처음엔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라는 자괴감이 컸어요. 과외를 하면서 다른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마음이 가벼워지는 거예요. 원래도 잃을 게 없었는데 잃을 게 많다고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거죠."


인생은 앞을 향해 살지만 뒤를 향할 때만 이해된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했다. 운이 다했다고 생각한 순간 안미나에게 행운의 여신 티케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아침드라마 출연 제의가 오더니 이어서 김은희 작가가 직접 '무한도전 - 무한상사편' 출연을 의뢰했다. 소속사도 없던 그를 꼭 쓰고 싶던 양우석 감독은 무한도전 PD로부터 연락처를 받아 대작 '강철비' 캐스팅 제안을 했다. 모두 오래 전 안미나를 눈여겨보던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가 찾은 것이다. '강철비'에서 개성공단 북한 여공 역할로 대중에게 다시 눈도장을 찍은 그는 방송에 복귀해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저를 기억해주고 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고마울 때가 많아요. 앞으로 매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려고요."



#3 정상훈 "결정적 순간 준비돼 있어야죠"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서 정극 연기를 펼치는 정상훈(42)을 보며 의아해한 사람들이 많았다. 개그맨이 왜 연기를 하고 있지? 하지만 그는 배우로 출발했다. SNL '양꼬치엔 칭따오' 캐릭터로 벼락스타가 되기 전까지 그는 16년 간 무명 시절을 보냈다.


시작은 좋았다. 대학 내 개그클럽 동아리에서 올린 공연이 재미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곧바로 지상파 시트콤의 주연으로 발탁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연기 못하는 배우라는 낙인이 찍힌 이후엔 하는 작품마다 잘 안 됐다. 돌아갈 곳이 없던 그는 연기력을 연마하기 위해 뮤지컬의 문을 두드렸다.


"제가 전략가예요. 친화력도 자신 있고요. 대학 인맥을 총동원해서 밀어붙였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눈도장을 찍은 덕분에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정성화 형과 함께 캐스팅될 수 있었어요."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무대에서 놀았다. 방송과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하던 끼를 무대에서 발산했다. 하지만 코미디 전문 뮤지컬 조연배우로는 생계 유지도 쉽지 않았다. 빚만 2억 원 이상 지고 있었는데 결혼하고 세 아이까지 생겨 앞날은 더 막막했다. 그는 서른일곱에 지난 인생을 뒤돌아보며 이렇게 결심한다.


"딱 42살까지만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도 안 되면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어요. 요리를 잘 하니까 아마 식당을 했을 거예요."


©Youchang


결정적 순간은 그가 SNL에 출연하면서 찾아온다.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선배 김생민이 제작진에 그를 추천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뀐 것이다.


"당시 뮤지컬에서 중국인 병사를 연기하면서 중국어 억양이 몸에 뱄거든요. 그래서 가짜 중국어로 코믹한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처음 들어간 제작진 회의에선 다들 '양꼬치엔 칭따오' 캐릭터를 식상하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첫 방송이 나가자 곧바로 반응이 감지됐다.


"어, 이거 걸린 것 같은데? 대형 히트를 쳐봤던 신동엽 씨가 바로 알아채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회부터 밀어주자고 해서 제가 전면으로 나가게 됐어요."


'히트 메이커스'의 저자 데릭 톰슨은 "인기는 바이러스처럼 '1 대 1'로 퍼져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1 대 100만'이 서너 번 정도 발생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세상에는 재능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작품들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가진 사람이 없으며 따라서 아티스트가 인정받으려면 어떤 '블록버스터의 순간'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뷔 이후 꾸준하게 코미디 연기를 갈고 닦아온 정상훈에겐 '양꼬치엔 칭따오'가 바로 그 블록버스터의 순간이었던 셈이다.


"제가 뜬 건 로또의 확률이에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맞아서 지금의 제가 만들어진 거죠. 사람들은 대부분 저를 개그맨으로 알아요. 근데 저는 그게 좋아요. 그 인기 덕에 삼둥이도 먹여 살릴 수 있게 된 거니까요. 어떤 분야든 제가 한 건 지워버릴 수 없는 거예요. 더 잘할 수 있는 것들로 영역을 점점 더 확대해 나가는 게 맞는 거겠죠."


(매일경제신문 3월 17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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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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