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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영화 속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기에 편집은, 그 과정에서 필히 담아야할 것을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은, 영화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왜 이야기하지 않았는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입니다. 보수층은 영화가 정치를 말하지 않아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고 칭찬하고, 진보층은 영화가 정치를 에둘러감으로서 표피적인 현대사 접근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두 가지 견해 모두 <국제시장>이 한국의 격동기를 대변하는 영화라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을 통해 프랑스혁명 이후의 민중을 상상하고, <노예 12년>의 솔로몬 노섭을 통해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을 간접경험하는 것과 비슷하죠. 조선시대 광해군은 한동안 나쁜 군주로 여겨졌다가 최근엔 비운의 능력 있는 왕으로 재평가 받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느냐의 차이인데 조선시대가 워낙 오래된 역사라서 어떻게 해석해도 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정도에 그친데 반해 이제 70년 역사를 맞은 한국은 다릅니다. 첨예합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포레스트 검프>의 한국 버전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국제시장> 역시 한국 역사를 겉핥기식으로 훑어가고, 정주영, 앙드레김, 남진, 이만기 등 유명인의 젊은 시절 모습이 스쳐가듯 지나간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레스트 검프>를 보는 관객은 검프가 허구의 캐릭터임을 감안하고 영화를 보는 반면, <국제시장>의 덕수를 보는 관객은 그를 실제 살아있을법한 할아버지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검프는 IQ가 모자라지만 특출난 달리기 능력으로 세상의 평지풍파를 헤쳐나갑니다. 검프에게 유일한 삶의 목표는 제니라는 여자이고, 그녀를 위해 그는 베트남도 가고 반전시위에도 참석합니다. 그러나 덕수는 다릅니다. 덕수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는 조금 애매합니다. 뭉뚱그려 이야기하면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남동생을 위해 파독 광부가 되고, 시집 갈 여동생을 위해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에 갑니다. 그러나 덕수는 검프가 아닙니다. 그는 검프처럼 멍청하지 않을 뿐더러 검프처럼 삶의 목적의식이 뚜렷하지도 않습니다. 검프는 우여곡절 끝에 삶의 정수를 스스로 깨우치며 성장해갔지만 덕수는 성장하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라는 덕수의 마지막 대사가 보여주듯 덕수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삶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검프와 덕수의 이러한 차이는 두 영화를 전혀 다른 결과물로 만들어냅니다. 전자는 인생의 보편적인 가치를 돌아보게 해주는 반면, 후자는 사건을 전시하는 데 그칩니다. <포레스트 검프>를 보며 받는 감동이 인간 포레스트 검프에 대한 애정과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라면, <국제시장>을 보며 받는 감동은 덕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덕수가 대변하는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나 혹은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전자는 보편적이고 후자는 개별적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화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하지 않을 때는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포레스트 검프> 역시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했지만 검프라는 캐릭터에 그 이유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IQ가 모자라서 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캐릭터였고, 평생 그 컴플렉스를 뛰어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러나 덕수라는 캐릭터는 왜 말하지 않는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왜 동시대 부산에 국제상사와 삼화고무의 공순이가 없고 사상공단의 공돌이가 없는지, 왜 4.19와 부마항쟁이 없는지, 왜 5.16 쿠데타가 없는지, 왜 김재규가 없고 5.18이 없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덕수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캐릭터였다면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덕수는 꽃분이네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자영업자일 뿐입니다. 그의 굴곡진 삶에 저런 대형 사건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지요. 하다못해 지나가다가 시위대와 마주치기라도 했을 것입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긴, 성찰이 없는 추억은 그 사람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이것이 포레스트 검프와 달리 <국제시장>의 덕수가 절반의 한국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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