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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작비 170억원을 들인 올 겨울 한국영화 대작 <대호>를 어제 VIP 시사회에서 미리 봤습니다. 영화 보고나서 먼저 간단하게 이 영화의 포인트와 다음주 같은 날 개봉하는 <스타워즈>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짚어보려 합니다.


<대호>는 박훈정 감독의 원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러시아 탐험가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을 모티프로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은혜 갚은 호랑이] 같은 전래동화가 더 떠오릅니다. 그만큼 영화는 의외로 판타지성이 강합니다.



박훈정 감독은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신세계>를 연출한 바 있는 충무로의 대표 이야기꾼입니다. 그는 그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권력관계와 암투를 주로 소재로 삼아왔습니다. 그런데 <대호>에서 그의 선택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포수입니다.


의아합니다. 감독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택했는지를요. 지금까지의 선택과 너무 다르고 또 이런 이야기는 백발이 된 감독들이 만들법한 이야기거든요. 갱스터 영화의 대가 마틴 스코세이지가 나이 들어 <휴고>를 만들고 이안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만든 것처럼 말이죠.



어쨌든 박 감독은 <신세계>로 찬사를 받은 후 속편을 찍는 대신 지리산의 왕 호랑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지리산은 우리 역사에서 영험이 깃든 곳이니만큼 감독은 그곳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마지막 호랑이를 통해 조선의 자존심을 발견하고 싶었나봅니다.


2시간 2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대호>는 초반 1시간 동안 무척 지루합니다. 30분 정도는 과감하게 줄여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이야기는 단순하고 등장하는 캐릭터도 새롭지 않습니다. 특히 전체 이야기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칠구(김상호)는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을 자꾸만 대사로 설명해주려해 관객을 얕잡아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다만 천만덕(최민식)의 아들 석이를 연기한 성유빈의 연기가 맛깔나서 겨우 참아줄 수 있습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순박한 유머가 무거운 극의 흐름에 톡톡튀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지루한 초반 1시간을 성유빈 덕분에 참아줄 수 있었다면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호랑이의 시간입니다. ‘산군’이라 불리는 대호가 지리산을 집어삼킬 듯 쩌렁쩌렁한 소리로 포효하면 스크린에 바짝 날이 섭니다. 그러면서 극의 흐름 역시 탄력을 받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중반 이후 줄거리를 생략하고 말씀드리면 호랑이가 일본군과 대적할 땐 <놈놈놈>, <암살>처럼 조선의 마지막 독립군을 떠올리게 하는 통쾌함도 있고, 천만덕과 호랑이가 교감을 나눌 땐 <라이프 오브 파이>나 <하트 오브 더 씨>를 연상시키는 판타지도 있습니다.



<대호>의 엔딩은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수묵화에 흰색을 계속 덧칠하는 느낌이랄까요.


<명량>에 이어 <대호> 역시 최민식 원톱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민식을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보겠지요. 하지만 최민식의 연기는 최민식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는 이미 최고의 배우잖아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최민식 이상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대호>에서 그는 가끔 이순신처럼 보이고, <취화선>의 장승업처럼도 보이고,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도 보입니다.



오히려 <대호>의 주인공은 타이틀롤을 맡은 호랑이 그 자체입니다. 길이 3.8m, 무게 400kg의 체구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대단해서 최민식이 두드러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호랑이는 전부 CG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기술력이 대단합니다. 또 호랑이의 모션 캡처를 따기 위해 호랑이를 연기한 배우가 따로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대호>의 2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꽤 깁니다. 초반 지루합니다. 또 꽤 묵직해서 가벼운 것을 좋아하는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긴장감 넘치는 활극처럼 변하고 최고의 엔딩을 보여줍니다.


누가 볼까요? <대호>는 연말 가족 단위로 관람하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마지막 질문. 과연 <스타워즈>와 경쟁할 수 있을까요? 저라면 둘 다 보겠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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