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월 9일 같은 날 함께 개봉한 한국영화 <조작된 도시>와 미국영화 <스노든> 사이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성격도 장르도 전혀 다르지만 두 영화는 뜯어볼수록 비슷하다. 대체 뭐가 닮았냐고? 일단 영화소개 먼저.


<조작된 도시>


조작된 도시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이 12년 만에 선보인 한국영화다. 1인칭 슈팅게임(FPS)의 클랜으로 뭉친 ‘덕후’들이 실제 세계에서 살인사건 조작을 일삼는 악당을 응징한다는 액션 어드벤처다. 총제작비 100억원이 투입된 대작으로 도입부의 다이나믹한 총격전, 어둠 속에서 야광 쌀을 뿌리며 싸우는 격투신, 경차로 선보이는 카레이싱 등 게임에서 차용한 액션이 볼거리다.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지창욱이 클랜의 대장이자 누명을 쓰고 쫓기는 권유 역,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이 히키코모리 해커 여울로 출연한다. 컬트적 마성의 배우 오정세가 보여주는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악당 연기도 매력적이다.


<스노든>


스노든


정치영화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의 20번째 장편영화로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국가 도·감청 기밀 폭로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 스릴러다. 한국팬들에게 ‘조토끼’로 친근한 조셉 고든 레빗이 스노든 역을 맡아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스톤 감독은 주관적이고 논쟁적인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이번엔 스노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왜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했는지를 비교적 객관적 시선으로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마지막 장면에선 스노든이 직접 출연해 이것이 스크린 밖 실제 상황임을 주지시킨다.



‘조작된 도시’와 ‘스노든’의 공통점?


<스노든>

<조작된 도시>


1. 무차별 도·감청 빅브라더 등장


두 영화 모두 빅브라더가 등장한다. <스노든>은 국가 차원의 무차별 도·감청이 이뤄지고 있다고 폭로하고, <조작된 도시>는 이를 악당들이 어떻게 악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노든>에서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하게 된 뒤 프리즘 프로젝트를 알게 된다. 빅브라더처럼 전세계 누구든 통화내용과 메신저, 이메일, 검색기록 등 온라인 상의 모든 개인정보를 꺼내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이를 운영하는 조직에 놀란 그는 점점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조작된 도시>의 배경 역시 도·감청이 자유자재로 이뤄지는 도시다. 영화 속 악당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도시 곳곳의 CCTV, 통화내용, 메신저 등을 확인한다. 악당에 쫓기는 주인공을 돕는 해커 역시 만만찮은 실력으로 외부 서버에 침입해 CCTV 영상을 확보하고 주요 인물을 도청한다. '눈에는 눈'이라고 이들은 악당의 데이터베이스를 역이용해 반격을 꾀한다. 결국 이야기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빅브라더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스노든>

<조작된 도시>


2. 국가에게 쫓기는 주인공


두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 내내 쫓겨다닌다. <스노든>의 스노든은 정보기관에 쫓기고, <조작된 도시>의 권유는 경찰과 조폭에게 쫓긴다. 스노든은 국가 기밀을 빼내 자발적으로 쫓기는 삶을 택한 반면 권유는 영문도 모른 채 누명을 쓴다. 쫓기는 이유는 다르지만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오히려 쫓는다는 설정은 닮았다.


스노든과 권유는 혼자가 아니다. 그들은 쫓기는 와중에 조력자들을 만난다. 스노든에겐 가디언 기자, 다큐멘터리스트 등이 큰 도움을 주고, 권유는 게임하며 친해진 동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국가에게 쫓기던 두 주인공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연대감을 회복한다는 것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스노든>

<조작된 도시>


3. 버림받은 능력자들


두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정작 능력을 발휘할 곳을 찾지 못해 버림받은 자들이다.


<스노든>의 스노든은 머리가 비상한 천재 해커로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어 정보기관에 들어간다. 그는 이라크전에 참전하기 위해 자원 입대까지 할 정도로 애국심 강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정보기관의 도·감청 실태를 폭로하자마자 국가로부터 버림받는다.


<조작된 도시>의 권유는 한때 태권도 유망주였지만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이다. <미생>의 실패한 바둑 특기생 장그래처럼 권유 역시 태권도에서 좌절을 맛본 뒤 PC방을 전전한다. 그는 조작된 증거로 누명을 쓰고 살인범으로 몰려 수감되는데 법과 제도는 그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권유를 돕는 클랜 역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사회적 루저들의 집합이다. 대인기피증 해커를 비롯해 못 만드는 게 없는 기술자인 용산전자상가 직원(김민교), 특수효과회사 말단 스태프(안재홍), 지방대 시간강사(김기천) 등 이들은 모두 능력자들이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스노든>과 게임 덕후들이 세상을 뒤집는다는 픽션 <조작된 도시>는 제작 배경도 의도도 전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빅브라더 시스템과 주인공이 처한 운명이 닮았다. 한 편은 진지한 고발영화로 만들어졌고, 또 한 편은 상업적인 오락영화로 만들어졌지만 두 영화 모두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수집돼 언제든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한국서 같은 날 공개된 두 영화의 전혀 예상치 못한 공통점, 그런데 우연치고는 꽤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