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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전국민이 아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땐 두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충족했어야 했다.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거나, 혹은 압도적 비주얼로 흥분시키거나. 이 영화는 후자의 전략을 취했으나 해상 전투신은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2. 이순신은 전국민이 아는 영웅이다. [난중일기]는 어릴 때부터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의 애민정신, 임금에게 버림받은 억울함, 글솜씨까지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의 인간적 면모를 볼 수 있는 [칼의 노래]는 이미 오래된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명량>에서 볼 수 있는 이순신은 지금까지 알려진 이순신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 한다. 그는 홀로 고뇌하는 민족의 영웅이다. 그의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은 왜군 장수 도도(김명곤)와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소리지를 때 뿐이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그래서 안전지향적이다.


3. 전투 장면에서 울돌목의 회오리나 지리적 특성, 판옥선 등은 고증에 신경을 썼지만 전투 상황은 상당히 과장됐다. 명량해전의 조선수군 피해 규모는 사망 2명, 부상 2명이었다. 백병전도 없었다. 칠천량에서 1만이 넘는 병사가 전사한 이유는 조선수군이 백병전에 약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치밀한 시뮬레이션 전문가여서 운에 맡기는 전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과장해 전투장면을 만든 영화를 이해할 수는 있다. 백병전이 없으면 화면이 밋밋해지니까.


4.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대사는 "먹으니 좋구나"였다. 명량대첩이 끝난 뒤 아비를 잃은 아이가 들고온 음식을 먹을 때 나온다. 그 대사를 들으며 왠지 모를 편안함과 신선함을 느꼈다.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 기생 역할을 한 배우가 있던데 정작 극장 상영본에서는 기생이 등장하지 않아 편집된 것 같다. 만약 이순신이 먹는 장면이 더 나왔으면 영화는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5. 최민식이 이순신에 어울리는 지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순신에 잘 겹쳐보이지 않는 최민식을 택한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그런데 최민식에게 기대했던 특유의 열정이 그가 맡은 이순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좀 더 카리스마 있고, 좀 더 미친 열정을 가진 그런 최민식스러운 이순신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감독은 이순신을 재해석하려는 야심과 맞짱뜨지 않았다. 너무 안전한 지점에서만 전투하려 했다. 그래서 영화는 울돌목에 빠져버렸다. 영화 속에서 이순신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딱 한 번 등장한다. 꿈 속에서 죽은 장군들을 만날 때다. 그런데 그 장면은 너무 직접적이다. "이런 고민을 하셨습니다" 라고 친절하게 읽어주는 동화책 같다.


6.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는 메시지도 그렇다. 자기계발서에 숱하게 나오는 말의 동어반복이라서 큰 울림이 없다.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거창한 메시지보다는 작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가 더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7. 영화를 보면서 동시대가 배경인 일본 영화 <무사 노보우>가 생각났다. 똑같이 실제 역사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훨씬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 영화도 평면적인 캐릭터들과 일차원적인 장면들이 많지만 적어도 <명량>에서만큼 역사의 무게감에 짓눌려 있지는 않다.


8. 마지막 장면에서 1592년 한산도대첩 당시의 거북선을 보여준 것은 참 뜬금없었다. 슈퍼히어로물에서 속편 예고할 때 써먹는 수법을 이렇게 무거운 사극에서 쓰다니.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 맞지 않다.


9. 그래서 결론은, <명량>을 보느니 차라리 이순신 전기를 한 번 더 읽는 편이 낫겠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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