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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view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다."

최근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 <인터뷰>의 시나리오를 쓴 댄 스털링이 미국 영화잡지 '크리에이티브 스크린라이팅'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애초 영화의 시나리오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했지만 감독 및 소니픽처스 임원과 토론 끝에 북한의 김정은으로 설정을 바꿨다"며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리고 만든 코미디 영화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처음 소니의 해킹 사태가 벌어졌을 때만 해도 해프닝 정도로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FBI의 북한 해킹 발표, 해커의 미국 테러 위협, 영화 개봉 취소와 번복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오바마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재지정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는 등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소니픽처스는 아트하우스 체인을 통해 영화의 개봉을 감행했지만 극장들엔 보안 검색이 강화됐다. 미국으로선 테러 위협에 굴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지켰다는 명분을 얻었고, 북한으로선 사이버 테러가 미국에도 위협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인데 어찌됐든 이 논란의 중심에는 독특한 코미디 영화 한 편이 있다.


영화를 처음 구상한 스털링은 TV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의 대본가로 경력을 시작했다. <사우스 파크>가 시니컬한 유머로 세계 각국의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유명인을 조롱하고 풍자한 성인용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터뷰>의 의도 역시 짐작할 수 있다. 스털링은 위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007 영화의 뻔한 독재자처럼 그리고 싶지 않아 좀 더 동정심 있는 캐릭터로 그렸다"며 "영화 속엔 북한 뿐만 아니라 미국의 CIA, 연예뉴스 등 모든 것이 조롱거리로 등장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The Interview


독재자를 조롱하는 코미디 영화들


<인터뷰>처럼 독재자를 조롱하는 코미디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다.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1940)부터 막스 형제의 <식은 죽 먹기>(1933), 우디 앨런의 <바나나 공화국>(1971), 사샤 바론 코헨 주연의 <독재자>(2012)까지. 이 영화들은 각각 히틀러, 무솔리니, 카스트로, 사담 후세인 등을 풍자하고 조롱했다.


Banana


우선 <바나나 공화국>은 우디 앨런 감독의 초기작으로 그가 직접 카스트로와 흡사한 수염을 기르고 출연해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인다. 한 뉴요커가 가상의 독재국가인 바나나 공화국에 갔다가 혁명군의 리더로 오인받는데 얼떨결에 독재자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이 영화에 대해 쿠바를 얕잡아본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Dictator


<인터뷰> 만큼이나 ‘똘끼’ 충만한 B급 코미디 <독재자>는 김정일의 사진을 보여준 뒤 그보다 더 황당한 독재자가 있다는 식으로 시작한다. 아프리카의 한 가상의 국가를 지배하는 괴팍하고 잔인한 독재자가 유엔에서 연설하기 위해 뉴욕에 갔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걸 빼앗긴다. 수하들은 수염이 깎인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독재자는 뉴욕 시민들과 어울리면서 온갖 기행을 저지른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가끔 독재자가 되고 싶은 심리’를 화장실 유머와 섞어 포복절도할 웃음을 자아낸다. 당시 이 영화의 독재자 모델이 사담 후세인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며 배급사 파라마운트는 영화를 중동에 판매하는데 애를 먹었다.


지구촌에 악명 높은 독재자가 많이 사라진 지금, 할리우드가 찾은 다음 타겟은 북한의 김정은인 것처럼 보인다.


Team America: World Police


할리우드 영화의 악역 차지한 북한


사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영화가 있었다. 그땐 대상이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이었다. 2004년작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은 성인용 꼭두각시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사우스 파크>의 제작진이 만들었다. 북한은 물론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까지 모조리 조롱하는 이 영화에서 김정일은 옛 중국 황실처럼 화려한 소파에 앉은 채 등장한다. 그는 대량살상 무기를 판매하기 위해 바이어를 만나는데 이때 미국 요원들이 그를 살해하려는 작전을 세워 북한에 침투한다. 인형 애니메이션임에도 무척 잔혹한 고어 영화로 한국에선 개봉하지 않았다. <인터뷰> 사태와 달리 이 영화에 대해 당시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선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김정은 정권이 김정일 정권에 비해 불안정하다는 방증이라는 것, 둘째 최근 할리우드 영화가 북한을 다룬 횟수가 과거에 비해 급격히 늘어 <인터뷰>를 본보기로 삼았다는 것 등이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서 북한은 존재감이 거의 미미한 국가였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잠깐씩 언급되는 정도였고 주요 소재가 되더라도 소규모 B급 영화가 고작이었다. 1988년작 <특명 24시>에선 미군 특수요원들이 북한군의 포로가 되자 그 아들들이 직접 북한에 잠입해 황당한 액션을 선보였고, 1997년작 <머더 1600>에선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 대통령의 스캔들을 무마하려 북한에 납치된 미군을 구출하는 작전을 진행하려 했으며, 1998년작 <프로보케이터>에선 미군 가정부로 위장 잠입한 북한 여간첩이 10대 소년과 사랑에 빠져 정체가 들통나기도 했다. 당시 <연인> <컬러 오브 나이트>의 섹시스타 제인 마치가 여간첩 숙희로 분했지만 영화는 최악의 혹평을 받았다.


