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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이태원 살인사건’의 용의자 아서 패터슨이 돌아왔다. 1998년 8월 한국땅을 떠난 이후 17년만이다. 그가 미국에서의 법적 절차를 거쳐 한국으로 송환된 배경에는 영화 한 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 정진영, 장근석 주연, 홍기선 감독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이태원의 버거킹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씨가 살해당한 사건을 재조명했다. 두 명의 미국인이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법정 공방 끝에 한 명은 무죄, 다른 한 명은 미국으로 출국해 결국 이 사건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사건으로 남았다. 영화는 검사를 주인공으로 당시 사건 수사과정을 픽션으로 재구성했다.


이태원 살인사건


영화는 살인사건 현장인 화장실을 경찰이 재빨리 치워버린 점, 한국 검사가 주한미군범죄수사대가 범인으로 지목한 용의자 대신 목격자라고 주장한 자를 용의자로 뒤바꾼 점 등 석연치 않은 의문을 지적했다. 외환위기가 한창인 때 재판이 이루어져 당시 정부가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용의자의 도주를 방관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영화에서 장근석은 마치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이 그랬던 것처럼 의뭉스런 표정을 짓다가 한국 법의 허점을 피해 홀연히 도망가버린 용의자를 연기한다.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검찰의 무능이 사건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으로 묘사했다. 정진영이 연기한 검사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단순한 심증만으로 용의자를 바꾸는데 이는 결국 두 사람 모두 풀려나게 만든 악수가 된다. '죄수의 딜레마'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통해 공범을 자백케하는 방법이라면 검사가 취한 태도는 죄를 서로에게 뒤집어 씌우면 모두 풀려날 수 있게 만는 이상한 수사였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적은 제작비로 만든 소규모 영화지만 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검찰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고, 여론에 떠밀린 검찰은 뒤늦게 2010년 1월 미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5년 만에 패터슨의 송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패터슨이 과연 진짜 범인이 맞는지, 또 당시 검사는 왜 용의자를 뒤바꿨는지는 향후 재판 과정을 더 지켜볼 일이다.


이태원 살인사건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만든 홍기선 감독은 사회파 영화의 대부같은 존재다. 영국에 켄 로치, 미국에 시드니 루멧이 있다면, 한국엔 홍기선이 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카메라를 들고 한국사회의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1988년엔 친구들과 함께 창작집단 장산곶매를 설립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세상에 알린 영화 <오! 꿈의 나라>를 제작했다. 당시 함께 장산곶매를 운영하던 친구들인 이은, 장윤현, 공수창, 이용배, 장동홍 등이 상업영화로 진출할 때도 그는 독립영화 진영에 꿋꿋이 남아 새우잡이 노예를 다룬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 45년간 감옥에 갇힌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의 실화 <선택>(2003) 등을 영화로 만들었다.


평생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어온 홍 감독은 <이태원 살인사건>을 만들 때도 당시 사건의 유족과 검사 등 관련자 40여명을 인터뷰해 극사실주의적인 방식으로 각본을 썼다. 영상미보다 이야기 전달 자체에 초점을 맞춰 영화의 완성도는 투박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결국 <이태원 살인사건>은 현실이 영화가 되고, 그 영화가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친 케이스로 남게 됐다. "좋은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도전받게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했던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말처럼 그의 영화들은 현실의 가장 최전선에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처럼 검찰 혹은 경찰의 재수사를 이끌어낸 사회참여 영화에 어떤 작품이 있을까?


도가니


영화가 사회를 고발한 대표 사례로 곧잘 언급되는 영화는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2011)다. 2000년부터 5년간 광주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추적한 이 영화는 2008년 공지영 작가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한 소설을 스크린에 옮겼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기사 한 줄에 울분을 느낀 공지영 작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사회고발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이 영화화되어 400만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함으로써 여론을 움직였다.


<도가니> 이후 경찰은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고, 전국 인화원들의 인권 침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와 광주지방청 전문수사관 등 15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리며 요란을 떨었지만 영화의 열기가 가라앉은 이후 재수사 결과는 다소 허무하게 마무리됐다. 교장은 이미 암으로 사망해 처벌할 수 없었고, 영화 속 '세탁기 폭행' 여교사의 실제 인물인 김모씨는 2013년 8월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당시 행정실장 김모씨만 성폭행 혐의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도가니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성과로 남았다. 이 법은 장애인 아동에 대한 성폭행 범죄의 처벌 수위를 높이고,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을 골자로 2011년 11월 영화 개봉 2달만에 긴급시행됐다.


변호인


천만 관객이 본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초 부산 최대 공안사건인 부림사건에 대해 무죄를 이끌어냈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개봉한지 9개월만인 2014년 9월 대법 항소심이 열렸는데, 영화 속에 묘사된 것처럼 1981년 노무현, 김광일 변호사의 무료 변론에도 유죄 판결을 받았던 5명은 이날 전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한지 15년만에, 사건이 벌어진 시점으로부터 무려 33년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7번방의 선물


또 하나의 천만 영화인 <7번방의 선물> 역시 모티프가 된 사건에 영화 개봉 이후 변화가 있었다. 1972년 만화가게 주인이던 38세 정원섭씨는 춘천역 앞 파출소장의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그는 감옥에서도 계속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투옥 중에도 가족에게 “나는 범인이 아니야. 내 말을 믿어줘”라며 호소했고 가족은 그를 믿었다.


그는 모범수로 15년만인 1987년 가석방됐고, 이후 1999년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재심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2001년 “진술 번복한 내용을 믿기 힘들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요청했고, 위원회는 고문 관련 진술, 살인 증거 조작 등을 밝혀내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 이후 정원섭씨는 다시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2011년 대법에서 무죄를 최종 선고받았다. 무려 39년만에 찾은 결백이었다.


그놈 목소리


1991년 압구정동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을 소재로 한 설경구, 김남주 주연, 박진표 감독의 <그놈 목소리>(2007)는 개봉 이후 강력범죄의 공소시효 기간 연장을 이끌어냈다. 300만명이 관람한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실제 범인의 몽타주와 목소리를 삽입하면서 관객의 공분을 유도했다. 비록 이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지만, 2007년 강력범죄의 공소시효 기간을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리는 법안의 국회 통과에 역할을 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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