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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로버트 드니로)와 토미(조 페시)는 헨리(레이 리오타)가 원해서 사귄 친구들은 아니었다. 폴(폴 소르비노)의 소개로 친구가 됐다. 비슷한 또래였던 헨리와 토미에 비해 지미는 처음 만날 때부터 이미 나이도 열 살 넘게 많고 돈을 뿌리고 다니는 동네 거물이었다. 토미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여서 뒷감당을 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헨리와 토미는 밀어내는 자석처럼 상극이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살았다. 그들은 여전히 성장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굿 펠라스' 혹은 '와이즈 가이스'라고 불렀다.


마틴 스콜세지의 첫 번째 갱스터 영화인 <좋은 친구들>(1990)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고 원작은 니콜라스 필레지의 소설 'Wiseguy'다. 필레지는 마피아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썼는데 그중에는 영화화된 <카지노> <시티홀>도 있고 2007년엔 <아메리칸 갱스터>를 기획하기도 했다. 필레지는 노라 에프론 감독의 남편이기도 했다.


<좋은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에 본 영화라서 가물가물했지만 전반적인 구성이 <좋은 친구들>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 한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전개되는 것, 그가 돈맛을 즐기는 것, 주인공이 마약으로 정신 못 차리는 것, 결코 반성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에게 잡히는 날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한 시퀀스까지. 다시 보면서도 정말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떠올랐다. 차이점이라면 <좋은 친구들>은 어쨌든 세 친구들이 몰락하는 결말로 끝맺는데 반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영화가 주인공의 인생에 대해 끝까지 판단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만드는 솜씨는 23년 전에 비해 지금도 별반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친구들>의 엔딩 역시 (당시에는 그럴 수 없었겠지만)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처럼 명확하게 판단내리지 않는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좋은 친구들>은 영리한 기획이자 멋진 영화다. 인생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던져야만 좋은 영화는 아니다. 장난 같은 인생이라도 그 속에 캐릭터에 대한 태도가 분명하고 표피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로부터 긴장감을 끌어낼 수 있으면 스토리는 설득력을 얻는다. <좋은 친구들>의 이야기구조는 매력적이다. 어떤 때는 작가가 스토리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최근 <아메리칸 허슬>도 그랬다) 이 이야기 구조는 이후 스콜세지가 자신의 영화에 차용하기도 했고 후배 감독들이 (한국의 윤종빈 감독을 포함해서) 교과서처럼 따르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 플롯의 특징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주인공의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긴 시간을 다루는 일종의 바이오그라피다. 영화가 끝나면 한 인물에 대한 요약정리를 본 느낌이다.
  • 헨리, 지미, 폴은 1960~70년대를 풍미한 아이리쉬갱이다. 이들은 이탈리아계가 아니라서 마피아가 될 수 없는 주변인이다.
  • 이들은 황제처럼 살지만 태생적 한계로 인해 고민한다. 지미는 마피아의 일원이 될 토미를 축하하며 세리머니가 열리는 당일에도 안절부절한다. 이런 태생적 한계는 <디파티드> <갱스 오브 뉴욕>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에도 그대로 답습된다.
  • 영화는 큰 서사의 중반부쯤에 위치하는 주인공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큰 사건으로 시작한다. 세 친구들은 마피아인줄 모르고 사람을 죽인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장면에서 굳이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음 장면으로 바로 이어졌어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 같다. 러닝타임은 절반으로 확 줄겠지만 세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는 이후에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 어린 시절을 집어넣은 것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영향으로 보인다.
  • 세 명의 캐릭터가 개성이 뚜렷하다. 헨리는 조심스럽고 수동적이고, 토미는 성질 급한데 웃기고, 지미는 수완 좋지만 그만큼 냉정하다. 모욕을 참지 못하는 마마보이인 토미가 계속 사고를 치지만 지미나 헨리 모두 토미를 버릴 수 없다. 세 명의 관계는 묘한 균형점 위에 놓여 있다. 한 축이 무너지면 다른 축도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관계다.
  • 클라이막스를 길게 늘어뜨린다. 다른 어느 날보다 긴 하루로 시간대별로 묘사해서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질 것임을 계속 예고한다.
  • 사소한 일이 큰 사건을 만든다. 마피아가 토미를 구두닦이라고 놀리는 것, 도망쳐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여자가 모자를 꼭 가져와야 한다고 고집 부리는 것 등이 결국 사건의 전환점이 된다. 이런 장면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 캐릭터는 변하지 않는다. 단지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들은 결코 성장하지 않고 뉘우치지도 않는다. 그들이 성장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갱단이라는 동화(?)의 세계에 계속 갖혀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껏 훔칠 수 있는 이런 세계는 어른들에게는 판타지의 세계이고 헨리는 그 세계를 동경하다가 갇히게 된 피터팬이다. 캐런과 헨리는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신청한 뒤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경제적으로 풍유롭지 않은 삶을 더 걱정한다. 애초 이 영화의 엔딩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처럼 더 쿨한 방식으로 매듭짓는 것을 감독이 원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좋은 친구들>을 걸작으로 만든 몇몇 뛰어난 장면들을 언급해보자.


  • 지미가 캐런에게 크리스찬 디올의 옷을 몇 벌 가져가라고 말하는 장면. 그전 장면에서 마약사건으로 수감된 뒤 출소한 헨리는 지미를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캐런은 그렇지 않았다. 캐런은 지미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계속 걸어가고 있다. 뒷모습을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불안하다. 더구나 도대체 어디로 가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이전에 지미가 무자비한 남자라는 것을 관객에게 충분히 각인시켜주었기에 이 장면에서 서스펜스 효과는 극대화된다.
  • 헨리의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마피아가 토미를 6년 만에 다시 만난 뒤 그를 구두닦이라고 놀리는 장면. 이 장면의 말싸움이 그들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지미에 의해 다 정리된 줄 알았던 그들의 사소한 말싸움은 잠시의 정적 뒤 마피아의 똑같은 대사 한 번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토미, 구두통은 어디 있나?" 어쩌면 이 장면의 이 대사를 위해 전반부의 긴 어린 시절 장면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 지미가 공중전화 박스에서 토미의 사망 소식을 듣는 장면. 지미는 그날 하루종일 안절부절했다. 토미가 마피아의 일원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했던 그다. 그러나 그 기쁨은 경찰이든 법관이든 누구도 겁내지 않았던 그들에게 단 하나 남은 공포의 대상인 마피아로부터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의 기쁨이다. 그러나 지미는 토미의 복수를 하기는커녕 헨리마저 의심한다.
  • 헨리가 헬리콥터에게 쫓기는 장면. 헨리는 운전하면서 땀을 뻘뻘 흘린다. 헬기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고 말하자 주변에서는 마약 때문에 과대망상을 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장애아인 동생을 데리러 병원으로 가는데 의사가 발륨을 처방해준다. 헬기는 하루종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고 헨리는 그에 따라 숨었다가 차를 타고 달리기를 반복한다. 그는 결국 마약을 조제하는 애인 아파트에 들렀다가 집으로 간다. 시간대별로 나눠서 보여지는 이 장면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는 훨씬 더 아크로바틱한 환각 장면으로 탈바꿈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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