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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토탈 리콜> <잭 라이언> 등 요즘 할리우드에 리부트 바람이 불고 있지만 <로보캅>은 리부트가 아니라 리메이크 영화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기본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경은 2028년 디트로이트 시티. 옴니코프(OmniCorp)라는 대기업이 로봇을 제작해 미국을 제외한 아랍과 중국에 수출해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미래입니다. 영화는 1987년 원작처럼 TV 화면으로 시작합니다. 앵커 팻 노박(새뮤엘 L 잭슨 분)이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왜 미국에서는 로봇이 도입되면 안 되는지 묻습니다. 이 방송은 옴니코프의 회장 레이먼드(마이클 키튼 분)와 로봇을 반대하는 휴버트 드레이퓌스 상원의원(자크 그르니에 분)을 나란히 불러놓고 토론을 하는 척하지만 사실 굉장히 편파적으로 로봇 기업 편을 듭니다.


미국에 로봇경찰이 도입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인간처럼 느낄 수 없기에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힌트를 얻은 레이먼드는 인간처럼 느끼는 로봇을 만들 전문가 데넷 노튼 박사(게리 올드만 분)에게 전권을 주고 로보캅 프로젝트를 준비합니다. 우리의 불쌍한 알렉스 머피는 23년 전의 <로보캅>에 이어 이번에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딱딱한 수트를 입습니다. 그는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보고 도대체 자신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혼란이 빠집니다.


영화는 머피가 자신을 죽인 갱들을 찾아가 복수한 뒤 자신을 버리려고 하는 레이먼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장면까지 숨가쁘게 달려갑니다.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비슷하게 따라가고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가족의 존재입니다. 1987년 작품에서 부인과 아들은 머피가 죽자 곧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자리를 동료인 여자 경찰관이 대신했었죠. 하지만 2014년 작품에는 가족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특히 부인 클라라(애비 코니쉬 분)의 비중은 놀랄 정도로 늘었습니다. 그녀는 침실에서는 섹시하게, 파티장에서는 우아하게, 또 옴니코프의 부당함에 맞설 때는 당차게 등장해 머피를 돕습니다. 영화 초반에 머피와 클라라의 베드씬이 낮은 수위로 나오는데 오히려 그 장면의 수위가 더 높았다면 이후 기계의 몸을 가진 머피와 포옹하는 장면에서 확실한 대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애비 코니쉬는 대단한 히트작이 있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동안 <어느 멋진 날> <리미트리스>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었죠.


<로보캅>은 엔딩이 부실한 영화입니다. 정교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다 끝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2012년작 <토탈 리콜>의 엔딩과 무척 닮았다는 것입니다. 건물 옥상에 악당 본색을 드러낸 회장이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협하고 있고 마침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악당이 처형되고 사건이 종결됩니다. 이건 폴 버호벤 영화를 다시 만들 때 따라야 하는 공식 같은 건가요? 그래서인지 리메이크된 <로보캅> 역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중반부 이후 회장이 머피를 죽이려하는 시점부터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전개되고 납득하기 힘든 과정의 연속입니다. 오리지널이 워낙 훌륭한 영화였기 때문에 실망감이 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시각적인 쾌감 그 자체에 있습니다. 마치 헬멧을 쓰고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영화는 자주 로보캅의 시점 샷을 선보입니다. 관객은 로보캅의 눈으로 사람들의 전과기록을 조회하고 총을 겨눕니다. 특히 로보캅이 갱들이 숨어 있는 공장을 급습해 앙트완 발론(패트릭 개로우 분)을 비롯한 갱들을 처단하는 장면은 마치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는 듯한 쾌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빨간색 사이키 조명 아래 수시로 전환되는 적외선 카메라가 연신 깜박이는 스타일리쉬한 영상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장면을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로보캅>은 할 일을 다 했습니다.


1987년 원작의 리뷰에서도 썼지만 원래 <로보캅>은 다양한 정치적 주제를 품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2014년 <로보캅>은 그중 한 가지만 떼어내 거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기계라는 정체성의 문제와 사회와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현대 로봇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로봇이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하게 될 때, 단지 부속품을 넘어 사이보그에 이르게 될 때, 혹은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게 될 때, 그것이 과연 우리사회 속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지는 아마 향후 우리에게 주어질 가장 큰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보캅>의 스크립트에는 이 문제를 깊게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만 결국 해답으로 제시한 것이 드레이퓌스 법안으로 상징되는 법적인 규제 뿐인 것 같아 아쉽기는 합니다.


영화 속에서 팻 노박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드레이퓌스라는 이름이 처음 나왔을 땐 100여년 전 프랑스의 알프레드 드레이퓌스 육군 대위 사건에서 가져온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드레이퓌스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었지 인간성의 수호자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큰 연관성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그 이름은 1987년 <로보캅>과 같은 해에 나온 <캐딜락 공방전>의 주인공 리차드 드레이퓌스에서 따온 게 아닐까요? <캐딜락 공방전>의 원제는 'Tin Men'이고 <로보캅>에서 옴니코프의 무기 전문가 릭 매톡스(잭 얼 할리 분)는 로보캅을 '틴맨'이라고 부르거든요.



마지막으로, 2014년 <로보캅>은 원작에 없던 한 가지를 추가했는데 그것은 바로 지역 문제입니다. 1987년 영화는 디트로이트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미국 외의 지역까지 폭을 넓힙니다. 첫 장면에서 옴니코프의 로봇경찰이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아랍을 보여주는 것을 비롯해 로보캅과 ED-209를 생산하는 기지는 중국에 있습니다. 로보캅이 담을 넘어 나갔더니 논밭이더라는 설정은 농업과 첨단기술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놓은 시각적 충격이 담긴 장면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로봇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는 식량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로봇공장이 중국에 있다는 것은 2028년에도 세계의 공장은 역시 중국일 것이라는 시각의 반영인 셈인데 굳이 원작에도 없던 중국을 집어넣은 것은 조금 고리타분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중국 시장을 겨냥한 노림수일까요?


1987년 <로보캅>이 네덜란드 출신 폴 버호벤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을 알린 충격적인 걸작이었다면 이를 2014년에 리메이크한 감독은 브라질 출신의 호세 파디야입니다. 그는 <엘리트 스쿼드>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뒤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로보캅>을 택했습니다. 브라질의 정예 경찰 보피가 부패 경찰과 슬럼의 갱들을 소탕하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낸 솜씨를 다시 보려면 아무래도 다음 영화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군요. 머피 역은 조엘 키나만이라는 스웨덴 출신 배우가 맡았는데 생소한 이름입니다만 늙고 피곤해 보였던 피터 웰러보다는 확실히 마스크가 좋아서 '히어로'처럼 보였습니다. 오토바이도 잘 어울려 배트맨과 경쟁해도 되겠더군요.


로보캅이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기계음은 '음~칙, 음~칙' 으로 많은 코미디의 소재가 됐던 원작 로보캅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겠지만 자꾸 듣다보니 거슬리더군요. 다음 로보캅은 소리가 안나는 버전으로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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