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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부터 8월 18일까지 약 한 달 동안 3700만명이 극장으로 피서를 떠났다. 1년 영화관객 2억명 시대이니 월평균(1660만명)의 2배 이상 관객이 극장으로 몰린 것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3238만명에 비해 14% 늘어난 수치다. 올여름은 특히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기온을 기록중인 만큼 에어컨 빵빵한 극장은 어느 때보다 피서지 역할을 톡톡이 했다.


영화사들 역시 최대 성수기인 여름 시즌을 맞아 각사의 대표작들을 극장에 내걸고 손님을 맞았다. 한국영화로는 대형 배급사 4곳의 소위 ‘빅’4로 불린 대작 <부산행>(NEW, 1100만명) <인천상륙작전>(CJ, 650만명) <덕혜옹주>(롯데, 430만명) <터널>(쇼박스, 400만명)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모두 흥행 성공했고, 외화로는 <제이슨 본>(260만명) <마이펫의 이중생활>(200만명) 등이 선전했다.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올여름 영화시장의 특징은 뭐였는지, 6가지 포인트로 분석했다.



1. 돌아온 재난영화



<부산행>과 <터널>을 본 뒤 KTX를 타고 터널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용자다. 우리 삶과 밀접한 배경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 두 편이 15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올해 재난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가 재난 수준의 난맥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가 그 화를 표출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 전국민에게 라이브로 중계된 세월호 참사 이후 창작자들이 재난을 주제로 한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분석 등이다.


그러나 사실 재난영화가 여름 시즌에 연달아 선보인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013년에도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감기> 등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란히 개봉한 적 있다. 세 영화 모두 사회비판적인 시선의 영화라는 점도 올해 <부산행>과 <터널>의 쌍끌이 흥행과 닮았다.



2. 대박 속엔 한국사회 있다


한국영화 대박 작품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오롯이 영화의 힘만으로 흥행한 사례가 적다는 것이다. 흥행작 대부분 사회와 함께 갔다. 작년 <암살> <베테랑> <내부자들>이 그랬고, 올해는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하다. ‘빅4’ 모두 한국사회와 연결돼 있다.


<부산행>에선 재난 사태에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가 현실인 듯 기시감을 불러일으켰고, <인천상륙작전>을 놓고는 시대착오적 반공영화인지 아닌지 설전이 벌어졌으며, <덕혜옹주>는 조선황실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터널>은 아예 장관과 기자를 사건 해결에 도움이 안되는 인물로 설정해 4편 중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다.



상업영화가 이렇게 계속해서 사회를 담는 것은 일종의 흥행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해 좋은 소문이든 나쁜 소문이든 일단 입소문이 돌아야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어떻게든 사회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이야깃거리를 양산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영화 재밌어” 한 마디보다 “그 영화 꼭 봐”로 연결되려면 먼저 본 관객의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삶의 질이 팍팍한 한국 관객들이 특히 현실에 대입 가능한 영화를 선호한다는 점도 이런 영화들의 제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빅4’ 중 유일한 장르영화인 <부산행>은 초반에 좀비영화임을 철저히 숨기고 마케팅했다. KTX와 재난, 가족 등 우리 삶과 밀접히 관련된 것들이 홍보의 키워드였다. 영화 속에도 좀비라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 결과 초반 ‘제2의 <명량>’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흥행 태풍이 불었다. 하지만 곧 좀비영화로써 한계를 드러내며 흥행세가 주춤해졌다.



3. 전문가 이긴 관객의 힘



<인천상륙작전>은 공개되자마자 평론가들과 기자들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았다. <국제시장> <연평해전> 등 보수영화에 호의적이었던 보수신문마저 이 영화를 철지난 반공주의라며 비판했다. 이 와중에 30억을 투자한 KBS는 영화 홍보 기사를 거부한 기자를 징계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워낙 평가가 좋지 않아 흥행 전망은 불투명했다. 매년 여름 시즌 강자였던 CJ가 올여름에는 큰 적자를 볼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 영화를 피해 개봉일을 뒤로 늦춘 <덕혜옹주>는 자신감을 얻고 개봉일을 앞당겼을 정도다.


