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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의 비중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편인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선 제레미 레너의 비중이 꽤 늘어나기도 했었죠.


다섯 번째 시리즈인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선 제레미 대신 여주인공이 빛납니다. 일사 파우스트라는 이름을 지닌 영국 요원으로 출연하는 그녀의 이름은 레베카 퍼거슨.


그녀는 지금까지의 '미션걸'들과는 달리 능동적인 캐릭터입니다. 레인 조직에 침투한 이중 스파이로 이단 헌트와 협력하기도 하고 그를 배신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올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와 함께 가장 강력한 여성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1편의 엠마누엘 베아르, 2편의 탠디 뉴튼, 3편의 미셸 모나한, 4편의 폴라 패튼과 레아 세이두 등 지금까지 미션 임파서블의 여주인공들은 '미션걸'이라 불리며 비주얼을 담당했습니다. 몸매만 부각되는 007 시리즈의 본드걸들과는 달리 액션을 선보였지만 그렇다고 톰 크루즈나 제레미 레너에 맞먹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진 못했죠. 그저 눈길을 사로잡는 '씬 스틸러'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하지만 레베카 퍼거슨은 다릅니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서 그녀가 연기한 일사의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한 솔로가 빠질 수 없는 것처럼 그녀 없는 이 영화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IMF와 독립적으로,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IMF를 괴롭히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영국 정보국에게 배신당하고 이단 헌트처럼 더이상 갈 곳이 없는 무국적자 처지에 몰리자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토바이 추격장면에서 다른 시리즈였다면 이단이 여자를 뒤에 태워 조연에 머물렀겠지만 여기선 일사 홀로 추격씬을 이끌며 단독질주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선 사건이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갈 곳이 없어져 떠돌이 신세가 되어야 하는 비운의 여주인공이기도 하죠.


한 마디로 일사 캐릭터는 단지 멋진 여성으로써만 아니라 이단 헌트와 동일선상의 요원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과 일사가 서로에게 느낀 감정은 사랑과 동료애가 뒤섞인 복잡한 것입니다.



영화는 오페라 [투란도트]와 고전영화 <카사블랑카>를 일사 캐릭터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되는 비엔나의 극장에서 일사는 투란도트 공주처럼 보이고, 모로코에선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처럼도 보입니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레지스탕스의 아내로 카페 주인 릭의 옛사랑이었던 잉그리드 버그만 역시 극중 이름이 '일사'였는데 아마 이 작명 센스는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영화 곳곳 이단과 일사의 투샷이 잡히는 장면에서 오페라 [투란도트]의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못 이루고'가 랄로 쉬프린의 주제곡과 함께 편곡돼 들리는 것도 이 영화 속 이단과 일사의 관계를 더 로맨틱하게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오페라 극장을 탈출하는 장면에서 일사는 투란도트 공주처럼, 이단은 공주가 짝사랑하던 칼라프 왕자처럼 보입니다.


고전 영화와 오페라를 인용한 덕분에 영화는 별다른 장치 없이도 이단에 대한 일사의 마음을 관객에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화이트 퀸


레베카 퍼거슨은 1983년생 스웨덴 출신 여배우로 이미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2007년에 남자친구와 아들을 낳아 엄마가 되기도 했습니다. 발레, 탭 댄스, 재즈, 탱고 등 다양한 댄스를 배운 경력 덕분에 액션 연기를 위한 훈련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13세 때부터 모델과 연기를 시작했지만 오랜 무명 시절 끝에 2013년 StarZ의 미니시리즈 <화이트 퀸>의 주연이 됐고, 엘리자베스 여왕 연기로 골든글로브 TV영화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습니다. 스웨덴 출신 여배우로는 1999년 앤 마그렛 이후 15년만인데요. 앞서 언급한 잉그리드 버그만 역시 스웨덴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잉그리드 버그만, 아니타 에크버그, 레나 올린, 앤 마그렛 등 스웨덴 출신 할리우드 스타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퍼거슨이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것은 2014년 <허큘리스>가 처음입니다. 그 전엔 스웨덴 영화 <쉬: 그녀의 비밀>(2013) 등에 출연했지만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죠.


화이트 퀸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서 퍼거슨은 강인한 여전사의 모습과 정체가 들통날까 두려워하는 여린 여자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때론 베테랑 형사처럼 보이다가 때론 함께 도망갈 남자를 기다리는 잉그리드 버그만처럼도 보입니다.


영화에서 일사는 런던에서 만난 이단에게 세 가지 제안을 합니다. CIA에 투항하는 것, 레인에 맞서 싸우는 것, 마지막으로 함께 떠나는 것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제안은 73년전 영화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레베카의 옆모습은 잉그리드 버그만과 참 닮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일사가 이단에게 "어디로 찾아오면 되는지 알죠?"라고 묻는 것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어쩌면 모로코의 릭의 카페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PS)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은 감히 시리즈 최고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이슨 본을 연상시키는 버림받은 이단 헌트의 오토바이 액션 시퀀스는 지금까지의 어떤 오토바이 추격전보다 속도감이 느껴지고, 투란도트 백스테이지 액션은 좁은 공간을 더 비좁게 보이게 만들어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PS) <킹스맨>이 다양한 고전 첩보물을 변주해 재미를 준 것처럼,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역시 히치코크 영화 같은 고전 첩보물을 연상시키게 하면서도 그 변주가 밖에 드러나지 않도록 깔끔하게 매듭지었습니다. 감독이 <잭 리처>를 만든 크리스토퍼 맥쿼리인데 그는 <유주얼 서스펙트>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죠. 6살 형인 톰 크루즈와 <잭 리처>에 이어 또 만났는데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으로 그의 연출력에 대한 우려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PS) 레베카 퍼거슨은 캐서린 제타-존스와도 닮았습니다.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옆모습이 더 비슷하게 보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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