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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의 기세가 무섭다. 개봉 첫 주인 8월 3일에는 하루 1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25만 명이면 수원시 인구 118만 명보다 많은 수치다. 이 추세로 가면 <도둑들>의 1290만 기록을 넘어 1500만 관객을 동원할 거라는 말도 나온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명량>으로 이끌었을까? 이유를 생각해봤다.


1. 모두가 존경하는 리더 이순신


이순신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진보와 보수를 아울러 모두 존경하는 인물이다.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고, 삶 자체가 감동적이며, 흠집 잡힐 구석도 없다. 이순신은 편가르기가 일상이 된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역사 속 영웅이다. 그가 한성 출신이고, 전라좌수사를 넘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도 통영과 여수는 자기네가 이순신이 더 많이 활약한 무대라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두루 추앙받는 이순신은 장군으로서 전략이나 사람을 쓰는 능력도 뛰어나 리더십 갈증에 허덕이는 한국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하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은 이순신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는 글을 SNS에 올리고 있고, 이순신 관련 서적 역시 판매량이 늘고 있는 등 이순신 재조명 바람이 불고 있다.


2. 눈 앞에서 보는 역사책


이순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걸쳐 23전 23승의 신화적인 승리를 기록했다. 그중 한산도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으로 곧잘 꼽히는데, 다른 세 개의 해전은 테미스토 클레스 제독이 이끄는 그리스가 페르시아 함대를 몰살시킨 영화 <300>의 배경이 된 살라미스 해전, 영국이 무적함대를 격파한 드레이크 제독의 칼레 해전, 영국이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무너뜨린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이다. 이순신은 왜의 조선 진입을 무력화시켜 명나라 침략을 막았기에 16세기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산도의 승리도 기가 막히지만 명량해전의 승리는 그에 비해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칠천량에서 대패하면서 1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조선 수군이 보유한 배는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김억추가 칠천량에서 후퇴하면서 남긴 13척에 불과했다. 이순신을 눈엣가시로 여긴 선조는 그에게 백의종군해 권율의 육군으로 들어오라는 어명을 내린다. 이런 모든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키고 13척을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무찌른 이야기는 민족의 자랑으로 남았다. 그런데 그동안 책에서 숱하게 보아오던 이 영웅담을 스크린에 고증해냈으니 영화에 만족한 관객들은 전투 장면에서 역사책을 눈 앞에서 보는 듯한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마치 스포츠 한일전의 시청률이 높은 것처럼 <명량>의 애국심 요소는 이순신을 만나 진가를 발휘했다.


3. 40대 남성 관객의 힘


<명량>을 예매한 관객을 분석해 보면, 남자 53.7%로 남성이 많았고(CGV), 40대 이상이 51%로 다른 세대보다 많았다(롯데시네마). 기본적으로 남녀노소에 어필하지만 중년층 남성이 더 선호한다는 말이다. 특히 이순신의 '필생즉사 사즉필생' 전략을 보며 현실에 산적한 위기를 돌파할 답을 찾는 중년이 많다. 중년 관객과 동반한 10대와 20대 관객의 경우, 100원짜리 동전 속 주인공이 만들어낸 당시 역사를 직접 보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이긴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4. 입소문에 더 쏠린 '쿨링 시네마'


대작 4편의 언론시사회가 열리고 나서 SNS에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의 평이 돌았다. 대략적인 반응은 <군도>는 실망, <명량>은 기대이상, <해적>은 코믹, <해무>는 무겁다는 것이었다. <명량>만이 고르게 평이 좋았다. 그 입소문이 예매로 이어져 개봉 전 예매율이 치솟았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정보의 소통이 빨라져서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 빨리 같은 영화를 보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7월 30일 개봉한 <명량>은 당초 <군도>와 <해적> 사이에 낀 영화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군도>가 평론가들의 평가와 네티즌들의 입소문에서 밀리자 <명량>을 상대할 만한 경쟁작이 보이지 않았다. 할리우드 대작도 이번에는 별다른 화제작이 없이 조용했다.


7월 말부터 8월 초는 피서 절정기다. 그런데 삶이 팍팍해지면서 휴가를 아예 극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무더위에 영화 한 편 보고 더위를 식히는 '쿨링 시네마' 휴가다. 이번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대작 4편 모두 이런 추세를 노리고 만들어져 스케일이 크고, 시원한 바다 배경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5. 패스트푸드 영화편식


8월 3일 <명량>은 스크린 1586곳에서 7960회 상영했다. 올해 6월 개봉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1602개 스크린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수치로 총 스크린 갯수 2584개의 61%를 점유했다. 이날 하루 동안 관객 수 125만 명, 좌석점유율 87%, 매출액 점유율 67%를 기록했다. <명량>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드래곤 길들이기 2>의 관객 수는 고작 20만 명으로 무려 6배 차이다.


<드래곤 길들이기 2>가 692개 스크린에 61%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명량>에 스크린을 몰아줬다고 극장 탓만을 할 수는 없다. 관객이 한 영화 만을 보겠다고 몰리는데 그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명량>의 좌석점유율 87%는 거의 모든 회차가 매진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그만큼 관객의 취향이 획일적이 되었다는 말이고, 다양한 영화를 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같은 쏠림 현상은 위험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채널만 보고, 한 영화만 본다면 그 사회의 문화는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 영화에 쏠리는 이런 현상은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를 넘어 사람들이 문화적 다양성에 메말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들이 많이 보는 영화 한 편을 본 뒤 문화적 섭취를 다 했다고 느끼는 '패스트푸드 영화편식'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집단적으로 영화를 보고, 조금이라도 머리 아픈 영화는 안 보는 편식인 셈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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