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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가 돌아왔습니다.

1977년 첫 시리즈가 나온지 38년만이고 가장 최근 시리즈였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2005)로부터는 10년만입니다.


4,5,6 시리즈, 1,2,3 시리즈 이후 7번째 에피소드가 개봉하는 바람에 관객들은 최근작인 3편이 아닌 6편으로부터 이야기를 짜맞춰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국에서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 사상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1억2000만달러)를 기록하며 흥행 신기원을 이룰 태세입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불고 있는 복고 트렌드처럼 '응답하라 스타워즈'를 확인하려는 오래된 스타워즈 마니아들이 개봉 첫 주부터 극장에 몰린 때문이겠지요. 해리슨 포드, 캐리 피셔, 마크 해밀 등 왕년의 스타들의 나이든 모습과 C3PO, R2D2 등 추억의 로봇들이 등장해 저 역시 잠깐 향수에 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J. J. 에이브럼즈가 감독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인 레이와 핀의 매력이 약했습니다. "시리즈 최고의 부활"이라는 평도 있고 저처럼 실망한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박스오피스는 흥분하고 있으니 당분간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체 왜 <스타워즈>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는지 그 성공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스타워즈>는 30대 초반의 조지 루카스가 야심을 갖고 만든 SF영화입니다. 그는 20세기폭스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을 만들 때도 개런티를 포기하는 대신 부가판권과 프랜차이즈 제작 권리를 양도받을 정도로 이 시리즈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 영화의 성공을 발판 삼아 루카스필름을 세워 <스타워즈>를 시리즈로 만들게 되죠.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의 레아 공주와 루크 스카이워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이야 <스타워즈> 시리즈가 하나의 원형 같은 이야기로 추앙받고 있지만 사실 이 시리즈는 여기저기서 요소들을 가져와 편집해 만든 작품입니다. 조지 루카스가 순수히 창조한 <스타워즈>만의 오리지널은 거의 없습니다.


과거 같으면 짜깁기라고 문제제기를 했겠지만 요즘엔 이를 '편집력'이라고 하지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보니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콘텐츠의 매력이 달라집니다. 콘텐츠는 늘 새로워야 합니다. 진부함과 싸워야 합니다. 따라서 편집력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스타워즈>가 가져온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옛날 옛적에..." 문구는 설화에서 가져왔다.


<스타워즈> 이전 SF영화는 주로 하드 SF가 많았습니다. 과학기술을 모르면 이해하기 쉽지 않았죠. 하지만 루카스는 영화를 쉽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로 시작하는 설화에서 도입부를 가져왔습니다.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는 관객이 SF영화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넣은 자막입니다.


<플래쉬 고든>


2. 스크롤 자막은 <플래시 고든>에서 가져왔다.


사진은 <플래시 고든(Flash Gordon Conquers the Universe)>(1940)의 첫 장면입니다. <플래시 고든>은 고전 B급 SF영화의 대명사죠. 루카스는 A급이든 B급이든 가리지 않고 차용했습니다. 존 포드 감독의 <수색자>(1956), 헨리 헤서웨이 감독의 <네바다 스미스>(1966), 존 스터지스 감독의 <오케이 목장의 결투>(1957) 등의 서부영화에서도 행성 배경과 액션 장면들을 따왔습니다.



3. 포스는 도교에서 가져왔다.


루카스는 노자의 '기' 사상에서 영감받아 '포스'를 만들었습니다. 번역자가 '기'를 'Force'로 번역했고 루카스는 자연스럽게 이를 가져다 쓴 것입니다. 내면의 소용돌이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넘어서는 개념 등은 모두 동양철학에서 온 것입니다.


다스 베이더(왼쪽)와 나즈굴의 군주(오른쪽)


4. 다스 베이더는 <반지의 제왕>의 나즈굴에서 가져왔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포스를 두고 선과 악이 경쟁하고, 선한 주인공이 갑자기 악당으로 변하는 스토리가 매력적이죠. 이때 악의 세력인 '다스' 캐릭터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의 반지의 악령에서 착안해 만들었습니다. 다스 베이더는 나즈굴의 군주처럼 마스크를 쓰고 강력한 어둠의 힘을 갖고 있죠.


재미있는 것은 피터 잭슨이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앙그마르의 대마법사를 표현할 땐 다스 베이더를 참조했다는 것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호참조인 셈이네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의 C3PO와 R2D2


5. C3PO, R2D2는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서 가져왔다.


일본 영화는 서구에서 오래 전부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왔습니다. 루카스는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 심취해 있었고요. <스타워즈>는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 3편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1958), <요짐보>(1961), <츠바키 산주로>(1962)에서 많은 설정을 가져온 영화입니다.


특히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은 아예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이 거의 유사하고, 유키 공주는 레아 공주로, 다헤이와 마타키시의 코믹한 조합은 로봇 C3PO와 R2D2 콤비로 바뀌었습니다. <요짐보>에서는 술집 장면(칼날 한 번에 팔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장면)을 가져다 썼습니다.


<7인의 사무라이>


6. 제다이는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서 가져왔다.


1960년대말 루카스는 일본에 가서 데뷔작 [THX 1138]을 찍을 장소를 물색합니다. 이때 사무라이 영화를 일본에서 'Jidai Geki'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이름을 <스타워즈> 각본을 쓸 때 제다이(Jedi)로 바꾸어 썼습니다. 그런데 사실 'Jidai Geki'는 일본어로 '시대극'이라는 뜻입니다. 1960년대엔 에도막부 시대 요짐보, 자토이치, 제니가타 등 검객들을 소재로 한 사무라이 사극 액션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보니 루카스가 착각한 것이죠.


또 <우주전함 야마토>(1974), <우주대전(Uchu daisenso)>(1959) 역시 루카스가 참고한 일본영화입니다. 고전 괴수영화 <마법의 뱀(Kairyu daikessen)>(1966)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7. 제국의 세트는 제3제국에서 가져왔다.


이건 뭐 딱 보기에도 히틀러의 나치 제국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말이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스타워즈> 뿐만 아니라 <헝거 게임> 등 전체주의 국가를 표현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제3제국의 내려다보는 웅장한 세트와 하켄크로이츠를 닮은 깃발을 사용하고 있죠.



8. 스토리는 고대 원형신화에서 가져왔다.


인류학자 조셉 캠벨은 그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을 분석하며 영화의 스토리와 고대 신화의 유사성을 지적했습니다.


"고아 혹은 친척에 의해 힘들게 자란 소년에게 어느날 (수염난) 늙은 남자가 찾아와 계시를 내린다. 소년은 계시를 안고 여러 난관을 헤쳐나가 친구들을 만난다. 이들과 함께 악의 소굴로 쳐들어가 악의 군주와 맞서고 마침내 영웅이 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뿐만 아니라 인도 신화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등장합니다. 여기저기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뜻이겠죠. 루카스는 이를 우주에 적용했습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도 이런 이야기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도 주인공만 여성으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다 이런 원형신화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스타워즈>의 요소들은 결코 새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지 루카스는 그에게 영감을 준 것들을 묶어 하나로 편집해냈습니다.

그는 고대 신화의 서사를 기반으로 동서양 문화를 접목해 장대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위에 언급한 "어디서 가져왔다"고 하는 건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정작 알면서도 저렇게 편집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요.


수많은 SF영화가 시도됐고 또 만들어졌습니다만 <스타워즈>의 성공은 일종의 신화처럼 남아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신화가 탄생한 창작의 비밀은 '편집력'입니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엮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만드는 힘.

이것이 바로 <스타워즈> 시리즈의 성공 비결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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