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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48km 떨어진 곳에 제라쉬라는 오래된 도시가 있다. 고대 로마의 10개 위성도시 중 하나로 폼페이 황제의 상업 동맹 '데카폴리스(Decapolis)'에 속해 있던 곳이다. 보존 상태가 좋아 최근 페트라의 뒤를 이어 인기 있는 관광지로 급부상 중이다.


이곳엔 무려 6500년 전부터 인간이 살아왔는데 기원전 63년 로마의 지배 하에 놓인 뒤 전성기를 맞았다가 기독교인과 이슬람인의 뺏고 빼앗기는 전투, 749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1920년대부터 발굴이 이루어져 전차 경기장, 원형 극장, 제우스 신전, 목욕탕, 탑, 성곽 등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도시의 80%는 아직도 발굴을 기다리는 중이다.




*예라쉬? 제라쉬?

한국에선 요르단, 예라쉬, 예리코 등으로 표기하지만 현지인들은 모두 조르단, 제라쉬, 제리코 등으로 발음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선 (요르단은 어쩔 수 없고) 예라쉬가 아닌 제라쉬로 표기합니다.



그런데 제라쉬에서 놀란 것은 로마 유적 뿐만이 아니었다. 마침 인근 학교의 여학생들이 견학을 나와 있었다. 요르단에는 남자 학교와 여자 학교가 따로 있어 하루는 남학생들만, 또 하루는 여학생들만 견학을 올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여학생들이 견학 오는 날이었던 것.


아랍에서는 히잡을 두른 성인 여성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할 정도로 공공장소에서 접촉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소극적인 무슬림 성인 여성들과 달리 아이들은 밝고 명랑했다. TV에서만 보던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계속해서 기자를 졸졸 쫓아다니며 사진을 함께 찍자고 요청한다. 그리곤 한국 드라마, 가요, 연예인에 대해 줄줄이 읊어댄다. 별에서 온 그대, 상속자들, 해를 품은 달, 이민호, 슈퍼주니어 등등. 쉴새없이 재잘대는 그들에게 어디서 봤냐고 물었더니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작년 드라마 ‘미생’ 팀이 요르단을 방문했을 때 이곳의 한류 팬클럽 ‘K-Pop Lovers’ 회원들 200여 명이 암만 공항에 몰려들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또 매년 10월 암만에서 열리는 한국영화 페스티벌도 관객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다.



그러나 요르단에 한류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미 다른 중동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끈 ‘대장금’이 방영된 것이 2011년 10월이니 많이 늦은 편이다. 하지만 기자가 제라쉬에서 만난 아이들은 다른 어떤 아랍 국가보다 적극적으로 한류를 받아들이고 친숙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직 서투른 한국어로 한국을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소녀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모른다.


이미 세계 곳곳에 퍼진 한류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한국을 동경하는 아이들이 있다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눈이 맑은 아랍 소녀들은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누구나 30초 만에 한류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제라쉬다.


그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아이들은 나를 둘러싸고 모여서 귀요미송을 불러주었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아랍어 버전의 귀요미송을 한 번 감상해 보시길.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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