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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 가득 금발 미녀의 얼굴이 등장한다. 한 남자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렇게 말한다. “내 아내의 머리를 부셔서 갈아버리고 싶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남자는 이토록 아름다운 부인의 머릿결을 붙잡고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영화 <나를 찾아줘>는 미스터리 방식으로 이 과정을 추적한다. 두 사람의 설렘 가득한 첫 만남부터 시작해 5년이 지난 지금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른 과정을 보여준다. 열정은 식었고, 진실하겠다던 맹세는 헌신처럼 버려졌으며, 설상가상으로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파산상태에 처했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 만으로 이 부부의 기이한 행동을 다 설명할 순 없다. 두 사람 사이엔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여자가 갑자기 사라진 날부터 드라마틱하게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느날 부인이 사라진다. 경찰은 남편을 의심한다. 남편에겐 바람핀 여자까지 있다. 부인은 어릴 때부터 유명 동화작가다. 기자들이 몰려든다. 미디어는 남편을 범인으로 단정짓는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180도 반전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쓰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러닝타임 1시간이 지난 후부터 영화는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모두 부정하고 새롭게 여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가 개입하고 여자의 싸이코패스적 속성은 감춰진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자신이 만든 동화 캐릭터와 동일시하는 삶을 살아온 부인은 껍질 벗은 애벌레처럼 변태를 거듭하고, 그녀를 감당하지 못하는 남편은 그러나 그녀가 만든 가짜 환상을 깨버리기엔 겁이 너무 많다. 결국 이 영악한 백인 중산층 부부는 순전히 경제적인 의지로 해피엔딩을 향해 폭주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첫 장면이다. 부인 얼굴의 화면 가득한 클로즈업과 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 두 사람은 토크쇼 촬영을 위해 집으로 들어온 스탭들 앞에서 다시 억지로 손을 잡는다. 이들은 낭떠러지에 올라서서 서로를 밀어버릴 수 있는 무기를 하나씩 손에 쥐고 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무기를 갖고 있는 그 상황에서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평화가 유지된다. 아이러니지만 원래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동명의 원작 소설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인데 2008년 금융위기 과정 등 좀 더 디테일이 살아 있다. 소설을 쓴 길리안 플린이 직접 시나리오도 썼다. 시험관 아기를 위해 받아둔 정자까지 적절한 복선으로 활용할 정도로 꼼꼼한 각본이다. 'Gone Girl'이라는 원제에 비해 한국어 제목 <나를 찾아줘>는 메시지가 약한 편이다. 사람의 마음을 조였다 푸는데 재능 있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2시간 30분 동안 지루할 틈없는 롤러코스터를 선보인다. 그는 <조디악>에서도 그랬지만 캐릭터를 집요하게 파헤치는데 일가견이 있다. 초반 1시간 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던 에이미 캐릭터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그녀는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 악역으로 남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일렉트로닉 음악이 흐를 때까지 한 장면도 버릴 컷이 없는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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