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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이 왼쪽에서 공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크로스를 올리려 하고 있네요.


이날 전반적으로 맨유의 경기력은 형편 없었어요.
안데르손, 플레처, 나니가 자꾸만 공을 뺏겼죠.
그래서 박지성에게도 공이 잘 안왔는데요.
박지성도 특유의 소극적인 패스 플레이로 인해 별다른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관중들은 맨유 응원가를 부르거나 Come On United!를 외치거나 하면서
경기와 함께 호흡했는데요.
제 뒤에 앉은 목소리 큰 남자와 여자는 거의 중계방송을 하듯 소리를 질러대더군요.
Find the red shirts! Blocking men! 처음에는 이런말만 하다가
나중에는 경기가 안풀리니까 F자가 들어가는 욕을 해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바로 뒤에 아빠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별로 좋을 것 같지는 않았어요.

박지성이 좋은 기회를 잡아 슈팅하려다가 막혔는데요.
제 뒤에 앉은 아이가 아빠에게 "지성팍이 10번이야?" 그러니까 아빠가 "아니 13번".
이러면서 대화를 하는데 나중에는 아이가 이러더군요.
"아빠, 맨유는 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면 어서 빨리 골을 넣어야 할 것 같아."



노르위치 시티 팬들은 한쪽 구석에 앉았는데요.
이들은 일사분란하게 응원을 했습니다.
맨유팬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단연 돋보였어요.
후반전 중반에 첫 골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경기가 팽팽한 0:0이었기 때문에
아마 더 신이 났을 겁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추가시간이 진행중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한 줄로 표시되는 전광판을 자세히 보면 Happy Birthday to 누구누구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미리 응모를 하면 저렇게 생일 축하 문구를 만들어 표시해주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에게는 저 한 줄의 문구가 큰 선물이 되겠죠.


전반 추가시간에 맨유에게 찬스가 한번 있었죠.
그래서 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경기장에 쏠렸는데 결국 득점 없이 0:0.
맨유가 작년부터 지금까지 홈에서 한 골도 못넣은 경기는 없다고 하니까
후반전을 기대해 봐야겠죠?



하프타임때 다시 한 번 경기장에 물을 뿌립니다.
그리고 크리켓 대회에서 우승한 잉글랜드 대표팀이 나와서
경기장을 한바퀴 돌며 인사를 했습니다.



자, 다시 후반전이 시작됐고 역시 전략가 퍼거슨 감독 답게
후반전에는 맨유가 더 많은 찬스를 잡았습니다.
70분쯤 되자 예상대로 2명의 교체가 한꺼번에 이루어졌는데
나니와 치차리토가 빠지고 긱스와 웰벡이 들어갔어요.
이날 나니는 공을 자주 뺐겼고, 치차리토는 거의 공을 잡지 못했어요.

다행히 박지성은 교체되지 않았습니다.
박지성이 잘해서였다기보다는 다른 선수들이 더 못했죠.



역시나 퍼거슨의 전술 변화는 이번에도 적중했습니다.
안데르손이 귀여운 헤딩으로 골을 넣었네요.

안데르손은 전반전에 중앙에서 공을 자주 뺏기고 흐름을 계속 끊어먹었는데
이 골 한 방으로 팬들에게 박수를 받네요.



드디어 전광판의 숫자가 1로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오른쪽의 숫자는 위는 현재 시각, 아래는 남은 시간입니다.


경기가 끝나기 10분쯤 전. 드디어 박지성이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습니다.
박지성이 웰벡에게 공을 주고 페널티 박스로 들어가 다시 공을 받자
관중들은 다시 한 번 일어섰습니다.
저도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습니다.

아, 드디어 박지성에게 골 찬스가 왔구나!
박지성이 골키퍼와 1:1로 맞선 것으로 보였어요.
제발! 슛! 저도 모르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박지성은 다시 웰벡에게 패스했고 웰벡이 골을 넣었습니다.
팬들은 함성을 질렀지만 저는 약간 아쉬운 마음에 주저 앉았네요.

그래도 확실한 도움으로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으니 그게 어딘가요.
사진은 웰벡의 골 세리머니 이후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경기는 2:0으로 끝나고 팬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기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일부 관중들은 경기 끝나기 5분 전부터 미리 빠져나가더군요.
저는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아까 예약해둔 맨체스터 시내로 돌아가는 기차가 딱 3번 운행하는데
경기장 밖으로 나갔더니 이미 줄을 저멀리 길게까지 늘어서 있는 겁니다.
저도 부랴부랴 그 줄의 끝에 섰습니다.

그런데 2번의 기차가 지나가도 줄이 많이 줄어들지를 않더군요.
혹시나 3번째 기차도 못타게 되면 다시 경기장을 빠져나가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제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3번째 기차에 희망을 갖고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1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3번째 기차를 탈 수 있었네요.

경기가 끝나고 늦게 나온 저는 줄을 서서 1시간을 기다렸지만
5분 일찍 경기장을 나온 사람들은 바로 기차를 탈 수 있었겠더라구요.
물론 차를 가져온 사람들은 혼잡한 도로교통이 걱정되었을테구요.



기차를 타고 맨체스터 피카디리 역에 다시 내렸습니다.
기차안에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눌러 탔더니
도착하고 나서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플랫폼을 걷는데 마침 지성팍의 유니폼을 입은 맨유팬이 보여서 한장 찍었습니다.


2011년 10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그날의 함성 소리. 
경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관중들의 집중력.
그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공기. 그리고 도시 곳곳에 축구 유니폼을 입은 팬들.

맨체스터에서 단 하루였고 또 프리미어리그 38라운드 중 한 경기일 뿐이었지만
저에게는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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