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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소설을 쓰는 남자를 만났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사물과 도시의 틈새를 파고드는 글을 쓰는 남자, 공장과 육체에 대한 에세이로 신선한 시각을 던져주는 남자, 인기 팟캐스트 '빨간책방'과 소설리뷰 사이트 '소설리스트'를 통해 좋은 소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남자, 2000년 데뷔할 땐 안경을 끼지 않았지만 어느새 검정색 뿔테 안경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남자. 한국에선 드물게 팬덤을 몰고다니는 소설가 김중혁이다.


그가 최근 새 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문학동네)을 냈다. '김중혁의 첫 연애소설집'이라는 소개문구 덕분인지 발간하자마자 3쇄를 찍으며 오랜만에 한국 소설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집엔 2012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요요'를 비롯해 8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책을 관통하는 정서는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다. 지금까지 사물과 도시에 대해 써온 김중혁으로서는 새로운 시도를 한 셈인데 김중혁답게 다른 연애소설들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그는 서울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책을 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던 날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관계가 중심인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연애소설집이라는 소개가 붙었지만 연애에 방점을 찍은 건 아니에요.”


그는 집필의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대로 이 책엔 연애 과정보다 연애가 시작되기 전 혹은 연애가 끝난 후의 이야기가 많다. 연애소설의 달달함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저를 아는 독자들은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SF를 쓴다고 해도 (장르 공식대로 쓰지 않고) 유사한 것을 쓴다는 것을 알테니까요. 연애소설이 꼭 연애 과정일 필요는 없잖아요?”


또 이 책엔 김중혁만의 반짝이는 취향이 덜하다. 물론 4년의 하루를 보여주는 어플 같은 당장 창업해도 될만한 아이디어가 있긴 하지만 기존 작품들에 비하면 도드라지지 않는다. 또 김중혁의 트레이드마크인 음악적 취향으로 표현하는 캐릭터도 없다.


“화자인 제가 드러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 속 사람들을 그린 이야기니까요. 제 취향보다는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이나 어투를 표현하는데 주력해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그렇게 덜어낸 자리는 '사람'으로 채웠다. 대화가 많고 부딪치거나 서걱거리는 감정들이 많다. 김중혁 소설 중엔 드물게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 김중혁 특유의 경쾌함은 여전하다.



표제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알콜중독자인 남자가 옛 여자친구를 만나 나누는 대화를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다. 소설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대." 누군가 무심코 한 행동이 작은 기적을 만들 수도 있다는 이 말은 울림이 크다. 하지만 소설은 이 문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떤 메시지를 향해 가지 않는 것처럼 그의 소설 역시 주인공의 인생 중 어떤 부분만을 다룰 뿐이다. 그 속에 스며든 찰나의 메시지가 울림을 준다면 그건 우리 인생에서 뽑아낸 것이다.



김중혁은 “단편소설은 사건을 겪는 인간을 그린 이야기”라고 한 적 있다. 그렇다면 그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해 쓸까?


“저는 단편을 쓸 땐 제가 궁금한 것에 대해 씁니다. 소설가 김중혁이 독자 김중혁에게 들려주는 느낌으로 쓰는 거죠. 난 이게 궁금한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형식으로 씁니다.”


예전의 그는 (하루 한 장만 쓴다는 의미의) '일매' 김중혁이라고 할 정도로 느리게 쓰는 작가였지만 최근엔 (노트북만) '열면' 김중혁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글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 매년 한 권의 소설책을 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책을 쓰면서는 힘든 일이 많았다.


“외부에서 큰 일이 생길 때 작업에 영향을 받습니다. 저는 전업작가를 선언한 뒤엔 늘 지치지 않기 위해 휴식과 일의 밸런스를 맞춰왔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그게 깨졌어요.”


많은 작가들이 그랬겠지만 세월호 참사는 글쓰기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그에게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져 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제겐 소설만을 쓰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비사교적인 자아가 있습니다.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수많은 자아들이 둘러 싸서 보호해줍니다. 제가 팟캐스트 DJ를 하고 에세이를 기획해 쓰는 것도 소설 쓰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가끔 (꼭꼭 숨겨뒀던) 소설 쓰는 자아가 공격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괴롭습니다.”



팟캐스트를 통해 그를 접해온 이들은 그의 유쾌한 목소리를 기억한다. 또 그가 여기저기에 기고하는 에세이에 열광하는 독자도 많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이 모든 것들은 그가 가장 사랑한다는 소설 쓰기를 위한 행동이다. 사교적인 활동을 통해 소설 쓰는 자아를 부양하는 것이다.


소설을 쓸 때 그는 가장 예민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그의 소설 쓰는 자아는 요즘도 공격받고 있다. 작년 세월호 참사 만큼은 아니겠지만 표절 논란으로 촉발된 한국 문단의 위기 때문이다.


“창작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을 텐데 (사람들은) 다 빼고 '표절이라고 생각하느냐/아니냐'만 묻습니다. (표절에 대해) 너는 어느 편이냐고 밝히라는 지금의 시스템이 불편합니다.”


한국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서 자극적인 이분법만 쏟아내는 언론의 행태를 꼬집은 그는 직접 '소설리스트'라는 소설리뷰 사이트를 운영하며 좋은 소설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그는 위기 속에도 한국 문학의 새싹은 계속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작가들은 지금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누가 알아주나요? 그런 것들을 알리는 일을 계속 하려 합니다.”


그는 차기작으로 우주비행사가 등장하는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우주비행사가 등장한다고 해서 SF 소설은 아니다. 늘 그랬듯이 그는 그만의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그가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소설이 뭔지 물었다.


“지금 하는 것처럼 틈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일들을 쓰고 싶습니다. 이런 작업을 계속 하다보면 어떤 경지에 올라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감동과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일경제에도 실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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