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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이 있습니다. ‘벌어졌다’가 아니라 왜 ‘있습니다’라고 썼냐고요? 이 영화에서 도입부에 등장하는 살인사건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맥거핀이죠. 사망자보다 범인이 누구인가를 중심에 놓고 영화는 미스터리 서사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조금 독특합니다. 서로 다른 세 장소에서 벌어지는 독립된 세 이야기를 늘어놓고 범인은 이 중 하나야 라고 말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렇습니다. 영화는 범인의 몽타주를 보여준 뒤 세 가지 이야기로 건너뜁니다. 교차편집으로 오키나와, 도쿄, 지바에 나타난 의문의 남자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범인의 몽타주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합니다. 얼굴형이 닮았거나 점의 형태가 비슷하거나 혹은 성형 후 추정되는 얼굴이 판박이입니다. 누가 범인일까요? 영화는 이렇게 밑밥을 깔아놓고 세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영화의 제목은 ‘분노’지만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의심’입니다. 세 이야기 속 모두에 의문의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 모를 이 남자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의심을 키우는 것은 불안입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의심을 낳고,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를 너무 좋아해 죽고 못살 것 같은 지바의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는 결국 그를 경찰에 신고하고, 나오토(아야노 고)를 가족처럼 여긴 도쿄의 동성 연인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거짓말하는 나오토를 보고는 혹시 살인범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또 오키나와에서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에 혼자 사는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에 호감을 느껴온 이즈미(히로세 스즈)와 그녀의 새 남자친구 타츠야(사쿠모토 타카라)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타나카가 이상합니다.



영화는 왜 서로 다른 세 곳에서 벌어지는 연관성 없어 보이는 세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는 걸까요? 단지 의문의 남자의 얼굴이 범인과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일까요? 의문의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여는 세 사람을 살펴보면 의문이 조금이나마 풀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오키나와의 아유미는 미군에게 겁탈당합니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두 남자는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 모두에게 짓밟혔던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를 상징하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타츠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도쿄의 유마는 겉으로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아픈 엄마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털어놓지 못하는 동성애자입니다. 그는 어차피 자신이 죽으면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굳이 엄마의 묘지를 사야할지 고민하는 외로운 남자입니다. 지바의 아야코는 가출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중 아빠 요헤이(와타나베 켄)가 데려옵니다. 그녀는 이런 나를 끝까지 좋아해줄 사람은 빚더미에 몰려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는 타시로밖에 없다며 아빠를 설득합니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 주변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들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정체성이나 과거를 숨기고 사는 인물들입니다. 불안이 몸에 체화된 사람들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어디로 갈까요? 공교롭게도 영화는 후반부에 카뮈의 [이방인]에서 그 유명한 뫼르소의 살인 동기를 모티프로 끌어오고 있습니다. 범인은 햇살이 너무 따가운 나머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한 여자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어느 무더운 날의 햇살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그 살인이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의문의 세 남자가 의심받는 상황으로까지 연결됐다는 것이죠.


범인이 햇살이라는 이 결론은 꽤 허탈하지만, 그 살인사건 이후 벌어지는 세 에피소드가 결국 삶의 부조리함이라는 주제로 나아간다는 측면에서 [이방인]과 닮았습니다. [이방인] 역시 뫼르소의 범행보다는  그 이후가 더 중요한 소설이었잖아요. 뫼르소의 살인 동기가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무심하게 치른 것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에서는 인간성 말살의 사례로 제시돼 사형을 선고받은 것처럼 <분노>에서도 이 어이없는 살인사건은 일종의 나비효과가 되어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세 남자를 괴롭힙니다. 뫼르소가 결말에서 부당한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것처럼 엔딩에서 범인임이 밝혀지는 타나카 역시 벽에 ‘怒’자를 써놓으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방인]의 ‘분노’를 가져와 일본 사회에 대입한 영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분노’란 살인사건처럼 밖으로 폭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차곡차곡 쌓여서 의심과 불안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분노의 실체라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분노>입니다.



한국계 일본인 이상일 감독은 <악인>(2010)에 이어 또 한번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영화화해 걸작을 만들어냈습니다. 2시간 21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장면마다 공을 들여 몰입감이 대단합니다. 특히 범인의 몽타주와 세 의문의 남자의 얼굴을 교묘하게 교차편집하는 솜씨가 놀랍습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한적한 주택가에서 태연히 살인을 저지르는 진짜 범인의 얼굴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 그의 연출력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일본의 스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누구 하나 빠지지 않을 만큼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연약하고 본능적인 모습을 신들린 듯한 표정으로 표현한 미야자키 아오이의 연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분노 ★★★★☆

분노가 낳은 나비효과. 믿음이 사라진 세상은 불안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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