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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3위로 출발한 영화 <인턴>이 차트를 역주행해 <사도>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170만 관객을 동원중인 <인턴>은 8일 개봉한 <마션>과 함께 한글날 연휴 흥행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턴>은 사실 아주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영화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60%에 불과할 정도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고, 미국 박스오피스에선 개봉 첫날 2위로 시작해 2주만에 겨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한국 관객들은 <인턴>에서 뭔가 새로운 점을 찾았고 이것이 입소문을 통한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콤한 로맨스도 아니고, 정통 코미디도 아닌 <인턴>의 최대 장점은 70세 남성 인턴과 30세 여성 CEO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뒤집은 반전 매력에 있다. 한국 관객들이 <인턴>에 빠진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봤다.



1. 뉴욕 배경의 따뜻한 감성영화


작년 가을 <비긴 어게인>이 있었다면 올해 가을엔 <인턴>이 있다. 두 편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한 따뜻한 감성영화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국 영화시장엔 규모가 작아도 모던하고 근사한 뉴욕 혹은 유럽 배경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층이 존재한다. 이들이 <어바웃 타임>, <언터처블: 1%의 우정>, <블랙스완> 등의 흥행을 이끌었다.




2. 든든한 키다리 할아버지 판타지


많은 사람들이 개인 비서를 갖고 싶어한다. 인공지능 로봇 회사들이 가장 큰 시장으로 보고 있는 분야도 개인 비서다. 인생 경험이 많으면서도 젠체하지 않고, 사려깊게 말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친구이면서 가족 같고, 매번 상황에 맞는 행동을 찾아서 하는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는 키다리 할아버지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여성에게 그는 울면 손수건을 건네주고, 침실로 불러도 수작부리지 않는 젠틀맨이기까지 하다.



3. 스타트업 & 워킹맘 공감대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딸을 키우다가 창업을 했다. 그가 만든 패션 쇼핑 사이트가 대박이 나면서 직원 200명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다. 회사가 너무 커져 이사회는 그에게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라는 충고를 한다. 미국 못지 않게 스타트업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줄스는 예비 창업자들의 워너비다. 또 그는 열정적으로 일하면서도 가정에 소홀하고 싶지 않은 워킹맘이기도 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줄스의 고민은 창업을 꿈꾸고, 일과 삶에 균형을 맞추고 싶어하는 20~40대 관객들의 고민과 통했다.



4. 꽃할배의 클래식한 매력


영화 <인턴>은 늙는 것이 공포가 아니라고 말한다. “뮤지션에겐 은퇴가 없어요. 더 이상 들려줄 음악이 없으면 사라질 뿐이죠. 제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벤이 입사 지원 자기소개 비디오에 남긴 말이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원래 벤 역할로 잭 니콜슨을 생각했지만 결국 로버트 드니로가 맡았다.


니콜슨과 드니로의 공통점은 모두 노년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배우들이라는 것. 드니로는 젊은 시절 터프가이 이미지를 완전히 걷어내고, 자상하고 섬세한 매력남으로 변신했다. 동료들의 연애코치, 스트레스 상담사, 위기 해결사, 보모 역할을 자처하며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노인들을 울린 문장은 “너의 젊음이 노력에 대한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 또한 나의 잘못에 대한 벌이 아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영화 <은교>의 대사였다. 하지만 <인턴>으로 노년층에겐 새로운 롤모델이 생긴 셈이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난무하는 요즘, 벤은 젊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시니어의 매력을 하나로 모은 슈퍼히어로가 됐다.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시니어들이여, 벤을 벤치마킹하라.



5. 세대간의 화합


30세 여성 CEO와 70세 남성 인턴은 반전 구도지만,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화 없이 조화롭게 지낸다. 세대간의 갈등이 극에 달한 한국에서 이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처럼 자연스럽게 나이차와 직급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 부사장까지 지냈으면서도 “내 나이가 몇인데?”라며 윽박지르지 않는 어른, “다시 돌아와주시겠어요?”라며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기 위해 인턴을 직접 찾아가는 CEO는 이 땅에서 멸종한 것만 같다. <미생>의 장그래가 사장과 친구가 되고, <은교>의 이적요가 은교와 성적 긴장감 없이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나?


한편으로 이는 문화적 차이기도 하다. 당장 백악관에서 스스럼없이 스킨십하는 오바마와 청와대에서 멀리 떨어진 채 집무를 보는 박근혜를 비교해봐도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인턴>의 두 사람의 소통 방식이 한국 관객에게 준 충격이 그만큼 더 클수밖에 없다.


결국 소통의 비결은 서로를 이해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출근 첫날 벤은 노트북을 켜놓은 채 종이신문을 펼쳐든다. 그러나 며칠 후 페이스북에 가입한다. 벤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동료는 벤의 40년된 가방이 빈티지하다며 칭찬한다. 갈등의 봉합은 이렇게 가벼운 칭찬과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영화 <인턴>은 보여주고 있다.


>> <인턴>의 로버트 드니로가 까칠한 CEO 사로잡은 비결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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