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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하자마자 흥행 1위에 오른 <스물>은 한국 상업영화에 오랜만에 등장한 청춘영화다. 몇 년 새 한국영화의 관객이 3050에 초점이 맞춰져 <국제시장>처럼 중장년층을 노린 영화에 관객이 몰렸음을 감안하면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이례적이다. 작년에도 10대와 20대를 겨냥한 주원과 안재현 주연의 영화 <패션왕>이 기대를 모았으나 흥행에서는 쓴 맛을 봤다.


<스물>의 성공 비결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김우빈의 스타파워다. 실제 영화관 내에서는 김우빈이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여성 관객들이 내지르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했던 김우빈 주연의 <기술자들>이 생각만큼 터져주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스타파워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소도 있다. 그건 이 영화가 단순히 10대와 20대만 겨냥한 것이 아닌 세대를 아우르는 청춘영화로 기획됐다는 것이다. <스물>만의 차별적 요소들을 살펴보자.



첫번째 증거. <스물>에 등장하는 는 세 명의 남자 주인공들은 기존 한국 청춘영화 캐릭터들의 교묘한 짜깁기다.


김우빈(치호 역)은 <비트> <태양은 없다>에서 하고 싶은 게 없어 숨만 쉬던 정우성과 <색즉시공>에서 섹스만 밝히던 최성국을 합쳐 놓은 캐릭터다. 그는 시종일관 “섹스하자”고 소리치면서도 낮에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 정우성이 홍콩느와르에서 막 튀어나온 인물처럼 멋진 싸움 실력을 갖고 있던 것과 달리 김우빈은 그런 것도 없다. 김우빈이 숨만 쉬며 가만히 있는 이유는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 부분은 요즘 시대의 청년들 모습이기도 하다.


강하늘(경재 역)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첫사랑에 실패해 괴로워하던 권상우와 <엽기적인 그녀>에서 첫사랑을 지켜주던 차태현의 계보를 잇는 순애보 청년이다. 청춘영화에서 달달한 첫사랑이 빠지면 그건 계란 빠진 라면과 다를 바 없다. 한 마디로 밋밋하다. 하지만 강하늘이 좋아하는 여자 선배로 등장하는 민효린(진주 역)의 사연이 너무 정형화되어 있어서 강하늘의 첫사랑은 임팩트가 약했다.


이준호(동우 역)는 최규석 작가의 웹툰 [울기엔 좀 애매한]의 캐릭터를 옮겨온 것인데 드라마 <미생>에서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내던져진 임시완과도 닮았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던 그는 힘든 가정형편 때문에 고민하는데 세 친구들 중 유일하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박카스 광고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지나치게 선량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처럼 기존 청춘영화에서 따온 서로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진 세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그들이 알아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도록 한다. 데뷔작 <힘내세요 병헌씨>에서 생생한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사건을 만들어갔던 이병헌 감독은 그 재능을 <스물>에서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섞이는 과정에서 영화 속 사건들은 유쾌하거나 혹은 찌질해 보이는데 잡탕 찌개도 잘 끓이면 맛있는 것처럼 오리지널리티는 없지만 가볍게 웃으면서 볼 만하다.



두번째 증거. <스물>은 청춘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지금 세대의 문제에 천착하지 않고 보편적인 스무살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스물>은 요즘 청년들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연애포기, 열정페이, 비정규직 같은 심각한 문제는 건너 뛰고 스무살의 보편적인 고민인 사랑, 이성에 대한 호기심, 가족 관계 등만을 다룬다. 영화가 이들의 고민을 그리기 위해 택한 방식은 어두운 현실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갈림길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주인공들이 이상과 현실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을 에둘러간 덕분에 영화는 밝은 코미디가 됐는데 이는 관객 저변을 넓혀야 하는 상업영화로서 이 영화가 택한 하나의 전략이다.


최근 한국영화 속 청춘들이 입시(명왕성), 자살(파수꾼), 집단 따돌림(한공주), 취업준비(족구왕), 불행한 가족(범죄소년), 비정규직(미생) 등으로 괴로워했던 것과 달리 <스물> 속 청춘들은 비교적 한산한 인생을 살고 그들의 고민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추상적이다. 게다가 세 명의 훈남 배우들은 마치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기반으로 한 순정만화 스타일의 청춘영화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다. 즉,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인 정소민과 이유비를 중심으로 <스물>의 서사를 재구성한다면 아마도 <그놈은 멋있었다>나 <늑대의 유혹> 같은 하이틴 영화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영화들에 열광하던 1020들이 지금 2030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그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모을 수 있는 좋은 전략이 된다.


“남들이 우리 보고 좋을 때라 그러는데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 영화 속 강하늘의 대사다. 또 김우빈은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청춘영화들 보면 자살, 낙태, 마약 같은 이야기잖아. 그런데 우린 뭐가 너무 없어.”


인상적인 두 개의 대사에서 느낄 수 있듯 영화 <스물>은 대단한 게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지만 막상 별 것 없는 스무살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는 스무살이 아니라 서른살, 마흔살에도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인생의 잠언이다. 결국 <스물>은 가장 빛나는 시기를 사는 청춘을 통해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본 기성세대가 “나도 스무살 시절엔 저랬지”라고 추억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이 영화의 목표였다면 지금 예매율 선두를 지키고 있는 <스물>의 관객층 흡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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