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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단순한 메시지를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히 꽂아넣는 영화다. 세상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영화도 많고, 하려는 이야기에 비해 스타일이 지나치게 거룩한 영화도 많은데 <손님>은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가고자 하는 길을 간다. 그래서 다소 밋밋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지언정 영화를 보는 2시간을 공허하게 낭비했다고 투덜거리기는 힘든 영화다. 독일 설화를 한국의 산골마을에 접목한 신인감독 김광태의 돌직구는 꽤 위력적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재해석


영화는 독일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한국의 ‘손 없는 날’ 설화를 한국전쟁이 막 끝난 강원도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합쳤다. 사실 영화의 제목인 ‘손님'은 어원에서부터 두려움이 묻어 있는 단어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을 뜻하는 ‘손'에 존칭어인 ‘님'자를 붙였는데 과거엔 천연두 귀신을 손님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이질적인 것은 곧 공포의 대상이었다. 영화에선 산골마을에 찾아온 피리 부는 남자인 우룡(류승룡)과 그 마을에 애초 살고 있던 한센병 환자들이 귀신이 되어 찾아온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쓰였다.


영화가 시작하면 관객은 우룡과 그의 아들을 따라 지도에도 없는 산골마을로 들어간다. 작은 마을엔 촌장(이성민)을 중심으로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은 주민들이 살고 있다. 우룡은 마을 주민들이 쥐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쥐를 내쫓아주고 아들의 수술비를 받기로 하지만 정작 쥐가 사라진 뒤 마을 주민들은 약속을 깨고 그를 빨갱이로 몰아 죽이려 한다. 결국 쥐보다는 마을 주민들의 집단이기주의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영화는 복수와 전복의 서사에 부성애라는 기존 영화의 흥행 코드를 녹였다. 원작은 신비스런 잔혹 동화지만 이를 산골마을에 대입하니 <전설의 고향>을 연상시키는 호러 판타지로 재탄생했다. 비밀을 간직한 산골마을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진다는 점에서 영화 <이끼>와 비슷하지만 <이끼>가 스릴러로 관객의 심장을 조였다면 <손님>은 오컬트적인 호러로 관객을 놀래킨다는 점이 다르다. 다만 영화는 한 가지 장르에 기대지 않다보니 드라마나 공포 등 어느 한 장르의 강렬한 맛을 기대한 관객에겐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대신 영화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산골마을 주민들은 다양한 지방의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이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고, 이방인을 집단 따돌리는 모습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배신자라는 누명을 씌워 토사구팽해버리는 촌장의 모습은 현재 한국사회 권력자들의 민낯과 겹친다. 또 영화엔 "살아남기 위해 죄를 지은 것은 무죄"라는 촌장의 대사가 반복해 등장하는데 그 뒤로 일제 군복과 일본검, 통금을 알리는 종소리 등이 등장해 한국 근현대사를 은유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혼자 죄를 지었다면 그 사람이 벌을 받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죄를 지었다면 그 죄를 고발한 사람을 벌주는 집단주의의 광기를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전복시키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영화의 모티프가 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1284년 6월 24일 하멜른의 어린이들 130명이 한꺼번에 사라진 실제 사건에 후대 사람들이 살을 붙여 만든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일본의 역사학자인 아베 긴야가 독일의 고문서를 조사해 펴낸 책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는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후대 사가들은 130명이 갑자기 실종된 사건에 대해 어린이 십자군설, 전쟁 동원설, 동독 식민지 이주설, 전염병 창궐설, 단순 사고설, 원시 기독교 희생 제물설 등 다양한 추측에 기반한 연구를 내놓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추측은 과부와 미혼모의 자녀가 대부분인 130명의 아이들이 아사했는데 6월 24일이 '바울과 요한의 날'이라는 대축일이어서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날을 사망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아베 긴야에 따르면 이때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하멜른시가 모든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으로 유랑악사를 만들었다.


따라서 처음에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약속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약속이란 신분, 계급, 공납 등을 뜻했다. 세상엔 악마가 판을 치니 약속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화재와 페스트로 절망적인 상황을 겪은 후대 하층민들은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피리 부는 사나이에 쥐 사냥꾼 설화를 합쳐 분노를 표출하는 이야기로 바꾸었다. 분노의 대상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도시의 권력자들이었다. 그림형제와 로버트 브라우닝이 쓴 동화와 시는 모두 이런 전복적인 서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영화 <손님>은 이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하층민의 분노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미치광이 삐에로가 된 류승룡


<손님>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영화였다. 류승룡은 <명량> 이후 주로 배달앱 광고에서 코믹한 이미지로 소비되어 왔지만 사실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다. <손님>에선 초반부에 <7번방의 선물>의 어수룩한 아빠 이미지를 재현했다가 후반부엔 마치 <최종병기 활>의 전사처럼 광기 어린 얼굴로 돌변한다. 순박한 삐에로이면서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이 남자가 억울한 일을 당해 저항하고 분노할 때 관객이 얼마나 감정이입할지가 영화의 승부처인데 류승룡은 <미치광이 삐에로>의 페르디낭처럼 간결하면서도 무심하게 복수극을 펼친다.


<손님>을 보면 천만 관객 영화를 세 편이나 필모그래피에 올려 놓은 류승룡이 단지 촉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영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어수룩해 보이다가 어느 순간 한 방에 전세를 뒤집을 때 빛난다. '손님'은 류승룡의 그런 장기를 잘 살린 영화다. 류승룡 뿐만 아니라 촌장 역할을 맡은 이성민의 매서운 눈빛과 남모를 사연을 간직한 선무당 천우희, 그리고 피를 뒤집어쓴 무당으로 손님이 찾아올 거라고 외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영선의 연기도 빛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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