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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마지막 딸의 비운의 삶, 손예진의 10억 투자, 허진호 감독 4년만의 컴백 등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덕혜옹주>가 한여름 전쟁터 같은 극장가에서 개봉일 눈치보기 끝에 3일 상영을 시작했다. 이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네 가지 궁금증과 답을 준비했다.




1. 영화 속 덕혜와 실제 옹주는 어떻게 다른가?


영화는 ‘여자 덕혜’라고 할 정도로 조선의 옹주이기 전에 한 여인의 삶을 다룬다.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부모와 생이별하고 이로 인해 결국 정신병을 얻어 한 많은 삶을 살았던 여인이다. 영화는 이러한 실화에 약간의 드라마를 보탰지만 전반적으로 그녀의 삶을 크게 왜곡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렸다.


일제강점기에 대한제국 황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해방 후 왕조 부활 움직임이 강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다. 비판의 중심에는 우유부단했던 영친왕이 있었고 덕혜옹주 역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소학교 시절 덕혜옹주(왼쪽)와 남편 소 다케유키와 함께 선 덕혜옹주


개봉 전 영화가 덕혜를 <암살>의 안옥윤(전지현)처럼 독립투사로 그리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기우였다. 대신 영화는 그녀가 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왕족이기 전에 불운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조명한다.


한 사람의 삶을 조금 더 극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에는 실제의 삶과 다른 부분이 있다. 그중 결정적인 것은 옹주가 조현병을 얻은 시기다. 실제 옹주는 모친인 귀인 양씨가 죽은 뒤인 18세 때부터 조현병 증세를 보이지만 영화는 ‘영화적 개연성’을 위해 이 시기를 해방 이후로 늦췄다.


또 옹주가 소위 ‘문명 여성교육’을 명목으로 내세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떠난 것은 14세 때이고 쓰시마의 백작 소 다케유키와 결혼한 것은 20세 때다. 영화에선 14세 시절을 김소현이 연기하고 이후를 손예진이 연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8세인 김소현 나이에 덕혜는 비운의 사건들을 겪었다.




2. 덕혜옹주가 영화화된 것은 처음인가?


온전히 덕혜옹주만의 삶을 영화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덕혜옹주의 오빠 영친왕의 전 약혼녀 민갑완의 이야기는 1963년 이종기 감독의 <백년한>으로 영화화된 적 있다. 도금봉이 민갑완 역을 맡았는데 그녀 역시 덕혜옹주만큼이나 비운의 인생을 살았다. 민갑완은 영친왕이 일제에 의해 마사코(이방자)와 결혼하면서 강제 파혼당하고 상하이로 쫓겨나 해방될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도 덕혜옹주가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본 사람이 드물어 확인할 길은 없다.


<백년한> 포스터


<백년한>이 개봉한 1963년은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 당위성을 선전하기 위해 영친왕과 덕혜옹주를 귀국시킨 이듬해다. 당시 서울신문 도쿄특파원이었던 김을한이 두 사람의 귀국을 10년 넘게 추진해 성사시켰다. 김을한은 옹주의 어린 시절 정혼남 김장한의 친형이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은 실제 김장한과 김을한을 합쳐 만든 캐릭터다.) 민갑완의 기구한 삶을 영화로 만든 것 역시 당시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영친왕(왼쪽)과 이방자 여사.


TV드라마로는 확실히 한 작품이 있다. 1989년 덕혜옹주가 별세한 후 1996년 MBC 8.15 광복 특집극으로 기획된 [덕혜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이다. 이혜숙이 덕혜옹주를 연기했고 당시 아역배우로 활약한 김민정이 어린 시절을 맡았다. 이때만 해도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를 아내 학대하는 악마로 묘사하는 등 반일감정이 고증보다 우선시됐다.


이후 덕혜옹주가 대중문화의 소재로 새롭게 조명받은 것은 2009년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부터다. 허진호 감독의 이번 영화도 이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것이다.


