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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한국의 대작영화인 <설국열차>와 <국제시장>은 체코에서 촬영됐다. <설국열차>는 바란도프 스튜디오에서 열차 장면을 찍었고, <국제시장>은 오스트라바에서 탄광 장면을 촬영했다. <설국열차>는 애초 독일을 촬영지로 모색했지만 체코의 러브콜로 방향을 돌렸다. 체코 정부는 2010년부터 영화 제작비의 20%를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장면2: 2006년 서울영상위원회와 한국관광공사는 할리우드 로케이션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팸투어’를 실시했다. 한국에선 주로 연출부가 장소 섭외를 맡지만 할리우드에선 로케이션 매니저가 따로 있어 프로듀서 만큼이나 입김이 세다. 당시 오랫동안 로케이션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한 영화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공간이 매력적이라도 대작영화는 인센티브가 없으면 절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자, 이제 <어벤져스 2> 이야기를 해보자. 논란의 초점은 두 가지다. 첫째, 경찰까지 동원해 도로를 통제하는 바람에 시민 불편이 가중됐는데 정작 영화에서 보이는 서울 장면은 임팩트가 크지 않다는 것. 둘째, <어벤져스 2> 제작팀은 한국에서 130억원을 썼는데 그중 30%인 39억 가량을 세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


첫번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영화에 10~15분 가량 서울이 나온다. 세빛둥둥섬이 바이오연구소로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해 상암동 MBC 사옥 앞, 강남역 도로와 떡볶이집 골목, 문래동 상가, 청담대교, 마포대교, 뚝섬, 경기 계원예술대 인근 등 작년에 촬영지로 지목된 곳이 골고루 등장한다. 로케이션 장소가 마음에 안 들순 있어도 적어도 제작진이 찍어놓은 장면을 버리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서울이 큰 임팩트가 없어 보이는 이유는 이야기 구조상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추격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벤져스의 새 캐릭터 비전(폴 베타니)이 등장하고 이를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와 블랙 위도(스칼렛 조핸슨)가 뒤쫓는다. 대사도 거의 없고 화면은 휙휙 지나가며 한국인들은 지하철이 거리로 달려오면 피하는 소극적 리액션이 전부다. 한국인 입장에선 한강 다리가 더 멋지게 나오지 않은 게 아쉽겠지만 미국인이 보는 서울과 한국인이 보여주고 싶은 서울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평양의 영상과 한국인이 보는 평양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장면은 서울이 아니라 상하이나 도쿄였어도 크게 상관없어 보인다. <어벤져스 2>의 주요 촬영지는 여섯 곳이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영국, 이탈리아, 남아공, 방글라데시에서 찍었다. 전세계를 노린 프랜차이즈 영화이니만큼 아시아가 꼭 들어가야 했는데 그 비중을 한국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과 달리 도쿄나 히로시마 등 일본 도시에선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촬영을 지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할리우드 영화에 워낙 많이 등장했다. 1989년작 <블랙 레인>은 오사카에서 대부분을 찍었고 최근에도 <빅 히어로6>는 아예 ‘샌프란소쿄’라는 가상의 도시를 만들며 일본에 대한 할리우드의 경외심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국은 제작비를 직접 지원하면서까지 촬영을 유치하려 한다. <아이언맨 3>는 아예 중국 관객들을 위해 상하이가 등장하는 버전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였다. 또 첸 카이거 감독이 한중미 합작영화 <무극>(2005)을 제작할 당시엔 중국 정부가 영화를 위해 도로를 건설해주기까지 했다.


한국은 그동안 동남아시아 영화나 TV드라마의 촬영지원을 한 적은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어벤져스 2>를 통해 한국이 거둘 홍보효과로 2조원을 제시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62만 명 늘 것으로 추정했는데 거품이 심한 이런 수치를 제시한 것이 오히려 불신을 자초했다. 아직 막연할 수밖에 없는 수치보다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을 지원하는 것이 다른 식의 서울 홍보보다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를 설명하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동유럽 국가 ‘소코비아’는 애초 기획대로라면 세르비아 등 동유럽에서 촬영하는 게 맞겠지만 이탈리아의 적극적 구애로 프랑스 국경 인근의 작은 마을인 아오스타, 포르바르, 도나, 퐁생마탱, 베레 등에서 찍었다. 이탈리아임에도 프랑스, 스위스와 가까워 프랑스어를 쓰는 이곳은 <어벤져스 2>로 인해 관광 유발 효과가 발생한다면 최대 수혜지역이 되지 않을까 싶다.



