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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것을 보려면

아무것도 예상하지 말라




See the Unseen이라는 한 통신사의 광고가 있었습니다.


"못 보던 세상 이제 시작이야

뭔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보여주지 못했던..."


이렇게 시작하는 노랫말이 경쾌한 광고였죠.

오래된 광고이긴 하지만 이 광고의 메인포스터를 자세히 보세요.

광고 안엔 보라색 바다를 배경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들어있습니다.


기타를 연주하는 푸른 말,

고양이 머리를 한 매,

구름보다 더 큰 사람,

휴대폰 머리를 한 사람,

사슴뿔을 펄럭이는 두 사람,

다리가 달린 카세트,

비둘기의 날개를 달고 나는 여자,

나비의 푸른 날개를 단 여자...


한 번 찾아보세요.

보이나요?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입니다.

유심히 보아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죠.

이 광고에 등장하는 것들은 기존에 볼 수 없던 것들이기 때문에 하나씩 뜯어보면 잘 볼 수 있습니다.

확대해서 보면 잘 보일 것입니다.


이 광고의 메시지는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못 보던 것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못 보던 것은 못 보던 것이기 때문에 계속 못 보게될 확률이 높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인간의 눈이 그렇습니다.

인간의 눈과 뇌는 익숙한 것은 무시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익숙함 속 새로운 것은 잘 인지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새로운 것은 전혀 없던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과정 속에 나옵니다.

익숙한 것 속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인간은 그 변화를 잘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익숙한 것들 사이에 새로운 것이 갑자기 등장한다면 사람들은 의외로 그 새로움을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것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글러스 애덤스가 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크리켓 경기가 열리던 중 외계 우주선이 착륙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기에 집중하느라 아무도 외계 우주선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코믹하게 인간의 인식 한계를 비꼰 장면이지만 사실 이 장면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글러스 애덤스는 이 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없거나, 보지 않거나, 혹은 우리가 보도록 뇌가 허용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

우리 뇌가 그 대상을 그냥 삭제해 버린다.

이는 마치 사각지대와 같다."


눈의 망막이 본 정보는 뇌로 이동하는 도중에 압축됩니다.

시신경이 정보를 10분의 1로 줄이고, 선조체에서 기저핵으로 가는 도중 300분의 1로 줄어듭니다.

기저핵은 눈이 무엇을 보았는지 발견하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부위입니다.

망막에 표시된 내용 중 3000분의 1만이 여기까지 다다릅니다.

우리의 뇌는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과 바뀌지 않는 내용을 버립니다.

이 정보처리 과정은 강력해서 뇌가 더하는 내용은 실제가 아닌데도 실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뇌가 빼버린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운전 중에 전화 통화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죠?

그 위험한 이유가 바로 우리 뇌의 정보 수용 능력과 관련 있습니다.


운전 중 전화 통화를 하면 뇌로 들어가는 감각 정보량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이때 우리의 눈은 같은 대상을 같은 시간 동안 바라보지만 우리의 뇌는 정보의 대부분을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삭제합니다.

그 정보는 운전에 중요한 내용일 수 있지만 뇌는 전화 통화를 더 중요하게 인식해 그 정보는 예비로 처리하죠.


이러한 현상을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합니다.


전화 통화로 나누는 대화는 '나'의 문제지만 예기지 못하게 앞에서 길을 건너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뇌는 우리가 그 아이를 보게 해주지 않습니다.

내 의지대로 안보는 게 아니에요. 인간의 눈과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어 못 보는 겁니다.


'무주의 맹시'는 라디오를 들을 때나 차 안의 동승자와 대화할 때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아도 되고, 동승자는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제공=고양시)



운전 중 통화 외에 '무주의 맹시'가 발생하는 다른 사례를 볼까요?


한 연구에선 보행자들이 다니는 길에 외발자전거를 탄 삐에로가 길을 가로지르게 했습니다.

길거리에 등장한 삐에로라니 누구도 못 보기 힘든 장면일 겁니다.


그런데 걸으면서 전화 통화를 하던 사람 4명 중 3명은 대부분 이 광대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거기 광대가 있었다고 말해주면 깜짝 놀라며 뒤돌아 봤습니다.


다른 예를 봅시다.



오른쪽 위의 고릴라가 보이나요?



하버드 의대의 두 연구원들은 이런 장난을 쳤습니다.

폐를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 여러장 중 몇 장의 오른쪽 상단에 고릴라를 합성한 사진을 끼워넣은 것이죠.

