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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는 왕이었다. 밤이 깊어 칼을 차고 그를 찾아갔다. 베려 했으나 벨 수 없었다. 애비를 베는 것은 나를 베는 것이었으므로.


<사도>를 보고 서정주 시인이 쓴 '자화상'의 첫 구절을 떠올렸다. 시는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지만 종을 왕으로 바꾸어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종이든 왕이든 세상의 굴레를 짊어지고 너무 멀리 있는 당신이니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은 칼을 부여잡고 서 있다. 한 사람은 칼집을 잡고, 한 사람은 칼끝을 잡는다. 영화 속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한 번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줄 수 없었느냐고. 하지만 부자의 정을 나누기에 두 사람은 짊어진 게 너무 많다. 칼집을 쥔 자와 칼끝을 쥔 자, 둘 중 한 명은 쓰러져야 한다.



"허공을 가르는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하냐"


영화 <사도>의 사도세자(유아인)는 과녁을 한참 빗겨나 하늘을 향해 쏜 화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 화살은 애초 과녁을 겨냥하지 않았으니 맞혀야 할 목표도 없고, 주어진 역할도 없다. 그저 이카루스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가다가 강렬한 태양열에 날개를 잃고 어딘가에 떨어질 뿐이다. 사도세자는 이를 '떳떳하다'고 표현한다.


하늘을 향해 날아간 화살은 사도세자가 살고 싶던 인생이다. 그러나 그는 과녁에 정확히 들어맞기를 요구받는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그 과녁은 뒤주만큼이나 좁고 답답하다. 벗어나고 싶지만 왕은 과녁을 꽁꽁 싸매 빠져나갈 수 없다. 과녁 안에 갇혀 있는 삶도, 뒤주에 갇힌 죽음도 사도세자에겐 떳떳하지 못하다.


사도세자가 떳떳해지고 싶은 이유는 그의 아버지 영조(송강호)가 떳떳하지 못한 방식으로 왕이 됐다는 의혹을 안고 살아온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조에겐 이복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래서 그는 툭하면 왕노릇 못하겠다고 선위 파동을 일으켰다. 영조와 달리 사도세자는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자신을 숨기고 싶지 않다. 왕이 되기 위해 억지로 진현을 하고, 글을 읽는 척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아버지의 인생처럼 떳떳하지 못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도세자는 대리청정을 하게된 후 과감한 개혁조치를 내놓는다.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참으로 떳떳하십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영조에게 의리를 지키라고 촉구한다. 이에 떳떳하지 못한 영조는 사도세자를 나무란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반대편에서 대립한다. 한 사람은 칼집을, 한 사람은 칼끝을 쥐고 있는데 떳떳함의 칼집을 쥐고 있는 자는 사도세자다.


<사도>에서 화살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라면, 사도세자와 정조를 이어주는 물품은 부채다. 사도세자가 태몽에 나타난 용을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든 부채는 그가 죽을 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조(소지섭)는 현경왕후가 된 혜경궁 앞에서 아버지가 남긴 부채를 손에 들고 춤을 추는데 이때 그의 얼굴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묻어 있다. 그는 왕이 됐지만 그 과정에서 부자관계를 짓밟는 권력의 무자비한 속성을 간파했고, 그래서 떳떳한 왕이 되어야 하는 아버지의 부채마저 짊어졌다.


영화 속에서 정조가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은 <왕의 남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공길이 춤 추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를 만든지 10년 만에 만든 사극 <사도>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왕과 광대가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부자지간이지만 상극이었고,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영조는 철저히 정치적으로 판단했다. 이는 그가 조선왕조를 반드시 지켜야할 체제로 설정했기에 가능했다. 영화 속에서 영조는 종묘사직을 둘러보며 아들에게 끝까지 살아남아 왕이 된 선조들의 이야기를 해준다. 이때 영조는 아들에게 살아남으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본 것은 컴플렉스로 가득찬 권력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끝내 아들을 제거한 영조는 비정하게도 개선가를 울리며 환궁한다. 영화는 문제를 일으키는 자를 감쪽같이 제거해 찾은 평화가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 묻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생황, 북, 징으로 만든 음악이 아련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정조가 부채춤을 추는 장면은 이렇게 살아남은 후세에게 정조가 된 세손이 바치는 살풀이굿이다.


왕이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은 국사에 전무후무하다. 그만큼 특이하다. 아마도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찾기 힘들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연출의도에서 이 이야기가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상징적이어서 끌렸다고 말했다. 그가 영화를 왕과 세자의 권력투쟁 이전에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해석한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역사학자들 역시 그동안 사도세자의 죽음, 즉 임오화변의 원인을 그의 광기 혹은 당쟁의 희생양에서 찾다가 최근엔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로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사도> 이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도세자는 어떻게 그려졌을까? 2부에서 한국영화와 드라마 속 사도세자를 살펴보자.


>> 사도 (2) 영화와 드라마 속 사도세자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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