2013년엔 뮤지컬배우 문혜영이 직접 대본을 쓰고 덕혜옹주 역을 맡아 열연한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3. ‘멜로의 귀재’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은 살아 있나?


<덕혜옹주>는 여름 대작이기 전에 허진호 감독이 <위험한 관계> 이후 4년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허 감독의 특기는 로맨스다. 특히 사랑이 시작되기 전과 사랑이 끝난 후, 애끓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호평받아왔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 등은 허 감독이 한국영화계에 남긴 자산이다.


허진호 감독


아쉽게도 <덕혜옹주>에선 허 감독만의 장점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복잡한 감정들이 미묘하게 부딪히는 게 아니라 뚜렷하고 단순한 감정 위주로 흘러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옹주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사시미를 먹지 않는다는 것 같은 단순함!)


<로마의 휴일> <프린세스 브라이드> <프린세스 다이어리> 등 예쁜 공주가 등장하는 영화에는 으레 그녀의 마음을 잘 아는 발랄한 하녀와 공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기사가 등장한다. <덕혜옹주>도 이런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다. (<덕혜옹주>가 여성 원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영화라고 부르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또 옹주를 괴롭히는 악당을 친일파 한택수(윤제문) 한 사람이 도맡아 선악 구도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간단명료함이 주는 장점은 중심인물인 덕혜옹주의 굴곡진 인생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시간이 흘러 고국으로 돌아온 옹주는 덕수궁을 둘러보며 과거를 회상하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시대의 변화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딱 한 번, 영화 속에서 '허진호표 로맨스'가 폭발하는 장면이 있다. 옹주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김장한이 옹주와 함께 산속 오두막에 갇혔을 때다. 두 사람 사이에 달콤한 설렘의 감정이 오가고 허 감독은 '멜로 고수'답게 이 순간을 감성적으로 포착해낸다. 특히 두 사람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장면은 언젠가 허 감독이 다시 한 번 로맨스 영화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한다.



4. 손예진, 투자금 10억 회수할까?


총제작비 110억원이 들어간 대작 <덕혜옹주>의 손익분기점은 관객 350만명선이다. 손예진은 제작비가 예상을 초과하자 10억원을 사비로 투자했다. 손예진 소속사인 엠에스팀도 영화 제작사로 참여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영화는 8월에 광복절을 겨냥한 사극 대작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작년에는 <암살>, 재작년에는 <명량>이었고, 올해는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가 그 역할이다.


광복절 사극들의 특징은 볼거리가 풍부하고 가족단위 관객들에게 역사공부 할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교사들이 영화 해설사로 나서는 경우도 늘었다.


그런데 <덕혜옹주> 흥행에는 최대 장애물이 있다. 바로 덕혜옹주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 부족이다. <명량>의 이순신과 달리 역사 속에서 덕혜옹주는 그다지 관심을 끄는 인물이 아니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많지 않고 숨겨진 영웅도 아니며 그녀가 결혼한 이후의 행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까지 하다.



<덕혜옹주>가 흥행하려면 이 난관을 손예진의 스타성과 연기력으로 돌파해야 한다. 다행히 영화 속에서 손예진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노인 분장이 약하다는 지적은 나올 수 있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트집 잡을 부분이 거의 없다. 아마도 연말 각종 영화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들은 <비밀은 없다>와 <덕혜옹주> 중 어느 쪽의 손예진에게 여우주연상을 줘야할 지 고민할 것이다.


결국 영화 흥행은 손예진의 물오른 연기력이 덕혜옹주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결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PS)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화려한 캐스팅이다. 손예진의 뛰어난 연기가 비운의 옹주를 살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주위 인물들을 모두 유명 연기자로 캐스팅해 생동감이 떨어진다. 백윤식, 고수, 김대명 등 굳이 스타가 아니어도 될 배역까지 공을 들였다. 아마도 이게 다 <암살>의 특급 카메오 조승우 효과 때문 아닐까 싶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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