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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단지 좋았다고만 쓰는 게 터무니없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폭스캐처>가 그렇습니다.


돈으로 올림픽 메달을 살 수 있을까요? 돈으로 코치가 되어 레슬링 국가대표를 지도하고 금메달의 순간에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을까요? 여기 어머니의 품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남자가 있습니다. 미국 최고의 부자 듀폰 가문의 후계자인 존 듀폰(스티브 카렐)입니다. 그는 온갖 승마 트로피가 진열된 방의 한가운데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 트로피들을 실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돈으로 산 것입니다. 존은 이 트로피들을 치워버리고 싶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존은 1984년 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동생인 레슬러 마크 슐츠(채닝 태이텀)를 후원하기로 합니다. 아, 정확히 말하면 후원이 아니라 코치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1998년 서울 올림픽에서 코치로서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마크 역시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우뚝 서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뒷바라지 하겠다는 존의 저택으로 이사와 친구가 되어줍니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자란 존과 형의 그늘에서 자란 마크는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동질감을 확인하는 것은 순간일 뿐, 각자 숨기고 있는 결핍의 거대한 웅덩이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냅니다. 그 순간 마크는 마음을 닫아버리고, 존은 어머니가 죽자 더더욱 올림픽 메달에 집착합니다. 마크의 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가 마크를 구하려 애쓰지만 이미 떠나버린 마음을 되돌릴 순 없습니다. 듀폰은 껍데기 뿐인 인생에 괴로워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릅니다.


<폭스캐처>엔 대사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했던 말을 여러 번 반복할 뿐이고 음악의 사용도 극히 제한적입니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레슬링 장면도 역동적인 카메라워크가 아닌 정적인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리얼리티의 끝판왕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초반부엔 영화의 템포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습니다. 베넷 밀러 감독의 전작 <머니볼>과 비교해보면 감독이 얼마나 절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영화의 분위기가 후반부에서는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주인공은 레슬링이나 레슬러가 아니라 여우를 잡으려던 존이었던 것입니다. 움켜쥔 줄 알았던 여우는 손을 빠져나가고 존은 다시 외로움에 빠집니다. 그 외로움은 너무나 익숙해서 그래서 더 슬픈 외로움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트로피가 가득한 방에 홀로 앉아 있는 존을 보여주는 순간엔 그 공허함이 뼛속 깊이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완벽합니다.


마크 러팔로는 <비긴 어게인>의 그 남자와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을만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채닝 태이텀은 강인하면서도 고집 센 운동선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보석 같은 배우 스티브 카렐은 그가 원래 코미디 배우라는 것을 믿기 힘들 만큼 모든 것을 가졌지만 단 한 가지를 갖지 못한 남자로서의 공허한 눈빛을 완벽하게 재현해냅니다. 메부리코의 콧대가 드러나도록 살짝 고개를 들고 텅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 연기는 쉽게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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