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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후 꼭 10년만에 다시 런던을 방문했습니다. 파리는 2002년에도 갔었으니 9년만이네요. 입국 심사대에 들어서면서 10년 전 영국에서 영어를 배우던 시절이 떠올랐지요. 무작정 떠난 첫 외국 여행이었는데 모든 것이 낯설었고 특히 히드로 공항에서 장총을 들고 다니는 군인들에 겁먹었던 기억부터 났습니다. 다른 색깔의 인종들과 언어들, 런던은 모든 인종들이 섞여 있는 도시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입국심사는 여전히 깐깐했습니다만 이번엔 좀 웃으면서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었네요.


2011년 10월 2일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그전에 리버풀과 맨체스터부터 들렸거든요. 맞습니다. 그 유명한 비틀즈와 리버풀 FC,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도 보고 맨체스터 시티 FC 스타디움의 아치도 먼 발치에서 구경했습니다. 운좋게도 제가 올드 트래포드를 찾은 날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박지성이 선발 풀타임 출장했고 도움도 1개 기록했습니다. 3층이었지만 선수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잘 보이더군요. 뒤에서 한 남자와 여자가 쉴새없이 소리를 질러댄 것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Come on United! Find the red shirts! Fu**ing blocking men!


맨체스터에서 기차를 타고 런던 유스턴 역에 도착했던 날, 런던 날씨는 참 맑았습니다. 10년 전에는 맑은 날씨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는데 운이 좋았나 봅니다. 국회의사당 근처의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런던은... 그때와 비슷하기도 하면서 또 많이 달랐습니다. 런던에게 10년은 별 것 아니겠지만 저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기나긴 시간이었을테니까요. 20대의 감수성을 다시 찾고 싶었습니다만 잡힐 듯 하면서도 어렴풋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걷던 거리들, 옥스포드 서커스, 세인트 제임스 파크, 그리고 탬즈 강의 아름다운 야경. 비슷하지만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때는 혼자였고 지금은 아내와 함께 걸었습니다.



2011년의 런던은 도시 곳곳이 공사중입니다. 옥스포드 서커스 길도 공사중으로 막아놓고, 심지어 빅토리아 역이나 토트넘 코트 로드 역은 아예 공사중으로 지하철 운행도 하지 않습니다. 지하철 가격이 4파운드(무려 8천원! 오이스터로 이용하면 1.9파운드)로 오른 것도 불만이었지만 일부 구간은 운행하지 않고, 또 서클 라인은 휴일에 거의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이번에는 가급적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노팅힐로 가려고 디스트릭트 라인을 탔는데 한 정거장 남기고 멈춰버리더군요. 정말 짜증이 확 났습니다. 이건 참 슬픈 일입니다. 10년 전에는 런던 튜브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왜 이렇게 서비스의 질이 낮아진 걸까요. 지하철 폭탄 테러 때문인가요.


하지만 런던의 버스 시스템은 여전히 최고입니다. 정확하게 안내해주고 정류장마다 노선도도 보기 편하고 주변 지도도 길 찾기에 딱입니다. 무엇보다 튜브보다 가격이 쌉니다. 오이스터 카드로 1.1파운드에 갈 수 있으니까요. 다만 10년 전에는 이동중이던 2층 버스에 뒤로 올라타서 안내원에게 카드를 보여주거나 표를 사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자동문으로 바뀌어서 예전 같은 정취는 느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아쉽더군요.


10년 전에 제가 잠시 살았던 곳은 스위스 카티지 역 근처와 해머스미스 역 근처였습니다. 이번에는 짧은 여행이어서 그곳들을 가보지 못했어요. 스위스 카티지 역 근처의 하숙집 주인의 아들인 중학생 리샤르가 지금 어떻게 컸을지 궁금했는데 안타까웠습니다. 그 아이는 당시에 아시아 문화를 참 좋아했거든요. 물론 지금 저를 알아봐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밤에 탬즈 강을 따라 걷는 것은 참 로맨틱한 일입니다. 파리의 센느 강도 로맨틱하지만 전 탬즈 강변이 더 좋습니다. 타워 브릿지에서 런던 브릿지까지, 밀레니엄 브릿지에서 골든 주빌리 브릿지까지, 그리고 골든 주빌리 브릿지에서 웨스트민스터 브릿지까지. 안타깝게도 일부 구간은 돌아서 우회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변을 따라 걷는 이 길들의 야경은 참 멋집니다. 이 길들을 따라가면 런던 타워, 런던 시청, 테이트 모던, 셰익스피어 글로브, 런던 아이, 빅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런던에 가기 전에 6일 동안 파리에 있었습니다. 파리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는데 2001년 런던에서 1박 2일로 여행했던 파리, 2002년 끌레르몽-페랑 영화제에 가기 전에 방문했던 파리, 그리고 이번엔 순전히 파리만을 위한 방문을 했습니다. 2001년엔 여름, 2002년엔 겨울, 그리고 이번엔 가을이었네요. 여름과 가을의 파리는 참 좋았고 겨울의 파리는 너무 추웠던 기억만 있습니다. 역시 겨울에 유럽을 가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10년 전 파리에 대한 첫 느낌은 로맨틱과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여기저기를 다녔었고 숙소도 퐁네프 다리 근처의 120년된 낡은 알렉산더 호텔에서 묶었었죠. 호텔 방문이 잠기지 않아서 불안해하면서 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유람선에서 흘러나온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이 너무 좋았었죠.


지금 다시 가본 파리는 그때의 기억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파리가 변한 걸까요. 아니면 제가 변한 걸까요. 당시에 탔던 유람선은 바토 뮤슈가 아니라 바토 파리지엥이었다는 것을 지금 알게 되었네요. 그때 넋 놓고 봤던 에펠탑의 블링블링 쇼는 밤 8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네요. 그때 대충 봤던 것들을 이번에는 좀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어요. 오르세나 튈르리 공원, 라 뒤레 뿐만 아니라 오랑주리, 마레지구, 피에르 에르메, 벼룩시장도 가보았습니다. 파리는 역시 멋집니다. 디테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곳곳에 보석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도시가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것이 정교하게예술을 위해 존재합니다. 다른 유럽에는 없는 것들이 꽉 차 있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2800장이나 찍었습니다. DSLR이 아니었으면 아마 더 찍었을지도 모르겠는데 DSLR 특유의 큰 찰칵소리 때문에 실내에서는 몇 번 저지당하기도 했네요. 그래도 최대한 허락을 받아서 찍도록 노력했습니다. 여행을 계속 다니다보니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더군요. 결국 사진들만 남는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그때 기억이 떠오르는거죠. 그래서 사진이 남지 않으면 기억도 사라져버려요. 힘들지만 계속해서 사진을 찍으면서 다니는 이유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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