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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직접 관전하고 싶은 것은 오래전부터의 꿈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부터 아스날의 팬이어서
경기를 보게 된다면 아스날 경기를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박지성이 맨유에서 활약하는 시기!
아스날도 좋지만 딱 하나의 EPL 경기를 보러 간다면
맨유 경기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여행 계획을 짤 때 박주영은 아스날 입단 전이었습니다.)
박지성이 언제 은퇴할 지 모르는데 지금 맨유 경기를 놓친다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11-12 시즌이 개막하기 전부터 계획을 짰습니다.

여행 계획을 잡은 것은 대략 5월경이었습니다.
9월 말~10월 초 밖에 시간적인 여유가 나지 않아서
그때로 일정을 잡고 항공권도 예약했습니다.


7월이 되어 드디어 리그 경기 일정이 나왔는데
하필이면 제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이 A매치 데이인 겁니다.

정말 운이 없구나 싶었죠.
A매치를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잉글랜드의 A매치는 사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꼭 EPL을 보겠다는 집념으로 여행 일정을 조정하게 됩니다.


원래 10월 8일 맨체스터에서 머물 예정이었던 것을
1주일 앞당겨서 10월 1일로 바꾸었습니다.

항공권 예약 변경이 힘들었는데 1~2주일 대기하고 있었더니 겨우 풀리더군요.

항공권이 확정되자마자 이제 본격적인 맨유 티켓 구하기에 들어갔습니다.
10월 1일은 노르위치 시티와의 EPL 경기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던 날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노르위치 시티라니.
승격한 팀이라서 시시한 경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죠.
빅매치라면 좋았겠지만 뭐 이 정도라도 일단 EPL을 보게 된 것에 만족해야죠.

일단 맨유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노르위치 시티 경기 티켓 판매일에 맞추어 접속해
티켓을 온라인으로 구입했습니다. 카드 결제가 잘 안되서 다른 카드로 겨우 구입했습니다.

시즌 티켓 소유자와 유료 회원에게 티켓 구입 우선권이 있기 때문에
일반권을 구입하려면 기다려야하고 또 좋은 자리는 이미 빠져나간 뒤입니다.
겨우겨우 3층의 2자리를 예약했습니다.
1층과 3층의 티켓 가격이 같아서 1층으로 하고 싶었는데 1층은 빈자리가 전혀 없더군요.
3층도 몇 자리 남지 않은 것을 겨우 샀습니다.
아마도 빅매치였다면 이런 식으로 티켓을 구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층의 가격은 47파운드. 한화로 9만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티켓은 구입하자마자 현지에서 한국으로 직접 보내줍니다.
9월 초에 집으로 도착했더군요.
한동안 혹시 배달사고가 나서 안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었습니다.


그 티켓을 손에 꼭 쥐고 드디어 맨체스터로 고고!





맨체스터 피카딜리 역 근처에 숙소가 있었어요.
호텔은 아니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알게된 영국인 콜린의 집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인 남자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둘은 게이 커플이지요.

저는 순전히 축구 보러 맨체스터에 왔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맨체스터에는 축구 말고도 볼 것들이 제법 있더군요.
황량한 공업도시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잉글랜드의 3대 도시답게 시내가 활기차고 컸습니다.

안타깝게도 콜린이나 카료나 둘다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카료에게 물어보니 올드 트래포드로 가려면 기차를 타는게 좋다고 말해주더군요.
버스를 탈줄 알았는데 기차를 타야하다니... 시내에서 그렇게 먼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그가 말해준 대로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시내에는 빨간 셔츠를 입은 맨유 팬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과연 내가 맨체스터에 왔구나 실감이 들더군요.
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 절반 정도는 맨유 유니폼을 입고 있던 듯합니다.

기차역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가는 왕복 티켓을 팔더군요.
가격은 대략 3.6 파운드였던 것 같습니다.
맨체스터 피카딜리 - 맨체스터 옥스포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렇게만 왕복하는 기차로 맨유 경기가 있는 날에만 3번씩 운행합니다.