그런데 관객들이 영화를 살렸다.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라는 호기심이 특히 20,30대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볼 만 하던데"라는 호의적인 댓글이 수천개씩 달리면서 사태는 '전문가 대 관객' 양상으로 흘렀다. 그 결과 영화는 개봉 첫날부터 기세등등하던 <부산행>을 따돌렸고 이후 일주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4. 롯데의 구세주 손예진


한국의 4대 대형 배급사 중 하나인 롯데엔터테인먼트는 2014년 <기술자들>을 끝으로 한국영화 흥행작이 없었다. <간신> <협녀: 칼의 기억> <서부전선> <조선마술사> <해어화> <사냥> 등 만드는 족족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롯데가 그룹 위기 대응에 집중하느라 영화를 포기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급기야 제작사들이 롯데와 손잡는 것을 꺼린다는 말까지 들렸다.


<덕혜옹주>는 이런 우려 속에 개봉했다. 당초 ‘빅4’ 중 최약체로 분류돼 롯데의 저주는 계속될 것만 같았다. 액션이나 유머가 주된 흥행요소인 다른 영화와 달리 <덕혜옹주>는 슬픔을 주제로 한 영화라 여름영화로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설상가상 제작비가 초과돼 영화는 완성되지 못할 고비를 맞기도 했다.


개봉 첫날, <덕혜옹주>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인천상륙작전>에 1,2위를 내주며 3위로 출발해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개봉 12일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덕혜옹주>의 흥행은 손예진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인생 연기'라는 호평 속에 모자라는 제작비 마련을 위해 사비까지 털었다. 개봉 전 부산, 대구 시사회에서 관객의 호응을 확인한 손예진은 개봉 후에도 어느 배우보다 분주하게 수도권 극장을 돌며 영화를 홍보했다. 그녀의 팬들은 '예진 언니 투자금 10억 구하기'라며 재관람을 독려하기도 했다.


지금 추세라면 <덕혜옹주>는 무난히 500만명 이상 관객을 맞이할 전망이다. 이는 2013년 여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이후 3년 만에 거둔 롯데 배급 한국영화의 최고 성적이다. 공교롭게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역시 손예진 주연 영화였다. 롯데는 손예진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5. 한국영화 ‘빅4’ 편식한 관객


한 달 동안 극장을 찾은 관객 3700만명의 대부분은 한국영화를 찾았다. 한국영화 관객 2700만명으로 점유율이 무려 73%에 달한다. 외국영화는 1000만명으로 27%다. 다양성영화를 본 관객은 고작 0.01%인 47만명에 불과하다.


이같은 한국영화 편식의 이유가 좋은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소위 '빅4'의 관객이 2580만명으로 한국영화 시장의 96%를 독식했다. 한 마디로 극장에 간 10명 중 7명은 한국영화 '빅4'에 해당하는 작품을 봤다는 말이다.


외국영화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200만명 안팎의 관객을 동원한 <제이슨 본> <마이펫의 이중생활>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스몰빅3'를 형성하며 점유율 62%로 외국영화 시장을 과점했다.



이를 합산해 계산하면 한 달 동안 극장을 찾은 10명 중 9명은 '빅4'와 '스몰빅3' 중 한 편을 본 것이 된다. 6월 관객 90%가 영화 10편을 나눠 본 것에 비하면 확연히 쏠림 현상이 강해졌다.


결국 여름 시즌 평소보다 2배 이상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지만 평소보다 더 한정된 영화만 봤다. 대작들의 치열한 다툼 속에 규모가 작은 영화들은 철저히 소외돼 영화시장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됐다.



6. 추억 탈탈 끌어모아 재개봉


처음엔 신기한 일이었다. <영웅본색> 같은 옛날 영화를 현대식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있다니 말이다.


재개봉은 ‘응답’ 시리즈 이후 불어온 복고열풍에 힘입어 트렌드가 됐다. <이터널 선샤인>, <500일의 썸머> 등은 애초 개봉 때보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아 영화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수입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옛날 영화들을 찾기 시작했다. 맷 데이먼의 초기작 <굿 윌 헌팅>(1997)에 이어 무삭제판 <연인>(1992), <베티블루 37.2 디 오리지널>이 호기심을 자극하더니 <초속 5센티미터>(2007)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니키타>(1990) <죽은 시인의 사회>(1989)까지 돌아왔다. <포레스트 검프>(1994) <비포 선셋>(2004) <싱글맨>(2009)도 곧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가뜩이나 영화 편식하는 여름 시즌, 작은 배급사들은 해외에서 신작을 찾아와 극장에서 모험을 하기보다 비교적 값싸고 안전한 방식으로 예전에 흥행한 영화 리바이벌에 주력하고 있다. 대작이 아닌 영화는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영화시장이 극과 극으로 나뉘었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관객 입장에선 극장에서 추억을 돌아볼 수 있어 반가운 한편 이런 현상이 지나치면 결국 문화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을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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