두번째 논쟁은 30% 인센티브다. 할리우드 제작진에게 이 돈을 돌려주는 게 과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제도의 근거는 2011년부터 시행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외국영상물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 제도다. 그들이 쓴 130억원은 영화 전체 제작비인 2670억원의 5%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서울에서 촬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한국에서 어머어마한 홍보효과를 거둬 개봉하자마자 흥행 1위로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 추세라면 <어벤져스 2>는 한국에서만 제작비의 5분의 1인 500억원 정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천만 명의 관객이 든다고 가정) 결국 논점은 100억 쓰고 500억 가져가는 이들을 보고 있는 것이 억울하지 않냐는 것이다.


<어벤져스 2>의 제작진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는 것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세계 각국은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 영화를 유치하려고 인센티브 경쟁을 벌여 왔다. <반지의 제왕>으로 뉴질랜드가 ‘프로도 효과’를 거두고, 중국의 텐츠산이 <아바타>로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유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할리우드를 유혹하는 인센티브 중 가장 강력한 정책이 제작비 환급 제도다. <반지의 제왕> 당시 뉴질랜드 정부는 137억 이상을 현지에서 사용하면 제작비의 15%를 환불하는 정책을 폈고 이게 촬영팀 유치에 유효했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매혹적인 문화유산 덕분에 잘나가던 촬영지로 떠올랐던 체코는 이웃나라 헝가리가 2004년 제작비의 20% 환급 정책을 펴며 적극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유치하자 순식간에 뒤처졌다. 그래서 부랴부랴 2010년 헝가리와 똑같은 20% 환급 제도를 시행했다. 돈을 들이고도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한 일부 도시들은 인센티브 정책을 재고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진 할리우드 촬영팀을 유치하려는 곳이 훨씬 많다.


할리우드 영화 유치 경쟁은 미국 내에서도 벌어진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는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했는데 이를 유치하기 위해 다른 주들이 적극 구애한다. 뉴욕은 현장 제작 예산의 30%를 세금공제 방식으로 지원해주고 5% 리베이트 인센티브까지 준다. 뉴멕시코주는 25%의 세금을 환급해준다. 원래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하려 했던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은 25%의 세금 환급 조건을 제시한 뉴멕시코로 발길을 돌렸다. 뉴멕시코주는 200만달러 이상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에 대해서는 건당 1500만달러까지 무이자 융자도 제공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면 한국의 30% 인센티브는 조금 과하긴 하지만 이왕 할리우드 영화를 유치하기로 한 마당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이런 제도가 없었다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 투자비용은 아쉬운 법이다. 실리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은 이번에 할리우드를 시끌벅적하게 환대했다. 환대 잘 하기로 소문난 중국이나 아랍민족을 보면, 그들은 초반에 모든 걸 다 내줄 것처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실속을 챙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어벤져스 2>로 할리우드가 서울이 짭짤한 곳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면 그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다음 영화부터는 점점 실리를 찾아가는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마침 서울은 올해엔 <스타트렉 3>의 촬영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원순 시장은 작년 <스타트렉 3>의 프로듀서 제프리 체노브를 만나 영화 일부를 서울에서 촬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2006년 서울영상위원회가 할리우드 로케이션 매니저를 초청했을 때의 포부는 톰 크루즈가 한강을 달리고 트랜스포머가 서울 하늘을 날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계획했던 할리우드 영화 로케이션 지원 사업에서 한국은 이제 막 첫발을 뗐다. <어벤져스 2> 한 편으로 호들갑을 떨기엔 아직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도시 이미지는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다. 뭐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것 아닌가.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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