생각해보면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 이 도시는
이렇게 기차까지도 축구장과 바로 연결해주는 거였습니다.
올드 트래포드는 시내에서 버스로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차를 타면 훨씬 편합니다.





14번 플랫폼에서 맨유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거의 다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있네요.
사람이 많아서 기차에 겨우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한국 푸쉬맨이 필요하겠더군요.

15분 정도를 달려 종점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에서 내려서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바로 앞에 이런 기념 조형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어, 여기가 어디지 하고 돌아봤더니...
바로 여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장 내부더군요.
정확히는 뮌헨 터널이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동쪽 입구를 통해
경기장 스탠드로 올라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저같은 관광객에게는 서운한 일이죠.
경기장 외관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터널을 빠져나가자...



TV에서 많이 봐왔던 친숙한 맨유 경기장 외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경기 시작 1시간 30분 전인데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다양한 언어가 들립니다. 역시 맨유는 해외팬들이 더 많아요.



맷 버스비 경의 동상이 정문 중앙에 자리잡고 있구요.
맷 버스비 경은 1960년대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이죠.
아마도 훗날에는 이 동상 옆에 알렉스 퍼거슨 경의 동상이 나란히 설 것 같습니다.


경기장 앞에는 저렇게 머플러를 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 앞에 공식 메가스토어가 있는데 저게 장사가 될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메가스토어에는 사람이 엄청 많더군요. 세상에 상점 안에 그런 인파는 처음 봤습니다.
자꾸만 계산 하려는 줄로 끌려가서 겨우겨우 상점을 빠져나왔어요.
물건을 사볼까도 생각했지만 제대로 볼 수도 없었습니다.


경기장의 베스트 뷰가 나오는 곳이에요.
조지 베스트와 맨유 레전드 선수들의 동상입니다.


담벼락에 박지성의 사진도 걸려 있더군요.
경기장과 함께 찍어봤습니다.


맨유 19번의 우승을 자축하는 맨유 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뮌헨 터널. 제가 처음 도착해서 빠져나왔던 곳이죠.
자세히 보니 위에 시계가 걸려 있더라구요.
1958년 2월 6일 대참사를 기억하는 시계입니다.


터널로 가는 길은 기차에서 이제 막 내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경기장 벽에 붙어 있는 조형물입니다.
1958년 뮌헨 참사로 사망했던 당시의 선수 스쿼드와 사진을 붙여놓았네요.


자, 이제 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구를 찾았습니다.
N42를 찾아 경기장을 한바퀴 돌았어요.


가다보니 이런 조형물도 보이구요. 지난번 07-08 시즌 리그 우승때 사진입니다.


드디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간단히 가방 내부 검사를 하고 3층으로 올라가니 팬들이 매점에서 TV를 보고 있더군요.
리버풀과 에버튼의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었어요.
참고로 이날엔 머지사이드 더비, 북런던 더비가 동시에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맨유 팬들은 맥주를 마시며 컴온 에버튼! 을 외치더군요.

하지만 저는 TV를 보러 온게 아니지요. 바로 그라운드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맥주를 보니 목이 말라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맥주 한 병을 샀습니다.
태국산 싱가 맥주인데 알고보니 Singha는 EPL 스폰서인 것 같더군요.
경기장 광고판에도 이 맥주의 상호가 보였습니다.

저 병은 유리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물렁물렁합니다.
맥주를 들고 그라운드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마시며 잠시 TV로 리버풀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수아레즈가 골을 넣었는데 맨유 팬들의 반응은 시큰둥.
잠시 후 다시 나오는 리플레이를 보니 수아레즈의 손에 공이 맞은 것 같았는데요.

아무튼 저는 맥주병을 비우고 다시 그라운드로 향했습니다.


(2편으로 계속)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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