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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는 겨울에 시작해 사계절을 보낸 뒤 다시 5년을 건너 뛰어 겨울을 지나고 나서야 끝난다. 만약 '라라랜드'가 5년을 건너뛰지 않고 그냥 가을에 끝났더라면 어땠을까? 그저그런 영화로 남지 않았을까? 사실 가을이 끝날 무렵까지만 해도 영화는 이처럼 내 마음 속에 오래 남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가을의 막바지에 미아(엠마 스톤)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에게 던지는 대사다. 우리가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툭 던져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혹자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고 혹자는 인생을 트레일링에 비유한다. 둘의 차이는 목표지점의 있고 없음이다. 데미언 차젤레 영화에서 인생은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다. 꿈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위해 우리는 젊음을 열정으로 불태운다.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점점 무너져간다. '위플래쉬'도 그렇고 '라라랜드'도 마찬가지다.


'위플래쉬'의 앤드류.


'위플래쉬'의 앤드류(마일스 텔러)와 플레처(J.K. 시몬스), 그리고 '라라랜드'의 세바스찬과 미아는 마라톤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표 지점은 저 높은 하늘 속에나 있다. 꿈에 대한 열정으로 하늘을 향해 뛰어 올라 보지만 그곳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뭇가지를 향해 손을 뻗는 어린 아이처럼 키가 한뼘 더 자라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날 문득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그들은 비로소 주위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인생이 목표지점 없는 트레일링이라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속여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수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때로 마라톤의 코스를 이탈하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돌아와야 한다. 가족, 돈, 직업, 건강, 명예, 사랑... 이런 이유들이 돌아오는 방아쇠가 된다.



"우리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 대사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에도 나온다. 영화 속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세바스찬이나 미아와 달리 꿈이 없는 여자다. 일찍 결혼해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남편 루(세스 로겐)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은 겉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큰 목표 없이 그녀는 인생이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면서 살아갈 것만 같다.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와 루.


그러나 새로운 만남이 그녀를 변화시킨다. 여행길에서 만난 근사한 남자 대니얼(루크 커비)이 방아쇠 역할을 한다. 하룻밤 일탈로 생각하고 잊어버리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이웃집에 사는 남자였다. 이때부터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남편과 함께 있다가도 자꾸만 대니얼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버리고 대니얼에게 가지 못한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그녀 삶의 목표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놓치는 것은 두렵지 않아. 비행기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게 두렵지."


마고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 남자도 좋고 저 남자도 좋으니 남이 보기엔 속편한 고민이라고 할 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막상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걱정이다. 누구도 자신의 걱정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 걱정은 오롯이 스스로의 것이다.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와 대니얼.


고민거리가 많을 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걱정한 상황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어쩌면 걱정 그 자체일지 모른다. 막상 그 일이 벌어지고 나면 우리는 차라리 걱정에서 해방될 것이다. 비행기를 놓치면 속은 상하겠지만 마음은 편할 것이다. 이미 비행기는 떠나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 한 걱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즉, 걱정이 걱정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걱정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마고는 걱정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걱정하는 상태를 걱정하기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고는 회전목마를 닮은 놀이기구를 타는데 목표없이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이 놀이기구는 그녀의 걱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


다시 '라라랜드'로 돌아오자.


미아도 걱정이 많은 여자다. 그녀 역시 오디션을 100번 이상 볼 정도로 회전목마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지만 그녀는 센느 강에 뛰어들어 나오지 않은 이모처럼 회전목마 안에 머물러 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세바스찬은 이렇게 말한다.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이 말은 그들이 지금 올라 타 있는 인생의 궤도가 어디로 가는지 신경쓰지 말자는 뜻이다. 인생이 아무리 회전목마처럼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것처럼 보여도 멀리서 보면 어쩌면 그 모습 그대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화분 안에서만 살아온 개미는 화분 밖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인간도 우주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줄 수 있는 타인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겨울이 찾아온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두 사람은 알게 된다. 그때 그들은 서로 다른 궤도에 올라 선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열차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떠날 예정이었고 5년 전의 가을, 겨울, 봄, 여름은 그들이 한때 머물렀던 정류장일 뿐이었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재즈 클럽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미아를 위해 둘 만의 비밀이 가득한 음악을 연주한다. 이 음악이 식당 스피커에서 흘러나올 때 미아는 녹색 드레스를 입은 채 세바스찬을 찾아 리알토 극장으로 뛰어갔었다. 또 두 사람이 하나가 된 뒤엔 미아의 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함께 이 노래를 불렀었다.



세바스찬의 피아노에 맞춰 두 사람은 상상의 나래를 편다. 만약 그때 그들이 타고 있던 열차가 같은 방향이었다면 지금의 인생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한다. 만약 그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고 서로의 방향을 향해 움직였더라면, 만약 그때 하늘의 별이 아닌 서로를 더 바라봤더라면, 만약 그때 그들이 함께 춤추는 것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때 그들이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날 것을 알았더라면... 상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된다.


그들도, 영화를 보는 우리도 알고 있다. 인생은 가정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 벌어진 일보다 상상 속의 일이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을, 이루지 못한 꿈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더 아프다는 것을 말이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겨울이 영상과 소리로 보여주는 가정법은 오직 영화라는 매체만이 표현할 수 있는 황홀한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동공은 커지고 우리는 그들의 '만약'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마치 그 가상의 시간이 실재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영화는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기를 바라도록 만들었다가 다시 그럴 리 없는 현실 속으로 내동댕이친다.


영원할 것 같았던 회전목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비행기는 이미 떠났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건지 묻던 커플은 이미 거기 없다. 시간은 지나갔고 돌이킬 방법은 없다. 열정은 꿈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거나 혹은 운이 좋아 이미 별이 되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웃는다. 미아가 미소 짓고 세바스찬도 씩 웃어보인다. 그래, 그거면 됐다. 잠깐 꿈이라도 꿔봤으니 됐다. 그는 그녀의 꿈이고, 그녀는 그의 꿈이라는 것을 서로 알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그런 안도감이 둘을 미소 짓게 한다. 만약 미아가 재즈클럽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혹은 그 자리에 세바스찬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영영 자신의 꿈을 기억하지도 못했을 것 아닌가.


미아가 성공하기 전 마지막 오디션에서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다. 꿈꾸는 바보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바보들. 세상에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런 사람들이 있다. 가정법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다면 세상에는 아무런 꿈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겨울은 꿈꾸는 바보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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