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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인 라나(타라네흐 알리두스티)와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는 아서 밀러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함께 공연하는 배우입니다. 에마드는 낮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엔 연극에서 주인공 윌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두 사람은 살던 건물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동료 연극 배우의 도움으로 급하게 집을 구해 이사를 가게 되는데 이삿짐을 옮기고 보니 그 집에 살던 사람은 매춘부였습니다. 에마드가 집을 비운 사이 라나는 매춘부의 집인 줄 알고 찾아온 괴한의 습격을 받아 머리를 꿰메는 큰 부상을 당합니다. 라나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원치 않자 에마드는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섭니다.


5월 11일 개봉하는 영화 <세일즈맨>은 이란의 아슈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신작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는데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으로 미국 입국이 금지당하자 감독이 직접 트럼프에 반대하는 수상소감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죠. 파르하디 감독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등 주로 서로 다른 두 가족의 충돌과 그로 인한 도덕적 딜레마를 테마로 영화를 만듭니다. <세일즈맨>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아슈가르 파르하디 감독(오른쪽)


라나가 사고당한 뒤 에마드는 복수심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매춘부가 남기고 간 짐을 하나씩 살펴보며 범인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을 추적합니다. 그 과정에서 집을 소개해준 동료배우 바바크(바바크 카리미)와의 관계는 멀어지고, 자신을 존경한다고 말했던 학생의 장난도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로 변해갑니다. 마침내 범인을 잡았을 때 그는 경멸의 눈빛으로 복수를 계획합니다. 상대는 이미 거의 힘이 없는 노인인데도 그는 용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의 복수극은 끝내 아슬아슬한 결말로 치닫습니다.



영화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과 에마드의 복수극을 교차하면서 두 이야기를 중첩합니다. 얼핏 보면 닮은 점이 없어 보이지만 연극과 영화는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인 배경과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닮았습니다. 배경과 감정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초기에 에마드가 택시를 타고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때 그의 옆에 앉은 한 여성이 불편해하며 자리를 옮겨달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기분이 들면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택시 옆자리 여성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것은 에마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마드는 라나가 사고를 당한 뒤 바바크에게 왜 그 집이 매춘부가 살던 곳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냐고 항의합니다. 수많은 남자들이 들락거렸던 방에서 어떻게 부부관계를 맺고 아이를 가질 수 있겠냐는 것이죠.



에마드가 과거에 살던 집과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모두 안락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 곳은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또 한 곳은 죽음의 위기를 겨우 넘긴 곳인데다 불결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는 이란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여느 대도시들처럼 테헤란은 정신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오래된 건물들은 파괴되고 그 공간은 새롭지만 불결한 것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비판했던 1940년대의 뉴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죠. 연극에서 당시 현대 산업사회는 인간을 자꾸만 소외시켰는데 파르하디가 보는 테헤란 역시 비슷한가 봅니다. 그의 영화에는 법정 다툼을 벌이거나 복수하는 등 끊임없이 충돌하는 인간 개체들이 등장하는데 배경은 늘 테헤란의 우중충한 건물들이었으니까요.


결국 에마드가 찾아낸 범인은 백발의 노인입니다. 그는 사위의 트럭을 빌려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일종의 세일즈맨입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가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며 '자기 자신'을 판매했던 것처럼, 노인 역시 자신의 늙은 육체를 끌고 다니며 쓸모 없는 노동력을 팝니다. 윌리처럼 그에게는 가정적이고 착한 아내가 있고, 미래를 약속한 딸과 사위가 있습니다. 그의 가정은 가난하지만 밝고 사랑이 가득한 곳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연극 속 윌리와 달리 노인은 매춘부를 찾아 다니는 이중적인 인물입니다. 에마드는 노인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노인이 자신이 연기했던 윌리와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그가 느낀 감정은 아마도 경멸이겠지요. 자신이 그토록 애착을 갖고 연기했던 인물인 세일즈맨 윌리가 눈앞에 이토록 초라한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는 노인을 감금하고 가족들에게 그의 본모습을 공개해 망신을 주려 합니다.


라나는 오히려 에마드를 말립니다. 이것은 에마드의 분노가 단지 상처입은 라나에 대한 복수심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대에서 세일즈맨 윌리로 살아온 그에게는 윌리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이 있었을텐데 이것을 노인이 깡그리 배반해버린 것이 분하고 억울했을 테지요.


에마드는 감금된 노인이 기절하자 가까스로 살려낸 뒤 그의 뺨을 후려칩니다. 가족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던 노인은 뺨을 맞고 다시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집니다. 에마드의 이 행위에는 '경멸'의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노인은 그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쓰러집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처럼 말이죠.


일러스트 by Jamie Coe (c)The New Yorker


좋은 영화가 으레 그렇듯 <세일즈맨> 역시 한 가지 해석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에마드의 행동이 과연 옳았는지, 사적 복수는 어디까지 행해져야 하는지, 왜 그들은 공권력을 믿지 못하는지 등등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세일즈맨 ★★★★

가장 잔인한 복수는 경멸.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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