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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쉐임> <노예 12년> 세 번째 작품만에 아카데미 작품상 유력 후보에 오른 스티브 맥퀸 감독.

<헝거>와 <쉐임>을 인상적으로 봤었기에 <노예 12년> 역시 무척 궁금했습니다.

<헝거>는 신인감독 특유의 뚝심 있는 장면들의 연속이었고 <쉐임>은 세련된 연출을 보여줬는데 <노예 12년>은 두 작품을 믹스해 놓은 것 같습니다. <쉐임>의 세련된 연출로 <헝거>의 뚝심을 담았습니다.


<헝거>는 IRA 단원이 영국의 감옥에서 벌인 실화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죄수복을 거부하며 나체로 똥을 벽에 칠하는 투쟁을 벌이다가 결국엔 단식투쟁으로 사망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사실적이면서 차분하게 담아냈습니다. 깡마른 몸으로 등장한 마이클 파스벤더가 첫 주연을 맡아 자신의 이름을 알린 영화이기도 한데 제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면회소에서 IRA 조직원과 대화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안부를 주고받다가 투쟁방식을 놓고 서로의 이견을 확인한 뒤 결국 단식투쟁으로 죽기를 결심하는 과정을 지루하리만치 길게 담아냅니다. 카메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두 사람의 옆모습을 투 샷으로 잡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고문 장면과 구타 장면 등 과격한 장면들의 연속이었기에 그 롱테이크는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무척 이질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면 그 대화 장면으로 인해 인물의 의도가 드러나고 그의 결연한 죽음이 울림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영화의 전반적인 드라마로 볼 땐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장면으로 인해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면이 <노예 12년>에도 몇 번 등장합니다. 바로 주인공 솔로몬(치웨텔 에지오포 분)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입니다.


영화는 솔로몬이 결정적인 순간을 맞을 때마다 아무 대사나 음악 없이 그의 표정만을 오랫동안 비춥니다. 솔로몬이 납치당해 루이지애나로 가는 배에 오를 때, 티비츠(폴 다노 분)에게 목졸려 살해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살아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베스(브래드 피트 분)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희망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할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커(롭 스타인버그 분)가 찾아와 드디어 자유인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될 때, 영화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 솔로몬의 표정에 집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표정이 아주 드라마틱한 것은 아닙니다. 좌절과 분노와 기대와 환희와 감격이 아주 미세하게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보는 관객은 그 미세한 표정의 차이를 분명히 감지해낼 것입니다. 이는 134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이 영화가 한 남자의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해시키기 위해 관객에게 체험하도록 한 방식입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1853년 실제의 솔로몬이 자신의 경험을 쓴 책이 원작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노예제도를 담은 이 영화가 불편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노예제도가 스크린에 부활한 것이 어색해서였습니다. 사실 1863년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이후 제도적인 인종차별이 폐지되기까지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더 걸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인종차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연기자가 노예를 연기하는 것을 보는 것이 불편하더군요. 금지어가 된 'Nigger'라는 단어가 들리는 것도 어색해서 <장고: 분노의 추격자> 때 이미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년 또다른 노예에 관한 이야기인 <링컨>에 이어 <노예 12년>까지 최근 할리우드에서 1850년대 즈음의 변동기가 주목받는 것이 뚜렷해 보입니다. 그동안 180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는 미국영화들 중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미국영화는 많지 않았죠. <만딩고>와 <아미스타드> 정도가 떠오르는군요. 그러나 두 영화 속 흑인 모두 영웅이 되기 전 한계에 부딪혔죠. 이것을 뒤집은 영화가 2012년에 나온 <장고: 분노의 추격자>였고 그래서 새롭게 보였습니다. 이는 어쩌면 그동안 드러내기 불편했던 주제들이 오바마 정부가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 좀더 대담하게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1990년 <늑대와의 춤을>이 나오면서 1995년 <포카혼타스>까지 한때 인디언의 자유를 다룬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진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1993년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유태인이었듯 <노예 12년>의 스티브 맥퀸 감독 역시 영국 출신의 흑인입니다.


그러나 비단 시대배경이 아니더라도 <노예 12년>은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제인 '자유에의 의지'는 아카데미가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가정, 직장, 국가에서 자유를 납치당해 또다른 의미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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