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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2014 RIP Philip


트루먼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그 책을 완성하기까지의 6년. 영화는 카포티가 1959년 11월 캔사스시티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그가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며 사형수와 친구가 되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논픽션 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카포티. 그러나 그 댓가는 결국 사형수와의 거짓 우정으로 남는다.


'논픽션'이라는 것은 픽션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논픽션 소설'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 콜드 블러드] 속 인물은 실제 이름으로 등장하고 사건도 실제 벌어졌던 사건이다. 이를 작가가 사건기자가 되어 재구성한 것이다. 일종의 기사와 소설의 콜라보레이션인 셈인데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실제 사건에 허구와 사견이 개입되는 순간 어떤 것도 더이상 픽션이 아닐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카포티가 이 책을 완성하는데 6년이나 걸린 것도, 또 이 책 이후 절필선언을 한 이유도 바로 이 모순에서 비롯된다. 실제 사건을 그대로 담겠다는 욕망, 그러나 진실에 접근할수록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하는 아이러니가 카포티를 절망의 늪에 빠뜨린 것이다.


"응답 받지 못한 기도보다 응답 받은 기도에 더 많은 눈물을 흘린다." 영화가 끝난 뒤 자막으로 나오는 이 문장은 카포티가 죽기 전에 남긴 글이라고 한다. 그는 그날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범인에게 직접 듣기 위해 사형수 페리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준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그가 개입해 사형이 연기된 것이다. 이에 감동한 범인은 카포티와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캐서린 키너 분)와 동성연인 잭(브루스 그린우드 분)을 제외하고 친구가 없던 카포티에게 이 우정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1950년대에 동성애자로서 과감하게 모든 것을 오픈하던 그의 캐릭터는 이 비밀스런 우정 앞에서 거짓말을 일삼는 나약한 존재로 변한 스스로를 괴로워한다.



카포티 역할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뽀얀 피부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끼고 등장해 변성기를 겪지 않은 사내아이의 목소리를 낸다. 낯을 가리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딱 한 번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사형집행을 앞두고 페리를 만날 때다. 그는 핏줄이 서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운다. 자신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는 페리 앞에서 미안한 마음과 드디어 책을 끝낼 수 있게 됐다는 해방감 사이에서 꾹꾹 담아뒀던 감정이 북받쳐오른 것이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런 부고로 그를 추억하는 입장에서 이 상은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베넷 밀러의 연출은 느리고 조용하다. 클로즈업 위주로 감정선을 끌고 가는데 차가운 색조의 화면에 음악의 사용도 절제해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러나 큰 사건이 없는 영화를 지나치게 차분하게 몰고가다보니 중반부엔 루즈해진다.


이 영화에서 카포티라는 인물을 생생하게 살려낸 공은 카포티의 전기작가인 제랄드 클라크에게도 돌려야 한다. 그는 카포티의 전기를 무려 13년에 걸쳐 썼다고 하는데 실제 페리가 사형당하기 전 카포티에게 보낸 편지가 영화 속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카포티가 죽기 전에 제랄드와 그 편지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카포티 만큼이나 대단한 열정이다.


이전까지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작가였던 트루먼 카포티는 결국 이 책으로 논픽션의 창시자로 칭송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책의 제목인 [인 콜드 블러드]를 번역하면 '냉혈한' 쯤 될 것이다. 영화 속에 이에 관한 대사가 한 번 등장한다. 책 제목을 들은 경찰 간부 앨빈(크리스 쿠퍼 분)이 카포티에게 툭 던진다. "그건 범죄자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범죄자들과 얘기하는 당신을 가리키는 건가요?" 마지막 장면에선 자신은 페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카포티에게 하퍼 리가 전화로 한 마디 내뱉는다. "어쩌면 당신은 그러지 않길 바랬는지도 몰라요." 위대한 결과물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작가란 무엇인가. 예술은 아이러니 속에 탄생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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