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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장대한 스케일, 거장의 연출력, 맛깔나는 연기까지. 새해 첫 영화로 선택해도 실망하지 않을 두 편의 담대한 할리우드 영화가 연달아 개봉한다. 두 편 모두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의 겨울이 배경이다. 하나는 현상금 사냥꾼이 주인공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 사냥꾼이 주인공이다. 겉보기엔 닮았지만 영화가 지향하는 목적과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두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헤이트풀8>


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현상금 사냥꾼 마르퀴스(사뮤엘 L 잭슨)는 설원에서 마차를 얻어탄다. 마차 안엔 현상금 걸린 여자 죄수 데이지 도머구(제니퍼 제이슨 리)를 싣고 가는 또다른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커트 러셀)가 타고 있다. 눈보라가 심해지자 이들은 산장을 찾아가는데 그곳엔 의문의 남자들이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산장에서 각각 숨겨둔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가운데 8명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하룻밤을 보낸다.



<헤이트풀8>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8번째 영화다. <펄프 픽션>(1994), <킬 빌>(2003),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등 7편의 전작들을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시킨 그는 재기넘치는 스토리와 스타일리쉬한 연출력으로 영화광들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는 감독이다. 최근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2편만 더 만들고 연출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밝혀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헤이트풀8>은 지금까지 타란티노가 해왔던 여러 연출 방식들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저수지의 개들>(1992)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서스펜스가 주요 테마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이후 계속 시도하고 있는 연극적인 전개방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며,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처럼 인종 문제를 이야기한다.


<헤이트풀8>


애초 타란티노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속편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지만 주인공을 악인으로 만들면서 속편 아이디어를 버렸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저마다 다른 이유로 나쁜 놈들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타란티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에 더 가깝다. <저수지의 개들>의 기본적인 플롯 위에 <위대한 침묵>(1968), <데이 오브 더 아웃로>(1959), <보난자>(1959), <맥케이브와 밀러부인>(1971) 같은 서부영화들의 컨벤션을 배치했다.


또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단짝으로 수많은 서부영화들의 음악을 만든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를 공들여 영입해 그가 무려 40년만에 서부영화 음악을 작곡하도록 했다. 영화광 출신 감독으로서 ‘취향저격’ 놀이를 즐기는 타란티노의 스타일을 알고 있는 기존 팬들이라면 환호할테지만, 익숙하지 않다면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헤이트풀8>


<헤이트풀8>은 요즘 할리우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파나비전 와이드스크린 70mm 필름으로 찍은 영화다. 최근 70mm 필름으로 찍은 영화는 <파 앤드 어웨이>(1992), <마스터>(2012) 등 손에 꼽는다. 디지털 시대인 요즘 70mm 필름의 영사기를 갖춘 극장은 미국에도 극소수에 불과하고 한국엔 아예 없다. 타란티노는 70mm 필름 상영 버전에선 러닝타임을 6분 늘렸는데 한국에선 아쉽게도 이를 볼 방법이 없다.


그런데 타란티노는 왜 이 영화를 70mm 필름으로 찍었을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집이 아닌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 있다. 비록 한국에선 디지털로밖에 볼 수 없지만 2.76:1의 극단적 가로 화면은 TV가 아닌 대형 스크린에서 봐야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과거 <벤허>(1959) 같은 대작은 거대한 군중과 마차 경주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70mm 필름을 사용했지만 타란티노는 <벤허>와 달리 역발상으로 실내 공간에서 개별 인물의 표정을 담기 위해 70mm 필름을 썼다. 덕분에 가로 화면의 강렬함이 주는 쾌감은 시종일관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7일 개봉.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들을 데리고 미국 군인들과 함께 사냥하던 중 회색곰에게 습격 당해 사지가 찢겨 생사의 기로에 선다. 비정한 군인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아직 살아 있는 글래스를 땅에 파묻고 아들마저 죽이고 떠난다. 글래스는 복수심 하나로 무덤에서 일어나 피츠제럴드를 찾아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 4000km를 행군한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타란티노만큼이나 혜성처럼 등장한 감독이다. 타란티노가 두번째 영화 <펄프 픽션>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면 이냐리투는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2000)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냐리투의 세계는 묵직하다. <아모레스 페로스>에선 감당하기 힘든 운명을, <21 그램>(2003)에선 사랑과 복수의 무게를, <바벨>(2006)에선 문명과 언어의 장벽을 주제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옴니버스 영화처럼 실험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닌 이 초기작 세 편에선 서로 다른 사건들이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주제를 이루는데 영화가 끝나면 오랫동안 삶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그는 <비우티풀>(2010)에서 암에 걸린 마약 거래상이 아들에게 남기는 메시지를 통해 다시 한 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야기하더니 <버드맨>(2014)에선 작정하고 추락한 예술가의 자의식을 따라가며 실존 자체가 공포 아니냐고 물었다.


이 진중하고 사려깊은 거장의 영화들은 모두 뛰어난 완성도와 범접하기 힘든 독창적 비전으로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보통 예술 영화들이 흥행까지 성공하기는 쉽지 않지만 스타들이 앞다퉈 출연하면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바벨>과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버드맨>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거대 예산의 슈퍼히어로 영화 제안을 뿌리치고 고집스레 자신의 각본으로 자신만의 인장이 담긴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두 톱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는 맹추위 눈보라 속에서 인간 본성과 싸우며 처절한 연기를 펼치는데 이를 통해 감독은 인간이 짐승과 어떻게 다른지, 복수가 문명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온갖 죽을 고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 살아있게 하는 건 뭔지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인공조명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연광만으로 촬영한 화면이 감독의 비전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14일 개봉.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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