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영화가 꿈을 파는 예술이라면 영화음악은 꿈을 오랫동안 꾸게 하는 예술이다. 우리는 영화음악을 들으며 곧잘 그 영화를 떠올린다. 그런데 영화음악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 오리지널 스코어는 엇비슷하고, 영화에 삽입되는 노래는 드물고, OST 음반은 잘 팔리지 않는다. 음원 판매량에서도 영화음악은 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다.


한때 영화음악 붐이 일던 시절이 있었다. <접속>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클래식> <올드보이> 같은 영화들의 음악은 그 자체로 또하나의 작품이었다. <접속>에 선곡된 노래들은 당시 국내 팝 차트를 휩쓸었고 '올드보이' 음반은 아직도 외국 마니아들의 필수 수집목록에 올라 있다.


이 영화들의 음악을 만들었고 지금도 꾸준히 한국영화의 음악을 제작하고 있는 조영욱 음악감독을 최근 서울 충무로의 한 극장에서 만났다.



- 영화음악 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영화 속 음악과 관련한 모든 일을 한다. 작곡, 선곡, 녹음, 믹싱은 물론 음악을 어디서 시작해 어디에서 뺄까를 결정한다. 사실 음악감독이라는 단어는 한국에만 있다. 할리우드는 조금 더 세분화되어 있다. 한국에선 음악감독에게 전부 일임하는데 보통 한 영화당 2~4명의 팀을 꾸려 작업한다."


- 박찬욱, 강우석, 유하, 류승완, 윤종빈 등 색깔이 뚜렷한 감독들과 많이 작업했다.

"그런 면에선 운이 좋다. 박찬욱 감독과는 동갑내기고 25년지기다. 음악적 취향이 맞고 뜻이 잘 통한다. <친절한 금자씨>는 내가 직접 제작자로 나서기도 했다. 내게 한 번 음악을 맡긴 감독들이 다시 찾아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 감독들마다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 것 같다.

"요즘은 대부분의 감독들이 나에게 일임한다. 맡겨주는 스타일이 편하다. 류승완 감독은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하고, 박찬욱 감독은 시나리오 던져주면서 "내 생각은 이래" 한 마디 할 뿐이다. 강우석 감독도 "알아서 해와" 이런 식이다. 어떤 감독은 자기가 선곡을 해놓고 일일이 보여주는데 그러면 내 상상력이 제한돼서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



- 영화음악 제작방식이 궁금하다.

"우선 시나리오를 한 번 읽고 컨셉트를 잡는다. 스타일, 템포, 악기 구성을 정해놓는다. 팀원들과 대략적을 곡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작업은 편집이 완성된 후에 시작된다. 편집본을 보면 이전에 했던 작업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화면을 보면서 음악을 맞춰보고 어떤 음악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곡을 만든다. 예전엔 선곡을 많이 했지만 요즘엔 대부분 작곡을 한다."


- 요즘 한국영화에선 선곡을 많이 하지 않는 추세다. 영화가 히트해도 주제가가 없다. 왜인가?

"저작권료가 올라서 그렇다. 영화에 노래 한 곡을 집어넣으려면 꽤 많은 돈이 든다. 요즘엔 한국영화가 전세계로 판권이 팔리지 않나. 그래서 월드와이드 저작권을 사와야 하는데 저작권료 4만 달러, 저작인접권료 4만 달러, 도합 8만 달러(약 9천만 원) 정도가 든다. 유명 아티스트건 무명 아티스트건 금액에 큰 차이는 없다. 제작사에겐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 영화 한 편당 음악 제작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

"보통 2달 정도다. 3달 주면 더 잘 할 수 있다. (웃음) <군도>는 4~5개월 했다. 그땐 런던에서 오케스트라를 쓰고 직접 녹음까지 했다. 제작사가 꽤 공을 들였다. 기간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비해 요즘엔 충분히 시간을 주는 편이다. 시간이 없어서 음악을 못 만들었다는 것은 핑계다."


-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 음악을 시작하고 뺄 지를 어떻게 결정하나?

"그걸 스파팅(spotting)이라고 하는데 화면을 보면서 호흡을 생각한다. 감독이 생각하는 스파팅, 내가 생각하는 스파팅이 있다. 먼저 내가 알아서 해본다. 그뒤 감독이 생각하는 것과 맞춰본다. 스파팅을 하기 위해 영화를 수십 번 본다. 이 지점이 좋겠다는 것은 본능적인 감각이다. 누구나 다 "여기선 음악이 필요해" 라고 생각하는 순간엔 오히려 음악을 빼기도 한다. 영화 스타일, 편집의 리듬, 영화의 주제 등이 복합적으로 관련된다. <무뢰한>에서 박성웅과 전도연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김남길이 몰래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선 다들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투자사에서도 음악이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나와 감독은 영화의 스타일과 주제상 음악이 없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 한 편의 영화를 위해 몇 곡을 작곡하나?

"<강남 1970>의 경우 150곡을 만들었다. 그중 30곡이 쓰였다. 그러나 곡을 썼다고 해서 완성된 곡은 아니다. 화면과 맞춰보고 맞으면 그때 완성한다."


- 요즘 영화음악은 예전과 어떻게 다른가?

"요즘 한국영화들은 예전보다 음악을 많이 쓴다. 점점 할리우드 스타일로 상업영화의 틀에 맞춰 영화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예전엔 초반에 1~2곡, 중반에 없다가 후반부에 많아지는 어떤 패턴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패턴이 무너져서 다 비슷하다. 획일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대기업들이 비슷한 영화를 찍어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이젠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독들이 예전엔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게 목적이었다면 요즘 감독들은 재미있는 영화를 위해 일부러 음악을 많이 집어넣으려 한다."


-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많이 올랐지만 음악 예산은 예전과 비슷하다.

"영화 투자자들이나 제작사들이 사운드에 투자를 안 한다. 비주얼은 눈에 바로 보이기 때문에 예산 투입을 쉽게 결정하는데 소리는 퀄리티를 판단하기 힘든가 보더라. 심지어 음향 쪽은 10년 전보다 인건비가 더 줄었다. 음악도 영화제작의 일부인데 너무 신경을 안쓴다. 음악감독에게 맡겨서 결과물만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녹음할 때 PD가 와서 봐야한다. 그래야 영화음악의 퀄리티도 올라간다."


- 앞으로 어떤 영화로 만날 수 있나?

"올해 스케줄이 굉장히 많다. <뷰티 인사이드>는 완성해서 다음달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루시드 드림>, <대호>, <판도라>, <아가씨>, <대동여지도> 등의 음악을 만들 예정이다."


(매일경제에도 실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