북한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격적인 악역을 맡은 것은 2002년작 <007 어나더데이>부터였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킨 것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촉발한 계기가 됐다. 애초 중국이 악역이었다가 북한으로 바뀐 경우도 있다. 중국의 시장성을 고려한 조치다. 북한은 영화를 판매할 시장도 없으니 악당으로 제격이었던 셈이다.


Die Another Day


<007 어나더데이>에서 제임스 본드는 북한 내 무기밀매 현장에 위장 잠입했다가 발각돼 북한군의 포로가 된다. 영화는 북한을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음모를 꾸미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남한도 만만치 않아서 비무장지대에서 농부가 물소를 몰고 한국군은 미군에게 무시당한다. 당시 북한은 ‘로동신문’에 성명을 내며 반발했고, 한국에서도 효순.미선양 사건으로 촉발된 반미 분위기로 인해 상영반대 시위가 일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창천동 1대대'란 명찰이 달린 한국 예비군복을 북한에서 훔쳐 입는 장면은 한국 네티즌들에게 오랫동안 패러디 대상으로 남았다.


로브 코헨 감독의 2005년작 <스텔스>는 미국의 최첨단 인공지능 군사시스템과 스텔스기가 등장하는 액션영화로 중반부에 제시카 비엘이 연기한 여성 파일럿이 북한의 어느 산에 불시착한다. 그녀는 교전 끝에 휴전선을 넘어 남한으로 탈출하는데 영화 속 북한은 극빈국으로 그려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제작진이 제대로 조사도 해보지 않았는지 동남아시아인들을 데려다 놓고 북한 사람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2006년엔 <에너미 라인스>의 속편 <에너미 라인스 2 - 악의 축>이 북한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네이비씰 특전대가 비밀리에 투입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나오자마자 비디오로 직행할 정도로 눈뜨고 보기 힘든 완성도를 지닌 영화지만 한국전쟁 이후 남북 분단상황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지미 카터의 방북 등 한반도와 관련된 실화가 곳곳에 담겨 있다.


2007년작 <영광의 날>은 메달을 박탈당한 피겨 스케이터가 남성 듀엣을 결성해 재기한다는 줄거리의 코미디 영화로 영화 속에 북한의 남녀 듀엣 스케이터가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북한 남녀 선수들은 ‘철의 연꽃’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다가 남자의 스케이트날에 여자의 목이 잘리는데 북한군은 양옆에 도열한 채 부동자세로 이들을 쳐다본다.


Red Dawn


201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북한이 미국을 침공하는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레드 던>에서 평화로운 미국의 한 시골마을은 북한군에 의해 쑥대밭이 된다. 북한의 최첨단 장치에 의해 통신망 및 대공방어망이 무력화돼 미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마을 학생들은 저항군을 결성해 북한군에 맞서 싸운다. 1984년 존 밀리어스 감독, 패트릭 스웨이즈 주연의 <젊은 용사들>을 리메이크한 영화로 원작의 적은 쿠바와 옛 소련 연합군이었다. 미국을 공격하는 역할을 북한이 차지한 셈인데 원래는 중국이었다가 급하게 북한으로 변경하는 디지털 작업을 했다.


Olympus Has Fallen


2013년작 <백악관 최후의 날>에선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점령하고 대통령을 인질로 붙잡는다. <007 어나더데이>의 한국계 배우 릭 윤이 또한번 북한 테러리스트로 분했는데 그는 한국 측 경호요원으로 신분을 위조해 백악관에 침투한다. 영화 속 북한군은 막강한 기술력으로 만든 AC-130 드랍십으로 미군의 F22 전투기를 격추시킬 정도로 전투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한국 국무총리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죽는 등 한국인의 입장에선 씁쓸한 실소가 나오는 영화지만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제작비 7천만 달러 대비 3배 가까운 1억8천만 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또 <월드워Z>에선 평택 미군기지발 좀비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퍼진 가운데 “북한은 좀비 청정국”이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북한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은 이유가 가관인데 하루 새 인민 2300만명의 이빨을 몽땅 뽑았기 때문이란다. 북한이니까 가능한 일이라는 설명과 함께다.


이밖에 2010년작 <솔트>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분한 CIA 요원 에블린 솔트가 과거 북한에서 고문당했던 장면이 10여분 간 보여졌고, 2012년작 <지아이조 2>에선 김정은을 닮은 북한 지도자가 세계 핵보유국 정상들과 나란히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등 할리우드에서 북한이 맡은 배역은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대담해져 왔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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