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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물건이다. 몇 년새 이처럼 뜨거운 논쟁을 벌인 한국영화가 또 있었을까. 일주일새 300만 관객을 훌쩍 넘기더니 칸 영화제에서도 호평받았다. 영화 <곡성>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를 더해보자. 이 글엔 스포일러가 있다.



1. 흥행 포인트는 열린 결말


<곡성>의 장점은 예상을 깬다는 것이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은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의 치밀한 스릴러였다. 하지만 <곡성>은 제법 코믹한 장면이 많고, 후반부에는 스릴러에서 오컬트 호러로 장르 변신을 시도한다. 또 뛰어난 만듦새를 가졌으면서도 불친절한 진행 때문에 명쾌한 답을 원하는 관객들이 극장을 나오면서 어리둥절해한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거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찾는다. 모처럼 영화 한 편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대화에서 소외될까봐 영화를 보게 만드는 이 토론의 힘이 아마도 <곡성>의 흥행 포인트 중 하나 아닐까 싶다.



논란의 마지막 장면을 복기해 보자.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일광(황정민)이 죽은 자를 찍어온 사진들을 쏟는다. 사실 이 장면은 그동안 직접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유지해왔던 영화의 톤을 갑자기 깨버려 사족처럼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을 마지막에 붙인 것은 일광이 일본인과 한패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물론 그동안 일광의 속옷이 일본식 훈도시라는 것을 통해 그가 일본인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광과 일본인이 한패여서 무명(천우희)을 몰아내기 위해 쇼를 벌여왔다고 믿기에는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이 많다. 우선, 일광이 처음부터 일본인이 아닌 무명을 악귀로 지목했어도 종구는 믿었을 것이다. 즉, 일광은 그 시점에서 분명히 무명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또 일광을 공격하는 까마귀떼는 사냥개를 이용해 종구를 공격하던 일본인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곡성을 떠나려던 일광은 까마귀떼에게 방해받은 뒤 돌아오며 종구에게 전화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을 잘못 날려부렀어. 고놈이 아니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설계한 이야기를 어느 한쪽으로 몰고가려는 시도는 이처럼 종종 난관에 부딪친다. 관객은 자기가 해석한 방식을 믿든지 아니면 의심해야 한다. 걸작은 꽉 짜인 영화일 때도 있지만 이처럼 종종 헐거운 부분을 관객에게 열어둘 때 탄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좋은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도전받게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했다.


나홍진 만큼 독특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그만의 세계를 구축한 그리스의 신성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나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분해하길 바라고 그들과 대화하길 원한다"고 했다. 아마도 모든 창작자들의 마음이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이 알아서 영화를 분해하고 텍스트를 재해석해주는 <곡성>을 만든 나홍진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감독일 것이다.



2. 종교적인 해석


이번에는 또다른 관점으로 <곡성>을 해석해보자. 영화 속에 팽배한 기독교적인 논리다. 이 관점은 필자의 주관적인 해석임을 밝힌다.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향해 무언가 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죽이려는 것인지 살리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의도’는 대개 과거의 행동을 통해 귀납적으로 추론하는 것인데 이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없으니 의도는 오리무중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는 범인을 미치게 만들어 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죽은 박춘배(길창규)를 향해 해가 진 뒤 의식을 행할 때는 그를 되살리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감독은 외지인의 정체에 대한 힌트를 영화 첫머리에 제시했다. 무려 신약성서의 누가복음 속 예수의 말을 인용해 “나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곡성판 예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수가 행한 영적 행위는 당시 의심을 받았다. 사람을 살리려는 것인지 죽이려는 것인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외지인이기 때문에 공포만 있었을 뿐 의도를 추리할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예수는 권력자에게 고통받다가 죽고 만다. 일본인도 그렇다. 종구가 데려온 힘깨나 쓰는 남자들에게 쫓기다가 결국 종구에 의해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그리고는 예수처럼 부활한다.



그의 정체를 확인하는 자가 무당이나 종구가 아닌 신부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부는 동굴속에서 예수를 발견할지 악마를 발견할지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그가 악마라는 확신을 품었다. 그래서 일본인은 악마로 변한다. “내 육신만 보고 확신해선 안돼”라고 말하면서. “내가 부활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고 했던 예수의 말을 살짝 비튼 것이다.


아마도 보편적인 한국인 관객 입장에서 일본인을 예수라고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 예수로 등장해도 논란은 되겠지만 하필 일본인이라니, 하는 심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아마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외지인을 일본인으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인이 가장 예수라고 믿지 않을 존재, 그래서 그가 선인지 악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 존재, 서울 사람도 아니고 중국 사람도 아닌 일본인이 제격이다.



3. 20세기폭스의 현지화 전략


<곡성>은 20세기폭스사의 로고와 팡파레로 시작한다. 한국영화로서는 낯선 경험이다. 국내 대기업이 아닌 폭스인터내셔널이 전액 투자, 제작, 배급했다. 그래서 분명 기존 한국 상업영화들과 다르다.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제작투자’, ‘투자책임’ 등 정확한 역할을 알 수 없지만 단지 대기업 대표, 상무라는 이유만으로 올라가던 이름들이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지 않고 깔끔하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이 기업에서 영화인으로 돌아온 셈이다.


폭스는 2013년 <런닝맨> 이래 <슬로우 비디오>(2014) <나의 절친 악당들>(2015)에 이어 <곡성>을 제작했다. 폭스가 한국영화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해외진출 현지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한국영화가 한국에서 할리우드 영화보다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니 할리우드 영화를 가공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한국인 입맛에 맞는 영화를 직접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만 진출한 것이 아니라 현지 영화가 강세인 인도, 일본, 대만, 스페인, 브라질 등에서 영화를 50편 가량 만들었는데 2010년엔 인도영화 <내 이름은 칸>을 전세계에 배급해 큰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폭스의 성과에 자극받은 워너브라더스도 최근 이런 방식으로 한국에 진출해 김지운 감독의 <밀정>을 제작 중이다.



폭스의 한국 진출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능력 있는 감독들을 지원한다. <곡성>의 나홍진은 폭스가 <황해>(2010)에 지분 20%를 투자하면서부터 지켜본 감독이다. <슬로우 비디오>의 김영탁 감독은 전작 <헬로우 고스트>가 <황해>와 맞붙어 오히려 <황해>의 흥행 스코어를 넘어설 때 폭스가 눈여겨본 감독이다. <런닝맨>의 조동오는 <중천>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감독이고, <나의 절친 악당들>의 임상수는 <돈의 맛>으로 칸 영화제에 진출한 적 있는 감독이다.


둘째, 감독의 역량을 믿고 간섭하지 않는다. 현지인들의 영화제작 방식과 관객 기호는 할리우드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크리에이터인 감독을 믿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 제작보고회에서 "20세기폭스에서 어떤 간섭도 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일을 믿어줬다"고 말했다. 물론 톱스타가 아닌 곽도원 캐스팅 과정에서 폭스의 반대가 있긴 했지만 결국 감독의 손을 들어줬고, 시나리오와 촬영 일정은 온전히 감독의 구상대로 갔다.


그 결과 <곡성>은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대박을 치면서 오랜만에 한국영화계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그동안 상업영화의 흥행공식이라면서 투자자의 입김을 강화하고 감독의 역할을 깍아내리며 천편일률적인 영화만 만들어온 국내 대기업들이 고심해볼 결과다.


>> 신들린듯 내달려 끝까진 간 영화 <곡성>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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