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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작비 130억원이 투입된 대작 '마스터'는 지난 2008년 8조원 규모의 네트워크 사업으로 10만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양산한 조희팔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당시 중국으로 밀항한 뒤 2012년 석연치 않은 부고를 남긴 희대의 사기꾼은 지금도 위장죽음 의혹에 휩싸여 있다.


다분히 무거운 소재지만 영화는 '터널' '내부자들' 같은 사회고발 영화의 길을 가는 대신 '공공의 적' '베테랑'처럼 사회비판적 소재를 범죄액션 장르에 녹인 오락영화의 길을 간다. 이 장르의 법칙은 악당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힘주어 강조한 뒤 그 악당을 잡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악당의 행동이 끔찍할수록, 또 그를 잡는 형사의 능력이 출중할수록 영화의 재미는 배가 된다.



영화는 청중의 혼을 쏙 빼놓는 진현필(이병헌)의 일장 연설로 시작한다. 조 단위의 다단계 사업을 운영 중인 그는 저축은행 인수를 통해 금융업으로 본격 진출하기 위해 정관계에 뇌물을 뿌리고 다닌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형사 김재명(강동원)은 진현필의 브레인 박장군(김우빈)을 통해 뇌물 장부를 빼내려 한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전반부는 진현필이 승승장구하고 김재명이 그의 뒤를 캐는 과정, 후반부는 필리핀으로 도주한 진현필과 김재명의 진검승부를 그린다. 박장군은 김재명에게 약점을 잡힌 뒤 양쪽을 오가며 감초 역할을 한다.



한국영화 최대 성수기 중 하나인 겨울시즌을 노린 오락영화로서 '마스터'는 그럭저럭 즐길 만하다. 러닝타임은 2시간 23분으로 제법 길지만 필리핀에서의 액션과 추격전, 군데군데 웃음과 톱스타들의 멋진 몸놀림이 적절히 배치돼 지루하지 않다.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했지만 지나치게 암울한 이야기로 흥행 실패한 '아수라'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마스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예매율도 순조로워 손익분기점인 관객 370만명은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영화를 최대한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려다보니 생긴 문제인 듯하다. 그중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영화의 모티프인 조희팔 사건에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그가 정말 죽었는지, 만약 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질문을 건너 뛴다. 김재명이 어떻게 진현필의 행방을 알아냈는지를 생략하고 오직 둘의 대결에만 집중한다.


오락을 목적으로 한 상업영화가 다큐멘터리처럼 구체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굳이 이 사건을 영화화하기로 했으면 논란이 분분한 이 부분에서 더 상상력을 발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때문인지 영화 플롯상으로도 전반부와 후반부의 연결과정이 매끄럽지 않게 됐다.



둘째, 이 영화의 멀티 캐스팅은 미스 캐스팅이다.


'마스터'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캐릭터들의 매력에 기대는 영화다. 그래서 단독 주연을 맡아오던 톱스타들을 멀티 캐스팅했다. 정의감 투철한 좋은 놈은 강동원,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나쁜 놈은 이병헌, 웃음을 책임지는 이상한 놈은 김우빈이 연기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캐스팅은 미스 캐스팅이다. 이병헌의 연기가 워낙 독보적이라 다른 배우들이 묻힌다. 이병헌이 눈물과 협박에 동남아식 영어까지 구사하며 장면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나면 강동원과 김우빈은 뜬구름 잡는 대사를 남발하며 뒤를 쫓는데 무게감이 약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병헌의 연기는 '내부자들'을 능가하는데 강동원은 '검사외전', 김우빈은 '스물'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영화 제목인 '마스터'가 이병헌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보일 정도다. 어쩌면 이것은 실존인물에서 따온 진현필과 달리 허구인물이 갖는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병헌 때문에 관객이 희대의 악당에게 설득당해버리는 아이러니는 전혀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마스터'의 감독은 '감시자들'로 한국 경찰영화의 새 서브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은 조의석이다. '감시자들'에서 그는 촘촘한 첨단 감시망을 활용해 기존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는 독창적인 추격전을 선보였다. '일단 뛰어' '조용한 세상' 등 이전 작품들도 신선한 느낌이 가득했다.


조의석 감독(오른쪽)과 강동원


하지만 '마스터'에는 조의석만의 날것 같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통렬한 사회비판이 담긴 짜릿한 캐릭터 무비일 거라는 기대와 달리 결과는 이병헌의 독주와 클리셰의 남발이다. 그나마 엄지원이 연기한 신젬마 형사의 역할이 돋보이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


조의석 감독은 희대의 사건을 소재로 한, 그러나 그다지 새롭지 않은 오락영화 한 편을 그의 2016년 필모그래피에 남기게 됐다.


마스터 ★★

적당히 식상한데 이병헌만 빛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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