크기도 제법 커서 폐에 있었다면 성냥갑만한 크기의 고릴라입니다.

하지만 이 엑스레이 사진을 방사선 전문의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들 대부분 이 고릴라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방사선 전문의들은 판독 전문가입니다.

수년 간의 경험으로 그들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어디를 봐야 할 지를 압니다.

그들은 흉부 엑스레이를 0.2초만 보고도 병을 진단합니다.

0.2초는 수의안구운동이 1회 일어날 때 걸리는 시간이죠.

하지만 평범한 우리가 엑스레이 사진을 본다면 특이사항을 찾기 위해 전체를 살펴볼 것입니다.

초보 방사선 전문의들도 처음엔 이렇게 합니다.

하지만 점점 노련해지면서 그들은 눈을 적게 움직이게 되고 결국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몇 초간 몇 군데만 힐끗 보는 것으로 진단합니다.


이를 '선택적 주의'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예의 끔찍한 버전은 수술 중에 일어나는 사고입니다.

수술을 하고 깨어났더니 뱃속에 가위가 들어있더라 같은 뉴스를 가끔 접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뱃속에 가위가 있는 것도 모르고 봉합을 했을까요?

의사가 제정신이 맞다면 이런 사고 역시 '무주의 맹시'와 '선택적 주의' 때문입니다.

필요한 곳만 보는 것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상황 판단이 끝났으니 다른 곳에 뭐가 있든 그들의 눈엔 보이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의학지식이 없는 아마추어였다면 분명히 엑스레이의 고릴라와 뱃속의 가위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인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전문지식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명백하게 보는 것들을

왜 전문가들은 보지 못할까요?



올더스 헉슬리



'전문가'와 '경험'은 같은 어원의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즉, 전문가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 출간한 저서 [텍스트와 프리텍스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경험이란 감성과 직관력을 발휘하는 행위, 중요한 대상을 보고 듣는 행위, 적절한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 이해하고 조화하는 행위다."


어떤 분야에서든 우리는 더 많이 경험할수록 더 적게 생각하게 됩니다.

전문지식이라는 단어는 '효율성'의 다른 말입니다.

전문가는 가망 없는 해결책을 빨리 버리고 해결 가능한 소수의 문제만 파고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우리를 기만할 수 있습니다.



로빈 워런(왼쪽)과 배리 마셜


병리학자인 로빈 워런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발견한 공로로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1979년 이것을 처음 발견했고 1984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하지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발견한 것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동료들 뿐만 아니라 그의 선임 연구자들, 심지어 104년 전인 1875년의 의사들도 현미경으로 크루아상처럼 꼬여 있는 이 박테리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박테리아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위에는 박테리아가 살 수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 이런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위에는 박테리아가 살 수 없다고 했으니 당연히 그건 박테리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떤 대학원생은 위에서 박테리아를 발견해 지도교수에게 가져갔으나 그 교수는 기본도 안 되어 있다며 그 리포트를 찢어버립니다.


그런 와중에 로빈 워런만은 자신이 본 것을 믿었습니다.

그때까지 진리처럼 통하던 명제를 의심했습니다.

다행히 그와 뜻을 같이 한 신입 위장병학자 배리 마셜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공동 연구 끝에 1984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합니다.


논문 게재 과정 자체도 드라마틱합니다.

학술지 [랜싯] 편집장 이안 먼로는 두 사람의 연구에 동의하는 검토위원을 한 명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먼로는 검토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의 가설이 확실하다고 밝혀진다면 이 연구는 매우 중대한 의의를 지닐 것이다"라는 주석을 첨부해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후 역사는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라는 새로운 박테리아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박테리아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뀐 것입니다.


워런은 2005년 노벨상을 수상하며 셜록 홈즈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합니다.


"명백한 사실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more deceptive than an obvious fact.)"

- 코난 도일 저 [보스콤 계곡의 비밀] 중 셜록 홈즈의 말





이제 이 글의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익숙한 것을 던져버리세요.

그래야 새로움이 보입니다.


전문가가 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전문가가 된 뒤에는 초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못 보고 지나친 것을 다시 돌아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창의력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스즈키 순류 선사가 [선심초심]에서 당부한 글로 마치겠습니다.


"예술의 진정한 비결은 언제나 초심자가 되는 것이다."



(참고: 케빈 애쉬튼 저 [창조의 탄생] 155~174쪽, SK브로드밴드 광고, 스즈키 순류 저 [선심초심])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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